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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건용) 영화 속 구약 : 탐욕 없이도 행복한 사람들
  • 곽건용 목사
  • 등록 2016-07-29 10:22:29
  • 수정 2016-09-22 11: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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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곽건용 목사의 [영화 속 구약] 이번호는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 어느 희망에 관한 이야기’를 3부로 나누어 게재합니다. 3부는 각각 ‘욕망과 지배’ ‘어느 희망에 관한 이야기’ ‘탐욕 없이도 행복한 사람들’ 입니다.



탐욕 없이도 행복한 사람들


뭔가를 갖고 싶어 하고 남이 갖고 있는 걸 자기도 가지려 하며, 심지어 욕망을 욕망하는 이유는 행복해지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물어야 할 질문은 ‘우리는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가?’가 되겠습니다. 


오래 전에 신문에서 흥미로운 칼럼을 읽었습니다(권태선 칼럼, ‘행복지수가 두려워서야’ 한겨레신문 2010년 1월 31일). 경제상황이나 교육, 의료제도 등 사람의 행복에 영향을 주는 여러 요인들을 분석해서 나라의 행복지수를 발표하는 기관이 여럿 있습니다. 그 중에서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s Survey)와 영국 레스터 대학이 각각 2008년과 2006년에 조사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덴마크가 모두 1위였답니다. 한국은 앞의 조사에서는 62위를, 뒤의 조사에서는 102위를 차지했는데 1인당 국민소득이 3-40위인 점을 고려하면 한국국민의 행복지수는 국민소득에 비해 무척 떨어지는 셈입니다.


‘행복’이 삶의 궁극적인 가치라고 할 때 많은 부자나라들을 제치고 인구 1천 만 명도 안 되고 천연자원도 별로 없으며 경제의 대외의존도와 직업 불안정성이 높은 수준인 덴마크가 행복지수 1위를 차지했다는 점은 의외입니다. 노동유연성(달리 말하면 쉽게 해고할 수 있는 정도)은 높지만 이 나라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에 시달리지 않는 이유는 철저한 직업교육과 사회안전망 덕에 쉽게 새 직장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병에 걸려도 거의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의료제도가 완벽하고 은퇴 후 생활도 안정되어 있습니다. 물론 세금 부담이 매우 높지만 세금으로 낸 돈이 복지로 환원되는 비율이 워낙 높아서 국민들은 불만이 없다는 겁니다. 


덴마크의 교육현황을 보면 이상세계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유아원 아이들은 모두 집에서 간식을 갖고 가는데 먹을 때는 음식을 모두 모아놓고 나눠 먹는답니다.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을 하는데 이 기간에는 시험이 없고 수업은 토론식이라네요. 프랑스 영화 <클래스 The Class>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화에서 교사는 끈질기게 학생들과 대화하고 토론하며 답을 찾아갑니다. 제 눈에는 학생들의 태도가 너무 방자해서 화날 정도지만 교사는 화를 내지 않고 토론을 이끕니다. 이 모습에 저는 깊이 감동했습니다. 이런 교육이 경쟁 아닌 연대를 만들어내고 갈등과 투쟁이 아닌 대화와 타협의 문화를 만들어냈겠지요. 더 놀라운 사실은 덴마크가 이와 같은 복지제도의 근간을 구축한 때는 대공황이 닥친 1930년대였다는 사실입니다. 파이가 커야 나눌 것도 커진다는 말은 적어도 덴마크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 영화 <클래스>


영국의 신경제재단(New Economic Foundation)이 2006년에 실시한 행복지수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나라는 ‘바누아투’라는 이름도 못 들어본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호주 시드니에서 동북쪽으로 2,500km쯤 떨어진 남태평양 해역에 산재한 8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졌고 약 20만 명의 인구를 가진 미니 군도국가랍니다. 


이 나라의 통계를 보면 한숨부터 나옵니다. 국민의 취업률은 7% 정도인데 취업자 대부분이 관광업에 종사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최고 빈곤국 중 하나인 바누아투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900달러로 전 세계 233개국 중 207위랍니다. 아무리 행복이 물질적인 부에 의해 결정되진 않는다지만 어떻게 이렇게 가난한 나라가 행복지수 1위를 차지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나라의 한 관리는 바누아투 국민이 누리는 행복의 비결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물질이 풍부한 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직접 와서 느끼면 삶을 조금 알게 될 거라고 대답했답니다. 


바누아투에는 약 사십 명 정도의 한국인이 살고 있습니다. 그 중 어떤 분이 한 신문과 인터뷰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바누아투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는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지 않고 단순소박하고 서로 나누고 존중하는 생활방식 때문이랍니다.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중대한 사회문제인 자살이 이 나라에선 지난 5, 6년 동안 단 한 건도 없었다가 얼마 전에 한 건 있었답니다. 자살자가 없는 이유는 공동체가 개인 삶에 든든한 의지가 되기 때문이랍니다. 각 섬의 족장과 연장자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공동체가 개인의 삶을 지지하고 있다는 거지요.



마지막으로 중미의 코스타리카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이 나라는 영국 신경제재단의 최근 조사에서 행복지수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 조사는 국민이 자신의 생활만족도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수명, 의식주를 위해 자원을 생산하고 폐기하는 데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등의 변수로 측정됐습니다. 이 나라가 1위를 차지하는 데는 환경과의 친화성이 큰 요인이 됐답니다. 이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나라라는 명성을 갖고 있습니다. 코스타리카는 예일대학과 컬럼비아대학 전문가들이 발표한 ‘2010년 환경성과 지수’에서 163개국 중 3위를 차지했습니다. 영국 BBC 방송은 코스타리카가 친환경적 태도와 행복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나라이며 덜 물질적인 생활을 함으로써 일상이 단순해지고 그래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게 되고 그리하여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진 나라라고 설명합니다. 


