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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망은 국가의 혈관, 민주주의 전류가 흐르게 해야
  • 이원영
  • 등록 2026-07-31 17: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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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는 다른 에너지와 다르다. 석유나 가스처럼 국경을 넘나들며 시장에서 자유롭게 사고파는 상품도 아니다. 생산과 소비가 찰나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고, 거대한 물리적 송배전망(Grid)이라는 단일한 생태계와 일체화되어 작동한다. 상품인 동시에 독특한 공공적 존재다.


이 거대한 혈관 같은 전력망 속에서 전기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누구의 위험을 담보로 누구에게 흘러가며, 요금은 어떤 구조로 매겨지는가. 이것이야말로 현대 사회의 실질적인 권력 구조를 규정하는 본질이다. 이제 국민의 생명줄이자 국가의 혈관인 전기를 주권자의 통제 아래로 되찾아오는 '전기주권(Electric Sovereignty) 시대'를 이야기할 때가 왔다.


전기가 지닌 독점적 공공성


석유나 가스는 공급이 부족하면 수입처를 바꾸거나 가격 변동을 감내하면 그만이다. 전기는 다르다. 전력망이 마비되거나 특정 세력이 전기의 흐름을 독점한다면, 그것은 곧 국민의 생명과 경제적 자립을 볼모로 잡히는 것과 같다.


전기는 엄밀한 경제학의 의미에서 '공공재(public goods)'는 아니다. 공공재란 등대나 국방처럼 돈을 내지 않은 사람을 배제할 수 없고(비배제성), 한 사람이 소비해도 다른 사람의 몫이 줄지 않는(비경합성) 재화를 말한다. 전기는 계량기로 얼마든지 배제할 수 있고, 내가 쓴 만큼 남이 쓸 몫이 줄어드는 전형적인 사적 재화다. 그럼에도 전기의 공공성은 공공재 여부가 아니라, 다음 세 가지 물리적 구조적 사실에서 나온다.


첫째, 필수재성이다. 현대 사회에서 전기는 물이나 공기와 다름없는 생존의 필수조건이다. '비싸면 안 사고 말지'라는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는 재화 앞에서 수요와 공급의 시장 규율은 절반밖에 작동하지 않는다.


둘째, 계통의 자연독점성이다. 도로와 철도처럼 전력망은 중복 건설이 극도로 비효율적이므로 자연스럽게 독점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발전소는 여럿일 수 있어도 망은 하나다. 문제는 이 단일하고 공공적인 인프라를 누가 통제하느냐다.


셋째, 외부효과다. 원자력 발전이 품고 있는 핵폐기물의 만년 위험, 거대 송전탑이 농어촌과 지방의 삶터를 일방적으로 파괴하는 갈등 등 전기의 가격표 어디에도 찍히지 않은 이 비용들은 거래 당사자가 아닌 제3자, 곧 지역 주민과 미래 세대가 고스란히 떠안는다.


한전 독점 구조속에 기업들은 무임승차


이러한 공공적 필수재가 한국사회에서는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한전 중심의 독점구조가 철옹성처럼 버티고 있다. 생산, 송배전, 판매에 이르는 전 과정을 한전 및 발전자회사들이 일괄 관리하면서, 전력 수급과 요금에 관한 의사결정 역시 철저하게 공급자와 관료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왜곡된 구조의 실상은 역설적으로 남북으로 대비되는 두 풍경 속에서 드러난다. 국가의 공식 송배전망이 열악한 북한 주민들은 최근 장마당을 통해 스스로 저렴한 중국산 태양광 패널(모듈)을 구입해 전력을 자급자족 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그런데 세계 최고 수준의 전력 인프라를 보유한 한국 대기업들은 최소한의 자구 노력조차 하지 않은 채 국가 송전망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저렴하고 품질 좋은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으며 성장한 기업들이다.


몇 차례 산업용 요금이 인상되었다고는 하지만 한전의 수십조원 누적 적자와 전력생산 및 송전과정에 지역 주민들이 묵묵히 감내한 희생 위에서 싸고 질좋은 전기를 누려온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게다가 이들은 공장 문앞까지 대용량 전기를 배달해 주는 송전선로의 구축 책임을 오롯이 국가와 공공에 떠넘겨 왔다.


발전소에서 소비처까지 초고압 송전탑을 세우며 발생하는 극심한 사회적 갈등과 토지 황폐화, 삶터의 파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남았다. 이것이야말로 어떤 요금 논쟁으로도 부정할 수 없는, 이 구조의 민낯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글로벌 빅테크들의 차이


이 기형적인 국가 의존적 모델의 결정판이 바로 정부와 대기업이 추진하고 있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다. 이 단지 하나가 요구하는 전력은 무려 10GW 이상으로, 원자력 발전소 7~8기를 동시에 가동해 오직 이 공장들만을 위해 송전해야 하는 규모다.


반면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이미 자급자족과 분산형 조달의 원칙을, 그것도 가장 각박한 입지 조건인 사막 지대에서 행동으로 증명하고 있다. 구글은 태양광·풍력·배터리 저장장치를 데이터센터와 한 부지에 묶어 짓는 산업단지형 프로젝트에 200억 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아마존은 2.3GW 규모의 태양광과 ESS 결합 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며, 마이크로소프트는 한화큐셀과 12GW규모 태양광 공급 계약을 맺었다. 네바다 토노파의 한 데이터센터는 태양광과 배터리만으로 아예 송전망에서 독립한 '오프그리드' 방식을 택했다.


