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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장은 빨리 밖으로 나와야
  • 이상호 편집위원
  • 등록 2015-09-02 10:37:11
  • 수정 2015-09-02 12: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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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 가면 꼭 한 번 찾아봐야지 하는 곳이 있다. 지난 봄 부터 몇 번 계획은 세웠지만, 아직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다. 전에 심도직물이라는 공장이 있던 용흥궁 공원이 그곳이다. 강화성당 근처다. 거기에 가서 ‘강화도 심도직물 사건 기념 조형물’을 보고 싶다.


천주교 인천교구는 지난 5월 10일 강화도 심도직물 사건 기념 조형물 축복식을 거행했다. 교구장인 최기산 주교가 직접 주례했다. 그만큼 비중 있는 행사였다는 이야기다.


조형물에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는 성경 말씀이 새겨져 있다. 그 앞에 놓인 표석에는 ‘가톨릭 노동사목의 시작으로, 1968년 산업화의 그늘에서 고통당하던 심도직물 등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한국 천주교회와 가톨릭 노동청년회가 그 첫 발을 내디딘 곳’이라고 쓰여 있다.


(사진출처=천주교 인천교구)


전해 듣거나 뉴스를 통해 알게 된 그 조형물과 표석을 직접 보고 싶은 것은 지금 가톨릭교회가 그토록 자랑스러운 전통으로 여기는 가톨릭 노동사목, 가톨릭 노동운동이 바로 그곳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한국 가톨릭 노동운동의 성지인 셈이어서 그랬다.


심도직물 사건은 1967년 5월 심도직물 노동자들이 가톨릭노동청년회 회원 중심으로 노동조합을 결성하면서 본격화된 노사 갈등으로 1968년 2월까지 계속됐다. 그 때 천주교 주교단은 1968년 2월 9일 ‘사회정의와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한다’는 제목의 공동 성명서를 발표해 노동자들을 지지했다.


주교단이 노동문제에 대해 공동 성명을 발표하기는, 그것도 노동자의 편을 든 것은 처음이었다. 암울했던 유신독재시절, 그 칠흑 같던 어둠 속에서 끈질기게 지속됐던 가톨릭 노동운동은 그렇게 막이 올랐다.


조형물 축복식에 앞서 인천교구가 노동자 주일로 지내는 5월 3일에는 인천 가톨릭회관에서 ‘강화 심도직물 사건의 역사적 기억과 미래의 노동사목’을 주제로 심포지엄과 기념 미사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인천교구 노동사목위원회 한상욱 부위원장은 “교회는 사회교리를 중심으로 노동권에 앞장섰고, 노동자를 자신의 문제로 여기고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심도직물 사건으로 시작된 교회와 노동자의 연대는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그 이후 교회는 변했고, 이는 병원, 학교, 사회복지 운영이 대형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인천교구 노동사목위원회 김윤석 신부는 진단했다. 교회가 고용주의 모습을 보이면서 교회에 자본가 계급의식과 관료주의가 자리 잡은 대신 노동자와 교회의 연대는 느슨해졌다는 것이다.


한상욱 부위원장은 심도직물 사건을 예를 들면서 교회 밖의 노동자들은 교회가 자신의 커다란 울타리라는 걸 알게 돼 교회 품에 안겼다며, 이런 과거가 현재로 이어져 교회적, 역사적 가치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일부 청중들은 인천교구에서 운영하고 있는 국제성모병원과 인천성모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들어 노동사목이 교회 쇄신에 앞장서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인천교구 노동사목을 담당했던 장동훈 신부(인천 가톨릭대학교)는 "고용주가 된 교회 역시 어쩔 수 없어 사업장에서는 노동자와의 신뢰가 많이 깨졌다"면서도 "그럼에도 교회는 거듭나는 중이다"고 말했다.


