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라 수선화
죽음이 그렇게 빨리 올 줄
봄이 아직도 수십 번은 왔다가야 하는데
소나무 밑에 다섯 사람 중 한사람의 시인이
대밭의 부는 칼바람에도 견디어 냈는데
감옥 밖의 세월은 더 어둡고 서러운 봄
수선화가 막 피기 시작했는데
그는 하늘 길을 먼저 떠났다
고정간첩단 오송회 군산제일고등학교 교사들
민주화의 봄을 노래한 역사를 이야기하고
이광웅 선생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들이 복사해서 돌려본 시집은 오장환 시인의 시집
‘병든 서울’을 보았다
하늘의 흰 구름 담배연기 퍼져나갈 때
징역7년을 살았다
오룡동 천주교 언덕의 수선화
종로의 선술집에서 만난 선생은
내가 죽어 민중이 산다면 또 한 번 갇힐 수 있지
간첩은 무슨 막걸리 반공법 같은 것이야
그가 떠나던 날의 군산은 추웠고
주막 길에 눈발이 날렸다
십자가 눈물로 빛나던 날
복음 교회 둔율동 아리랑 고갯길에서
이광웅 시인과 채규구 선생은 이 풍진 세상을 노래하였다
전두환, 노태우를 살인마라고 했다
박창신 신부가 만날 때 마다 막걸리를 샀다
수선화 술잔에 피기 시작하는데
대밭의 바람 소리도 시원하던 그날 밤
우리는 함께 울었다
군산 앞바다 봄바람 이어오면
수선화는 가슴 떨리게 피어 일어서는데
저기 저 푸른 바다 온통 수선화
댓바람은 수런거리고
피어라 수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