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부활 성야) 강론에서 "신비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 우리는 지금 하느님께서 사랑의 밤샘으로 이루신 신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지켜 주신다는 확신으로 깨어 기다리는 밤입니다. 예수님의 남녀제자들이 고통과 고뇌를 체험하며 지냈던 밤입니다. [...]
신비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는 부활절(파스카)을 지낼 수가 없지요. 파스카는 지적인 사실이 아니고 단지 아는 것이 아니며 읽는 것도 아닙니다. 그 이상이에요. 그보다 훨씬 더한 것입니다! 신비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경탄하는 능력, 관상의 능력을 뜻합니다. 침묵을 듣는 능력,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낭랑한 한 줄기 침묵 의 속삭임을 듣는 능력입니다(1열왕 19,12). 신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우리에게 현실을 두려워하지 말 것을, 자신 안에 갇히지 말 것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 앞에서 도망가지 말 것을, 문제들 앞에서 눈을 감지 말고 그 문제들을 부정하지 말며 질문들을 없애지 말 것… 등을 요구합니다.
신비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자신의 안락한 안주를 넘어서서, 우리를 잡아놓는 게으름과 무관심을 넘어서서 나아가는 것을, 진리와 아름다움과 사랑을 추구하는 길에 들어서는 것을, 당연하지 않은 의미를 찾아, 우리 신앙과 충실성과 이성을 위기에 빠트리는 질문들에 대해 범속하지 않은 답변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자신을 낮추는 겸손, 몹시 교만한 우리 자아의 주춧대에서, 우리 자신에 대한 과신의 주춧대에서 내려서는 겸손, 장점과 결점을 가진 피조물로서의, 용서가 필요한 죄인으로서의 자신의 실제 모습을 인정하면서 자신을 다시 살펴보는 겸손입니다.
신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력, 자신의 우상숭배를 비우는 것인 이 낮춤이, 흠숭이 필요합니다. 흠숭 없이는 신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국방그라시아 수녀 : 성심의딸 수녀회 수녀. 4월 4일 부활 성야 강론의 일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