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전 세계 각국 언론들과 인터뷰 가운데 자신의 사임에 대해서 ‘당장은 아니지만 가능성은 열려있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교황은 앞으로 보편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듯한 행보를 이어갔다.
먼저 지난 8월 27일,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대주교를 포함한 신임 추기경 20명을 서임한 자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무릇 추기경이라면 큰 문제를 다룰 때든 일상 속 문제를 다룰 때든, 언제나 같은 영적 불길을 가지고서 교회를 사랑하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요한복음 21장에서 예수의 부활과 함께 등장해 제자들이 식사할 수 있게 해주었던 “숯불”(요한 21, 9)을 비유 삼아 추기경들이 지위가 보장하는 권세로 사람들과 멀어지기 보다는 더욱 가까워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이곳에서 세 본당을 맡고 있는 한 사제가 내게 일이 많다고 했던 적이 있다. 나는 그에게 ‘모든 사람들을 다 방문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고, 그는 ‘그럼요, 다 아는 분들인걸요!’라고 답했다. 나는 ‘사람들 이름을 다 아는 것입니까?’라고 물었고 ‘그럼요, 심지어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이름까지 압니다’라고 답했다. 이것이 바로 예수를 따라 사도직을 이어가는 부드러운 불길”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이를 잘 실천했던 인물로 성 요한 바오로 2세에게 발탁되어 교황청 국무원장을 지냈던 아고스티노 카사롤리(Agnostino Casaroli) 추기경을 꼽았다.
카사롤리 추기경이 냉전 당시 소비에트 연방 국가들과의 외교에 뛰어난 면모를 보였다는 점과 더불어 그가 로마의 한 소년구치소를 주기적으로 방문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교황은 “카사롤리 추기경에게 로마의 한 소년구치소에 어린 수감자들을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일은 (외교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아고스티노 신부님’이라고만 알려져 있었다”며 “카사롤리 추기경은 청년들을 만나기 위해 매주 그곳을 방문하면서도 위대한 외교관이자 인내의 순교자가 되었다”고 말했다.
교황은 “이러한 사람들은 ‘위대한 사람’이나 ‘최고 권력자’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일상 속 ‘작은 이들’과 관계를 맺었다”며 “외교라는 거대한 문제도, 작은 사목적 문제들도 중요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제라면 가져야 할, 추기경이라면 가져야 할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신임 추기경들은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금까지 추구해왔던 특정 국가, 유럽을 중심으로 구성된 추기경단을 탈피하여 보편교회의 폭을 넓혀나가겠다는 의지를 충실히 반영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서임으로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Conclave)에 참여할 수 있는 유권자 추기경 132명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임한 추기경은 83명이 되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비전을 반영하는 초석이 마련된 셈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임 교황들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추기경을 지명하면서 실질적인 교회의 변화를 꾀한 셈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보편교회의 비전을 표현할 추기경들을 서임한 바로 다음 날인 28일 이탈리아 아퀼라를 찾았다.
아퀼라는 가톨릭교회 역사상 최초로 ‘사임’한 교황으로 기록된 첼레스티노 5세의 유해가 보존되어 있다. 베네딕토 16세는 2009년 아퀼라에 지진으로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하자 이례적으로 직접 이곳을 찾았고, 이때 첼레스티노 5세의 유해를 찾아 경배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13년 베네딕토 16세는 전임 교황의 발자취를 따라 스스로 사임하며 대중을 놀라게 했다.
그런 만큼 이곳의 상징성은 강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에도 아퀼라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도 언론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건강과 새 교황령 발표 등의 단서들이 거론되며 교황의 ‘사임설’이 나돌기도 했다.
교황은 아퀼라를 찾아 봉헌한 미사에서, 당연하게도 첼레스티노 5세에 관해 이야기하며 “겸손한 이들의 힘은 주님에게서 나오지, 전략이나 인간들의 수단, 이 세상의 논리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교황은 “첼레스티노 5세는 용감하게 복음을 증거한 분이다. 어떤 권력의 논리도 그분을 물들여 쥐고 흔들 수 없었기 때문”이라며 “그분 안에서 우리는 모든 속세의 논리에서 자유로운 교회, 자비라는 하느님의 이름을 온전히 증거하는 교회를 찬미하게 된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임’을 상징하는 장소를 찾아, 분명 ‘미래의 교황’이 될 후보자들인 전날 서임한 새 추기경들을 비롯한 모든 추기경에게 ‘겸손’의 메시지를 던지며 권력에 도취되는 일을 경계하라고 당부한 셈이다.
29일과 30일에는 새 교황령 검토를 위한 특별회의가 예정되어 있었다. 2014년에 열린 가정 시노드나 2019년 가톨릭교회의 성범죄 해결을 위해 대대적으로 열렸던 세계주교의장단회의 등을 제외하면, 이번 회의는 200여명에 달하는 추기경이 로마에 집결한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행사다.
새 교황령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구상해온 보편교회의 미래를 표현하는 만큼, 이곳에 모인 추기경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비전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회의 중에는 평신도 장관직 임명 등 교회운영에 있어 평신도의 지위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이에 관해 가정생명부가 평신도가 맡기에 적합한 부서 가운데 하나로 꼽힌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명한 추기경들은 세계 각국 현지에서 활동한 이들이 많은 만큼 유학 이외에 로마 또는 교황청 경험이 드물어 교황청의 사정이나 분위기에 밝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러 외신에서는 ‘콘클라베의 미래’를 보여주는 장면이자 추기경들 간의 친교를 통해 누가 ‘미래 교황’이 될지를 가늠하는 ‘예비 콘클라베’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를 반영하듯 이번에 브라질 아마존 지역에서 서임된 레오나르도 슈타이너(Leonardo Steiner) 추기경은 < Vatican News >에 이번 새 교황령 논의를 앞두고 “우리는 누가 교황님을 돕고 있는지, 주교들을 돕고 있는지를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며 “경청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경험하고 받아들이는 더욱 형제애 넘치는 교회가 되고자 하는 바램인 것”이라고 말했다.
카르타헤나 명예대교구장 호르헤 엔리케 지메네스 카르바할 추기경(콜롬비아) 역시 “추기경회의와 교황과의 만남은 우리 모두가 서로를 조금 더 알아가고, 미래를 준비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30일, 이틀간의 회의를 마치고 추기경단과 함께 봉헌한 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령이 바라시는 곳과 방식으로, 하느님의 계획에 놀랄 줄 아는 사람, 이런 정신에 따라 열정적으로 교회를 사랑하고 자기 사명을 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아퀼라에서의 발언과 마찬가지로 권력을 경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교황은 “형제들이여, 이 놀라움이라는 것이 바로 구원의 길 가운데 하나다. 하느님께서 언제나 우리 안에 이 놀라움이 살아있도록 지켜주시기를 기도한다. 이는 우리가 ‘지위에 올랐다’고 느끼고 싶은 유혹에서 자유로이 해주기 때문”이리고 말했다.
이어서 교황은 “하느님의 말씀은 오늘날 우리가 교회 안에 있다는, 우리 자신이 교회가 되었다는 놀라움을 일깨워준다”면서 “이러한 놀라움은 시간에 따라 작아지거나 교회 안에서 우리(추기경)의 책임이 커진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하느님 덕분에 우리의 놀라움은 더 강해지고, 깊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