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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들은 무엇을, 어떻게 책임져야 하나?
  • 끌로셰
  • 등록 2019-02-25 17:20:31
  • 수정 2019-02-27 18: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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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을 주제로 한 회의 첫 날에 이어 둘째 날은, 이러한 책임을 지닌 주교들이 성직자 성범죄에 어떤 조치를 취하고,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시 어떤 책임을 져야하는지를 논의하기 위해 ‘소명 의무’(또는 책무성, Accountability)를 주제로 회의를 이어갔다.


공동체적, 공동합의적 교회(Collegial and Synodal Church)에서의 소명 의무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황청 개혁을 자문하는 추기경 자문단(C9)의 구성원이자 인도 뭄바이 대교구장 오스왈드 그래셔스(Oswald Gracias) 추기경은 성직자 성범죄라는 전 세계적 문제에 임하는 자세의 핵심이 공동체정신(collegiality)와 공동합의성(synodality, 시노드정신)에 있다고 강조했다.


공동합의성이 “지역, 국가, 교구 층위에서 교회가 어떻게 교회 성직자 성범죄 문제 해결을 이어나가야 할지를 정의해준다”면서 “즉, 서로 다른 모든 층위의 결정과 조치들을 법적으로 통합해 공동합의성을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절차에는 “평신도의 개입이 포함된다”고 강조했다.


▲ 오스왈드 그래셔스 추기경


그래셔스 추기경은 현재까지 주교들이 “공동합의적 교회를 보여주려는 생색내기 조치만을 취하면서, 사실은 주교가 아닌 이들과 성직자가 아닌 이들이 아무 의미 없는 역할을 맡는 ‘우리(주교)’ 회의, ‘우리’ 위원회, ‘우리’ 회의만 하고 싶어하는 것 아닌가?”라고 질타했다.


또한 성직자 성범죄 문제가 칠레, 미국 등 특정 지역에서 크게 부각되었다고 해서 다른 지역의 성직자 성범죄가 심각하지 않다고 변명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비판했다. 


어떤 주교도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양상이 다르기에 교회 성범죄 문제는 나와는 관계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래셔스 추기경은 “각 주교는 교회 전체에 책임을 가진다. 우리는 소명 의무와 책임을 다 함께 지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성직자 성범죄는 하느님의 법과 교회의 법을 어긴 것뿐만 아니라, 동시에 공공의 범죄행위”라면서 “범죄행위를 저지른 사람은 그러한 행동에 대해 법적으로 민간 당국에 소명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공동합의성 – 연대 책임


▲ 블레이스 수피치 추기경 (사진출처=Vatican News)_


미국 가톨릭교회에서 성직자 성범죄 해결에 가장 진취적 입장을 취해온 블레이스 수피치(Blase Cupich) 추기경은 공동합의성이라는 원칙을 토대로 성직자 성범죄를 조장한 구조, 법, 기관을 개혁하는데 “근본적 경청”, “평신도 증언”, “공동체정신” 그리고 “소명 의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직자 성범죄 해결을 위한 교회 구조 개편에 필요한 평신도의 증언에 대해, 수피치 추기경은 “평신도가 믿음과 정의를 증언하는 일은 교회에 대한 도전적 대립이 아닌, (이들의) 믿음과 행동을 보여주는 은총 가득한 증언”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피해자와의 ‘동행’(accompaniment) 정신을 강조하며 소명 의무(Accountability)는 “즉 신고, 조사, 성범죄 고발 조사 구조는 생존자들이 교회를 찾아와 정의를 구하는 것인 만큼 이들이 겪은 일을 이해한 상태에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수피치 추기경은 “소명 의무를 위한 기관과 법적 구조 골자”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의도의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의 관할에서 발생한 성범죄(18세 이하 아동성범죄 한정)를 태만히 처리했을 경우 면직될 수 있다는 규정을 신설한 자의교서 『사랑이 넘치는 어머니Coma una madre amorevole』 (프란치스코 교황, 2016)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구장 주교는 자기가 중대한 도덕적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도, 자기에게 맡겨진 사목 직무에 요구되는 성실에 객관적으로 매우 태만한 경우에 그 직무에서 해임될 수 있다. (『사랑이 넘치는 어머니』제1조2항)


수피치 추기경은 특히 관할 지역에서 벌어진 성범죄의 은폐와 같은 태만을 조사하고 처벌하기 위한 기준이 세워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먼저 조사 원칙을 두고 “주교회의, 관구, 교구가 공동으로 주교를 대상으로 한 조사 원칙을 마련함에 있어 교회법에 따라 평신도 전문가를 포함시키고 자문을 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주교를 대상으로 한 고발 접수에 대해서는 “모든 것이 투명하게 신자들에게 알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발을 접수하여 이를 곧바로 교황대사, 고발당한 주교의 관구장 주교, 또는 필요에 따라 이들의 대리인이나 주교회의가 세운 기준에 따른 평신도 전문가에게 이첩할 수 있도록 전용 전화회선, 홈페이지 형태의 독립적 신고체계” 설립을 제안했다.