정부가 송전망을 깔아주기를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발전원을 확보해 사업 속도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 시장의 정상적인 규칙이다. 미국이 사막에서 그 답을 찾았다면, 우리는 같은 원칙 위에서 우리의 국토 조건에 맞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영농형 태양광, 그리고 분산형 자립의 백년대계


우리의 국토는 좁지만 최근 변화는 커다란 가능성을 주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영농형 태양광이다. 이론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잠재력이 적지 않다. 지난 5월 영농형 태양광 발전사업의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해 실경작자 중심의 제도적 틀도 마련되었다.


이제 막 문턱을 넘은 이 제도가 토대가 되어 농지 위 상부 공간이 햇빛소득을 창출하는 곳으로 재탄생할 날이 머지 않았다. 아직 현실적 제약은 많지만 새로운 농가 수익원이 국가 전체의 분산 에너지 공급 기반을 넓히는 자산이 될 것이다.


백년대계로의 발상의 전환을 단행할 때가 됐다. 에너지를 소비하는 자가 스스로 조달하고 책임진다는 수혜자 부담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몇가지 해법을 제안해 본다.


첫째, 이미 착공한 생산라인은 어쩔 수 없더라도 계획단계에 있는 부지는 전력소비가 천문학적인 대규모 제조공장 대신 R&D 센터, 반도체 설계 허브, AI 소프트웨어 및 바이오 융합 단지 등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토지의 부가가치를 극대화하고 인재 확보의 이점을 누릴 수 있다.


두번째, 막대한 전력과 용수가 필요한 신규 생산 공장은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풍부하고 전력이 남아도는 호남 등으로 거점 배치하는 방안이다. 발전소 바로 옆에 공장을 짓는 직결 방식을 택하면 초고압 송전탑을 새로 건설할 필요가 없고, 송전 손실을 없앨 수 있다.


이는 글로벌 무역 장벽인 RE100과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가장 빠르고 저렴하게 달성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이러한 원칙을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신규 대규모 산업단지를 조성하거나 대형 데이터센터를 허가할 때 자체 분산형 에너지 조달 비율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래야 무임승차 관행이 멈춘다.



▲ 국내 태양광발전현황 (대한민국 국가 지도집 2020)



송전망의 공공성은 지키면서 판매는 개방 필요


많은 국내외 전문가들은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전환을 위해 전력망의 공공성은 앞으로도 지켜가되 생산과 소비, 즉 발전과 판매 부문은 적극적으로 시민사회에 다양한 경제주체들에게 개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경쟁이 가능한 발전과 판매는 열되, 경쟁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송배전망은 공공 또는 강한 규제 아래 두는 '언번들링(unbundling)'이다.


과거 통신과 석유의 민영화 사례를 살펴보자. 통신강국의 토대는 정확히 '민영화' 덕분은 아니었다. 1995년부터 국가가 주도한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 계획이 선행되었고, KT 민영화(2002년)는 그 기반이 깔린 뒤의 일이다. 민영화 이후에도 통신은 주파수의 국가 소유, 요금 규제, 보편적 서비스 의무가 걸린 강규제 산업으로 남아 있다.


석유는 더 간단하다. 수입하고, 저장하고 도입처를 바꾸고 시장에서 사고파는 재화다. 저장할 수 있고 운반할 수 있기에 시장 경쟁이 온전히 작동한다. 하지만 전기는 생산과 소비가 찰나의 오차 없이 일치해야 하는, 저장이 지극히 어렵거나 비싼 재화다. 물성이 다르면 제도도 달라야 한다.


지금 전력산업을 종속산업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규제가 아니다. 특정 대기업이 수도권에 공장을 짓겠다면 국가와 한전이 수백km 밖에서 송전선을 끌어다 바치는 구조, 전력수급계획 전체가 대기업 제조업의 종속변수로 전락해 있는 현실이다.


수혜자 부담 원칙과 자가조달 의무야말로 전력을 이 예속에서 독립시키는 길이며, 재생에너지와 저장장치와 분산형 계통 기술이야말로 전력을 근간산업으로 세우는 실체다. 미국 빅테크가 사막에서 증명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주권자의 손으로 전력망의 빗장을 풀어야


'전기주권'을 세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소수의 관료와 거대 공기업 카르텔이 독점해 온 전력수급계획, 송전망 운영, 요금 산정의 권력을 국민의 손으로 되찾아오는 일이다. 실제 전기사업법은 신규 원전을 몇기 지을지까지 정하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정부가 심의하고, 국회에는 보고만 하도록 하고 있다. 주권자는 애초에 결정의 방 바깥에 있다.


이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국회가 우선 심사하고 가칭 '전기시민의회'처럼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거버넌스가 마련돼야 한다. 깨끗한 전기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의사결정의 주도권과 책임을 국민이 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전기료의 변화도 감당할 마음을 낼 수 있지 않겠는가.


전기는 자본의 상품이 아니며, 관료의 통제 대상도 아니다. 국민이 함께 누려야 할 현대 사회의 '공유부(Common Wealth)'이자, 생존을 지키는 최후의 방어선이다. 주권자 손으로 카르텔의 빗장을 부수고, 진정한 민주주의의 전류가 전력망 구석구석까지 흐르게 할 때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투뉴스>에도 실렸습니다.


[필진정보]
이원영 : 시민인권위원회 공동위원장, 국토미래연구소장, 전 수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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