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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 속의 ‘베로니카’는 어디에 있습니까?
  • 고보민
  • 등록 2015-04-15 16:39:29
  • 수정 2015-04-15 18:4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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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 제6처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 드림을 묵상합시다."


베로니카(Santa Veronica)라는 여인이 실존인물인지 여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교회 안에서 또 밖에서, 여러 전설과 예술작품 속에서 전해 내려져 왔다. ‘십자가의 길’ 제6처를 포함한 총 14처의 십자가의 길이 완성된 때는 교황 클레멘스 12세 때인 1731년 이라고 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베로니카는 예수님께서 무거운 십자가를 메고 골고타 산을 오르실 때 군중 속에서 주님을 지켜보던 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힘겹게 언덕을 오르시는 예수님을 보며 마음이 아팠고, 가지고 있던 수건으로 주님의 얼굴에 흐르는 피땀을 닦아 드렸는데 거기에 예수님의 얼굴이 찍히는 기적을 경험했다고 한다. 베로니카라는 이름은 ‘vera icona’, 여기서 ‘베로’는 라틴어로 ‘베라’(참, 진실한)이고 ‘이카’는 ‘아이콘’ 즉 성화상을 뜻하므로, 그녀의 이름은 그 자체가 그리스도의 ‘참 모습’이란 뜻이다.


베로니카의 땀수건은 역사와 신화의 경계를 넘나들다가 944년 콘스탄티노플에서 확인된다. 그 후 13세기 제 4차 십자군 원정 때 인 교황 보니파치우스 8세(재위, 1294-1303) 때 로마의 베드로 성당에 모셔져서 14세기에서 15세기 초에 큰 공경을 받다가 1527년 신성로마 황제 카를 5세의 용병들이 로마 대약탈을 저지르면서 소실되었다고 한다.


베로니카는 참으로 용기 있는 여성이었다.


예수님이 골고타 산을 오르시던 그 수난의 때에는 그 동안 예수님을 따르던 여러 제자들도 모두들 다 도망가고, 주변 사람들도 혹여나 ‘죄인’ 예수님과 연관성을 갖게 되어 같이 잡혀 들어가 고초를 겪지 않을까 예수님을 알았다는 사실 조차 쉬쉬 하던 상황이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마치 로마군인들에게 충성심을 보여주듯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죄인’ 예수님을 오히려 조롱하며 맘껏 비웃고 있었다. 아니 로마 병사의 채찍이 무서워서 예수님이 불쌍해 보여도 예수님의 근처에 갈 엄두를 못 냈는지도 모른다.


이 때 일개 동네 아줌마인 베로니카는 서슬 퍼런 로마 병사들의 눈길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예수님께 다가가서 그의 피와 땀을 닦아 드린 것이다. 그녀는 그저 죄 없이 보이는 안타까운 청년 ‘죄인’ 예수의 십자가 고행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녀는 그 당시 자신이 지니고 있던 물건 중 ‘죄인’ 예수님을 위로 할 수 있는 가장 쓸모 있는 것이었던 수건을 내민다. 이 행위는 단순해 보이지만 그 당시 상황으로는 상당히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그야말로 스스로의 목숨까지도 담보로 한 행위이다.


예수님은 수건을 건네는 이 여인의 깊은 마음, 즉, 자신을 향한 측은지심과 사랑을 느끼시고는 ‘당신의 얼굴 형상이 담긴 수건’을 선물로 주신다. 과연 우리는 과연 같은 상황에서 이러한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 평소에 식당에서 누가 알아 볼 까봐 두려워 식사기도를 위한 십자성호도 편히 긋지 못하는 우리네 일상에 비하면, 베로니카는 참으로 용기 있고 따뜻한 여성이다.


세월호 1주년, 1년 전의 베로니카들


1년 전, 2014년 4월 16일 벌어진 ‘세월호 침몰 사고’는 그 자체로 마치 예수님의 수난처럼 우리들의 마음을 크게 아프게 한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너무나 허무하게도 많은 사망자, 특히 어린 학생들의 죽음을 낳은 이 사건 내에서도 구조의 ‘수건’을 내밀던 세월호의 ‘베로니카’들이 있었다.


많은 학생들을 구출하고도 스스로는 구조되지 못한 여러 단원고 선생님들, 평화로이 조업하다 생업을 포기한 채 긴급하게 구조에 뛰어든 민간 어선들, 전국 여기저기에서 구조 자원봉사를 하러 모여든 잠수부들과 구조요원들. 이 비극적인 사건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구조를 도운 이 ‘세월호의 영웅들’이 바로 우리의 ‘베로니카’들이 아닌가 싶다.


사건 이후에도 우리 모두가 계속 기도 속에서 죽은 자들은 기리고, 산 자들은 사회가 잘 보살피고 기억하며 반드시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 한편 이 사건은 1년이 지나도 여러 가지 면에서 마무리가 석연치 않다. 안전 관련 관습의 문제, 제도의 문제, 인사의 문제 등 많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들이 상징적으로 담긴 중요한 사건임이 분명하다.


다시금 아직까지도 눈물 흘리고 있는 직간접 세월호 피해자들의 고통에 ‘베로니카의 수건’을 내밀어야 할 때이다. 즉, 우리에게는 불의로부터 고통을 겪는 자들을 위로하고, 또 그 불의에 같이 대항해 주는 용기 있는 연대의식이 필요하다. 냉소와 무관심, 편견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하느님께서 알려주신 ‘사랑’을 실천하는 모든 순간이 달콤한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뜻을 사는 것,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르는 길은 ‘고통의 인식’을 더 예민하게 할 수 밖에 없는 몹시 고통스런 길이다. 하느님의 말씀인 복음을 읽고 실천해보려고 할수록 더욱 더, 그 동안 인식하지도 못했던 자기 자신의 죄와 이웃의 고통에 오히려 눈을 뜨게 된다. 한편 그 고통을 인내하고 ‘열린 사랑’으로 겸손히 대응한다면 고통 속의 은총, 고통 속의 참 평화를 느낄 수 있다.


우리 안의 ‘베로니카 정신’, 그녀가 가졌던 용기와 결단을 다시 일깨워야 한다. 냉소와 편견, 무관심을 내려놓고, 더 나아가 눈 앞의 개인적 손해를 감수하고 전체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죄와 욕망을 다스리며 현재 고통 중인 사람들의 고통에 진심으로 눈을 뜨고 ‘사랑의 수건’, ‘관심의 수건’을 내미는 것. 이것이 세월호 1주기를 맞은 현재 우리 모두가 깊이 묵상해 봐야 할 점이다.

덧붙이는 글

고보민(베로니카) : 유아세례를 받고, 천주교 신자로 살고 있는 아이 셋의 엄마이자 주부 연구자이다. 서강대에서 국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서울의 한 대학에서 국제통상, 국제경영 등 과목들을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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