특히 수피치 추기경은 이러한 ‘구체적 절차’를 결정하는데 있어 교회 전통과 더불어 “추후 주교들에 의한 불법 행위를 확인하고 조사할 수 있는 시대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이로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친교 – 함께 행동하라


피해자들의 증언을 듣는 일은 동정을 느끼는 일이 아니라 ‘공소시효가 없는’ 상처를 가진 그리스도의 육신과의 만남


▲ 린다 기소니


교회법 전문가 겸 최초로 교황청 부서(평신도가정생명부)의 차관으로 임명 받은 이탈리아 여성 신학자 린다 기소니(Linda Ghisoni)는 이번 전 세계 주교회의 의장단 회의에서도 첫 번째로 공식석상에서 발언한 여성이 되었다.  


기소니는 피해자들의 증언을 직접 듣는 일이 “동정을 느끼는 일이 아니라 치유되지 않는 상처를 가진, 교황께서 말씀하신대로 ‘공소시효가 없는’ 상처를 가진 그리스도의 육신과의 만남”이라고 강조했다.


성직자뿐만 아니라 평신도와 수도자의 참여 역시 중요하다. 평신도와 수도자는 성직자의 명령을 수행하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같은 포도밭에서 일하는 종들이다.


이어 “이곳에서 각자 식별에 참여하여 자신들의 방식으로 기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평신도가 마치 이런 사건에서 제3자인 것처럼, 성직자와 관련된 문제에 이런 방식으로 평신도를 포함시킨다고 해서 (절차가) 더욱 올바르게 된다고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되었으나 그럼에도 “주교가 자기 혼자 또는 오로지 주교들끼리만 모여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주교들의 소명 의무를 강화하기 위해 ▲주교회의 산하 평신도 자문기구 설립 ▲성범죄 및 은폐 조사 관장하는 교회 내 기관 주기적 감사 ▲ 투명성 및 신뢰 재고 위한 ‘교황 비밀’(pontifical secrecy) 적용 방식 재검토를 제안했다. 


한편 기소니의 제안에 미성년자보호위원회 전 위원인 마리 콜린스(Marie Collins)는 자신의 SNS를 통해 “2017년 미보위는 학대 사건에 교황 비밀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공식 권고를 내린바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이 발언하는 예정된 일정이 없었으나 기소니 평신도가정생명부 차관 발제 이후 마이크를 잡고 “교회의 상처를 이야기하고자 여성을 초대한 것은 교회가 자기 자신에 대해, 자기가 받은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초대한 것과 같다”고 말했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성을 교회 안에 참여시키는 것이 “단순한 형식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하며 “이는 여성의 관점에서 교회를 생각해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회의 둘째 날에 열린 기자회견에는 발제를 맡은 이들 외에도 보스턴 대교구장이자 미성년자보호위원회(Pontifical Commission for the Protection of Minors, PCPM) 의장으로 활동하며 적극적으로 성직자 성범죄 퇴치를 외쳐온 션 오말리(Seán O’malley) 추기경도 참석했다.


< AP >에 따르면, 기자회견에 참석한 수피치 추기경과 오말리 추기경은 성직자 성범죄를 신고하지 않거나 사건을 방조한 주교를 면직시킬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자의교서 『사랑이 넘치는 어머니』 적용에 관한 ‘해설’(clarification)이 곧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필진정보]
끌로셰 : 언어문제로 관심을 받지 못 하는 글이나 그러한 글들이 전달하려는 문제의식을 발굴하고자 한다. “다른 언어는 다른 사고의 틀을 내포합니다. 그리고 사회 현상이나 문제는 주조에 쓰이는 재료들과 같습니다. 따라서 어떤 문제의식은 같은 분야,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그 논점과 관점이 천차만별일 수 있습니다. 해외 기사, 사설들을 통해 정보 전달 뿐만 아니라 정보 속에 담긴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사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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