환경문제와 관련해서 이 나라가 취한 조치는 가히 획기적이라 하겠습니다. 이 나라는 그 어떤 선진국도 취하지 않는 정책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코스타리카는 개발도상국으로는 처음으로 2021년에 탄소중립국을 이루겠다고 선언했고 대규모 식목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1980년대에는 삼림이 국토의 20%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절반 이상으로 높아졌습니다. 1997년에는 이산화탄소세를 앞장서서 도입하여 이를 재원으로 산림보존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 에너지 공급원의 90% 이상이 재생가능 자원이란 사실에 이르러서는 탄성이 나옵니다. 


마지막 웃음, 그것은 희망


‘어느 희망에 관한 이야기’는 <십계명> 영화 열 편 가운데서 유일한 블랙코미디입니다. 다른 영화들은 모두 심각한데 마지막 에피소드인 이 영화만은 웃게 만듭니다. 저는 영화 제목이 왜 ‘어느 희망에 관한 이야기’일까를 생각해봤습니다. 


고대 희랍철학은 사람의 몸과 영혼을 철저하게 구별했습니다. 그 중 어떤 분파(分派)는 몸을 영혼을 가두는 감옥으로 봤습니다. 영혼은 몸에 갇혀 있는 동안 자유롭지 못합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영지(靈知, Gnosis)를 얻으면 몸이 죽는 순간 영혼은 자유로워진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런 사상의 영향을 신약성서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신약성서는 영지주의와 대립하고 싸웠지만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싸우면서 영향 받았던 거죠. 


영지주의 가르침 중에는 관심이 가는 흥미로운 내용이 많습니다. 그들이 구약성서를 이해하는 방식 중에는 잘못된 것도 적지 않습니다. 물론 당시 상황 속에서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그 중 하나는 구약성서가 전적으로 물질적 사고에 머물러 있다고 본 겁니다. 구약성서는 영혼과 육체를 철저하게 구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물질적인 차원에만 매몰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희랍철학처럼 둘을 철저하게 구별하진 않지만 물질의 차원을 벗어난 뭔가가 있다는 생각은 구약성서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탐심을 규제하는 십계명 중 마지막 두 계명에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계명이 겉으로 드러난 행위만 규제하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사람의 내면을 규제하려 했다는 사실은 구약성서가 겉으로 드러난 행위가 전부는 아니라고 이해했음을 보여줍니다. 구약성서는 겉으로 드러난 육체와 행위와 연관되어 있는 내면의 무엇이 존재함을 전제합니다. 그걸 ‘영혼’으로 부르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그런 뜻에서 예수께서 십계명을 극단으로 몰고 가거나 내면화하신 일도 전례가 전혀 없진 않습니다. 계명은 궁극적으로는 사람의 내면 또는 영혼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 영화 <십계명-어느 희망에 관한 이야기>


영화는 웃음으로 막을 내립니다. 형제는 자기들이 서로 의심했음을 무언으로 고백하고 용서를 빕니다. 탐욕에 대한 탐욕을 이기지 못해서 모든 걸 잃어버렸음을, 그래서 엉뚱한 사람들의 욕망을 채운 걸 알고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크게 웃습니다. 


이 웃음은 뭘 의미할까요? 어떤 약점을 갖고 있든지, 어떤 실수를 저지르고 어떤 실패를 했든지, 얼마나 많은 계명을 어겼든지 사람에게는 새로 시작할 기회가 있다는 메시지가 아닐까요? 저는 이들의 웃음에서 그런 메시지를 읽었습니다. 탐욕으로 누군가를 지배하려 했다가 오히려 탐욕의 지배를 받게 됨을 경험한 후 애초부터 자기 게 아닌 것에 대한 미련과 탐욕을 버리고 새로 삶을 시작하면서 웃는 웃음 말입니다.


모두의 궁극적인 목표인 행복은 거저 얻어지지 않습니다. 행복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탐욕을 채워서 행복해지려 한다면 그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탐욕은 채우면 채울수록 새로운 탐욕이 새롭게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탐욕이란 채우고 또 채워도 결코 채워지지 않는 것에 대한 갈망이기 때문입니다. 


행복지수에 대한 조사는 행복해지는 데는 다양한 길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덴마크 식으로 철저한 사회보장제도가 행복의 조건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누아투 식으로 물질적 풍요에 집착하지 않고 단순소박하고 서로 나누고 존중하는 생활방식이 행복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코스타리카 식으로 자연과 더불어 사는 데서 행복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언뜻 보면 별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세 나라가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란 사실이 놀랍지만 공통점이 보입니다. 세 나라가 방법은 다르지만 탐욕에 지배되지 않고 그걸 제도와 문화로 제어한다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덴마크는 세금을 통한 재분배제도로, 바누아투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 윤리로, 코스타리카는 자연의 리듬에 순응하는 자세로 말입니다. 


이런 걸 보면서 행복은 노력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음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행복은 혼자 누리려 해서는 결코 누릴 수 없는 신기루일 뿐이란 사실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는 계명은 이런 점에서 여전히 지켜져야 하는 소중한 계명입니다. 




▶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1편 보기 


▶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2편 보기 



[필진정보]
곽건용 : LA항린교회 담임목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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