프란치스코 교황의 부활은 여느 고위성직자의 부활과 달랐다. 성주간⑴부터 프란치스코 교황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경제적 타격에 누구보다 많은 고통을 받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나눔과 희생을 강조하고 이를 실천했다.
먼저, 지난 2일 성금요일 오전 10시경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주간을 맞아 교황청 자선소가 진행하고 있는 ‘취약계층 1,200명을 위한 우선 백신접종’ 현장을 방문했다.
교황은 이날 의료인들을 격려하고 백신접종 준비현장을 살펴본 뒤에 접종을 위해 현장을 찾은 이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이에 앞서 교황청 자선소는 지난 1월에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요청에 따라 25명의 노숙자들에게 코로나19 우선 백신접종을 시행한 바 있다.
로마 시민 가운데 취약계층을 위해 기획된 이번 백신접종은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롯한 교황청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바오로 6세 홀에 마련된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성주간동안 천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코로나19 백신접종을 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1년 성금요일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는 십자가의 길⑵을 아이들에게 맡겨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이들은 각자 한 처(구간)를 맡아 자신의 경험을 투영하여 십자가의 길을 묵상했다.
이날 십자가의 길에는 신체적·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전시되었고, 제14처에서 연단에 올라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십자가를 전달해준 이도 장미색 외투를 입은 한 소녀였다.
“제 방 선반에는 서로 다른 인형들이 많아요. 저는 매번 선물로 새 인형을 받았고, 제 꼬마 친구들을 무척 아껴왔어요. 주일에 미사가 끝나고 공지 시간에 신부님은 코소보 난민 아동들을 위해 장난감을 모은다고 말하셨어요. 집으로 돌아와 저는 제 인형을 보고 생각했어요. ‘인형들이 정말 나한테 필요한걸까?’
저는 슬프지만 가장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고 제가 그나마 덜 아끼는 인형 몇 개를 골랐어요. 저는 다음주 일요일에 이 인형들을 교회에 가져가기 위해 상자도 준비했어요. 그런데 그날 저녁이 돼서 저는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잠자리에 들기 전이 되서야 상자가 가득 채워지고 선반이 비워졌어요.
표면적인 것에서 벗어나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이기심에서 벗어납니다. 주는 것은 받는 것보다 더 많은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제10처 묵상)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수감자와 수감자 가족, 범죄 피해 가족, 교정 전문가, 교리교사, 경찰 등에게 십자가의 길 묵상을 청한 바 있다.
갈릴레아로 가는 것은 ‘다시 시작, 새로운 길, 경계로 나아감’을 의미
부활 성야 미사 강론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의 텅 빈 무덤을 발견하고 “예수님께서는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마르 16, 7)라는 구절에서 ‘갈릴래아로 가라’는 말이 예수님이 지금 이곳에 현존하며, 모든 한계를 뛰어 넘어 사랑을 실천하라는 뜻임을 강조했다.
먼저 교황은 갈릴레아로 가는 것이 “다시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교황은 “제자들에게 있어 갈릴레아는 처음으로 주님께서 제자들을 찾아나섰던 장소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제자들은 항상 예수와 함께 하면서도 그분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는커녕 잘못 받아들이고 십자가 앞에서 그분을 홀로 두고 도망쳤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다시 한 번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레아로 간 존재로 나타나, 한 번도 쉼없이 제자들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그들을 부르고 계신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우리가 아렇듯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이 모든 실패를 뛰어넘어 우리 안에서 다시 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삶이 있기 때문”이라며 “어두운 팬데믹 시기 가운데 우리는 다시 시작하여 희망을 잃지말 것을 당부하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교황은 텅 빈 예수의 무덤을 묵상하며 “갈릴레아로 가라는 것은 새로운 길을 걸어가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황은 갈릴레아가 ‘무덤과 반대방향’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교황은 “여기서 무덤은 아름답기는 하지만 끝나버린, 그저 기억 속에 남은 어떤 사실을 기념하는 것과 같은 일이 되어버린 신앙의 모습”이라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가 과거의 인물인 것마냥, 이제는 멀어진 유년시절의 친구인 것마냥, 아주 오래전 있었던 사실인 듯이 ‘추억의 신앙’을 체험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교황은 “신앙이란 과거의 레퍼토리가 아니며, 예수는 과거의 인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주님께서는 여기 이곳에 지금 살아계신다”며 “예수께서는 여러분이 보기에 길이 없다고 생각한 곳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고, 후회와 ‘이미 해봤다’는 사고방식에 역행하라고 힘을 주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교황은 갈릴레아가 예루살렘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지역이라는 점을 들어 갈릴레아는 “경계로 나아가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예수께서는 갈릴레아에서 힘겹게 자기 일상을 영유하고 있는 이들, 소외받은 이들과 약한 이들,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시며 자기 사명을 시작하셨다”며 “이렇게 그분께서는 쉼 없이 절망한 이들과 길을 잃은 이들을 찾아나서는, 존재의 경계까지 나아가는 하느님의 모습이 되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님께서 우리보다 먼저 가시어 존재하고 계시는 곳이 바로 일상의 공간, 우리가 매일 지나는 길과 도시의 구석구석을 말하는 것이다.
교황은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시고, 우리 각자의 상황을 돌아보신다”며 “그분께서는 우리가 경계를 넘고, 편견을 이겨내어, 매일 우리 옆을 지나는 이들에게 다가가 일상의 은총을 되찾을 것을 당부하고 계신다. 그러니 우리들의 갈릴레아, 즉 매일의 삶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심을 깨닫도록 하자”고 말했다.
교황은, 통상 부활을 기념하는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강복에서 거론하는 중동, 아프리카 내전 종식 문제를 언급하기에 앞서 백신의 공평한 공급을 강조했다. 또한, 여전히 군부에 의해 학살 당하고 있는 미얀마 청년들과의 연대를 표명했다.
교황은 “부활의 선포는 마법 주문이나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의 탈출구가 아니”라며 “팬데믹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사회경제적 위기는 특히 가장 가난한 이들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데도, 무장 분쟁은 멈추지 않고 군비는 확충되어 간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추문”이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이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팬데믹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 아픈이들과 소중한 존재를 잃은 이들에게 있어 희망”이라며 “특히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지원이 필요하며, 이들에게도 필수적인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교황은 “이는 우리 모두가 팬데믹을 퇴치해야 하고, 이러한 투쟁에 백신이 핵심적인 도구가 되어주는 이러한 시기에 특히 더욱 자명한 것”이라며 “‘백신 국제주의’의 정신으로 국제사회 전체가 모두 함께 백신 공급 지연을 극복하고 특히 최빈국들과 백신을 공유하기 위해 노력해줄 것을 권고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우르비 에트 오르비 강복에서 날로 심해지고 있는 미얀마 사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교황은 “부활하신 예수는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친구들과 시간을 함께 하지도 못한 채로 긴 시기를 보내야만 했던 수많은 젊은이들에게도 희망이 되주신다”며 “나는 전 세계의 젊은이들 곁에, 특히 사랑으로만 증오를 이길 수 있음을 알고 민주주의를 위해 평화로이 목소리를 내는 미얀마 젊은이들 곁에 함께 한다”고 말했다.
(1) 성주간 : 예수의 부활에 앞서 예수의 고난을 기억하는 주간으로, 주님 수난 성지주일에 시작되며 그 가운데는 예수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갖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에 이르는 성삼일(성목요일·성금요일·성토요일)이 포함되어 있다.
(2) 십자가의 길 : 예수가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 수난을 겪는 가운데 일어난 14개의 사건을 통해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바치는 기도를 일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