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정상회의 및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 참석을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유럽을 순방하고 있는 가운데, 첫 번째 일정으로 로마를 찾아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오전 일정 가운데, 가장 먼저 교황을 만난 국가정상은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였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교황님께서 기회가 되어 북한을 방문해주신다면, 한반도 평화의 모멘텀이 될 것”이라고 밝힌 뒤 “한국인들이 큰 기대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초청장을 보내주면 여러분들을 위해, 평화를 위해 나는 기꺼이 가겠다”며 “여러분들은 같은 언어를 쓰는 형제이지 않은가, 기꺼이 가겠다”고 긍정적인 입장을 재차 밝혔다.
교황청 공보실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교황과의 만남 직후 국무장관 피에트로 파롤린(Pietro Parolin) 추기경과 외무장관 폴 갤러거(Paul Gllagher) 대주교와도 만남을 가졌다.
공보실은 “양자 간의 좋은 관계와 가톨릭교회가 사회에 전하는 긍정적인 기여”에 대한 논의가 오고가는 가운데 특히 “남북한 대화와 화해의 증진을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언급했다.
공보실은 “연대와 형제애에 힘입어, 공동의 노력과 선의가 한반도 평화와 발전을 증진할 것이라는 희망”에 공감을 이뤘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논의사항으로는 “현재 지역 사정과 인도적 문제에 관한 일부 주제에 대해 의견 교환이 있었다”고 밝혔는데 이로 미루어볼 때 코로나19로 인한 국제사회 협력 문제와 더불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관한 교황청 입장 및 지원 여부 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은 순방 기념 선물로, 남북 분단을 상징하는 비무장지대(DMZ) 철조망을 녹여 만든 ‘평화의 십자가’를 전달했다. ‘평화의 십자가’는 총 136개 제작되었는데, 136이라는 숫자는 철조망을 철거하기까지 분단되어있던 남한의 68년과 북한의 68년을 합친 숫자다. 현재 평화의 십자가 전시회가 로마 성 이냐시오 성당에서 열리고 있다.
문 대통령은 교황에게 이를 전달하며 “한국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군사분계선이 250㎞에 달한다. 철조망을 수거해 십자가를 만든 것”이라며 "성서에도 창을 녹여 보습을 만든다는 말도 있다. 이에 더해 한반도 평화의 의미를 담은 것"이라고 그 의미를 설명했다.
이번 순방 수행단에는 이례적으로 이인영 통일부 장관도 함께하여 평화와 종전선언에 대한 교황의 적극적 지지를 끌어내려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이날 교황은 이인영 장관을 포함하여 14명으로 구성된 한국 수행단에게도 인사를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의 관심사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담화로 꼽히는 ‘우르비 에트 오르비’에서 여러 차례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기도 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이 교황에게 방북을 요청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교황과의 만남을 제안했고 “열렬히 환영하겠다”는 김 위원장의 화답을 전달했다. 이에 교황은 “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응답을 줄 것이고 갈 수 있다”고 답했다.
교황은 이전부터 교황 연설이나 담화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우르비 에트 오르비는 물론 여러 차례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발표해왔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도 각별한 관심을 보이며, 4.27판문점선언에 대한 축사를 보내기도 했다. 2020년에는 이백만 당시 교황대사를 통해, 2021년에는 이전부터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교황에게 꾸준히 도움을 청해왔던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 유흥식 대주교를 통해 북한 순방에 대한 긍정적 의사를 재차 전달했다.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은 문 대통령과의 회동 직후 조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을 만나 이례적으로 75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최근 교황이 제4차 민중운동세계모임(WMPM)에 보낸 메시지에서 “지구상 어느 나라에 대해서든 도발, 봉쇄정책, 일방적 제재를 멈추라”고 주문한 사실을 상기해보면,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 등에 관한 논의가 오고 갔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