조금 오래된 이야기지만, 지난 2013년 4월 28일 인천교구는 노동자 주일을 맞아 갑곶순교성지 지하성당에서 기념 미사를 봉헌했다. 미사를 주례한 교구장 최기산 주교는 본기도에서 “하느님께서 저희를 사랑하신 것처럼 저희도 가난한 이들, 특히 철탑에서, 천막에서, 거리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애쓰고 있는 이들과 위로하고 연대하며 세상을 새롭게 하는 성령의 힘을 드러내게 하소서”하고 기도했다.


강론에서는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전 세계에서 일을 가장 많이 하며, 또 우리는 비정규직과 실직자,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많은 어려운 사회에 살고 있다”면서 “우리가 얼마나 감사하고 절약하며, 다른 이들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하면서 사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두가 잘 살아야 행복하지, 어느 집단만 잘 살고 사회 분위기가 어지러우면 마음 놓고 돌아다니지도 못 한다”며 “가진 것을 나누고 모두가 동반성장해야 아름다운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노동자들이 대우받으며 모두가 함께 행복하고 사랑이 넘치는 나라가 되도록 하느님께서 축복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자”고 청했다.


인천교구와 관련해 이런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그리고 그 장면들을 길게 소개한 것은, 산업별 노조 국제조직인 UNI Global Union 홈페이지에서 인천성모병원과 국제성모병원 관련 기사를 최근 연거푸 봤기 때문이다. 2000년 1월 1일 출범한 이 조직에는 150개 국, 900여 조합이 가입되어 있다. 조합원 수는 2,000만 명에 이른다.


8월 20일에는 ‘한국 가톨릭병원 계속 투쟁 중’, 25일에는 ‘한국보건노조: 가톨릭 인천교구는 이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만 한다’, 31일에는 ‘단식투쟁 6일째’라는 기사가 각각 실렸다.


그 기사들을 보는 순간, 어찌하여 이런 일들이 인천교구에서 일어났을까, 아니 일어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한국 천주교 노동운동의 성지이고, 이를 기념해 조형물을 만들어 세우고, 교구장이 직접 주례해 기념 미사를 봉헌하고, 그 뜻을 기리는 세미나를 열고, 노동자 주일에 교구장이 ‘감동적인’ 강론을 한 곳이 바로 인천교구인데. 더욱이 매년 5월 첫째 주를 노동자 주일로 정하고 노동자를 위한 미사를 전국에서 유일하게 주교좌 성당에서 집전하는 교구인데 말이다.


인천성모병원과 국제성모병원 사건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들 병원들이 돈벌이 경영과 독재 경영, 인권유린 경영을 하고 있다는 것이 노조와 시민단체들의 주장인 반면, 병원 측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국제성모병원의 경우 지난 6월 허위 환자유치 등 의료급여 부당청구 혐의로 병원장과 의사 등 17명이 적발됐다. 인천성모병원의 돈벌이 경영실태도 내부 문건과 증언 등을 통해 밝혀지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기자회견에서 진상조사 및 해결을 요구했고, 국회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


노조와 시민단체들은 병원과 주교좌 성당 등에서 집회를 갖고 문제 해결을 위해 교구장 면담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러자 인천성모병원 노조위원장은 단식투쟁에 들어갔고, 노조는 이 문제를 가지고 바티칸으로 가겠다고 나섰다.


이런 과정을 보면 이해하지 못할 부분들이 적지 않다. 경찰이 성당 안에 들어온 것이 성당의 요청이었나, 경찰의 자체 판단이었느냐는 후에 명확히 밝혀질 것이어서 뒤로 돌린다 하더라도, 우선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인천교구의 태도다.


▲ 8월19일 전국보건의료노조의 집회가 있던날, 천주교인천교구 답동주교좌성당 앞을 경찰이 막고 있다.


지금까지 이와 비슷한 다른 경우를 보면, 당사자들이 만나 이야기하면 대개 어떤 식으로든지 해결이 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쪽에서 만남 자체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교회는 성직자는 노사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면서, 병원 문제는 병원에서 알아서 하라며 완전히 뒤로 빠져 있다. 그러니 문제는 눈덩이 구르듯 갈수록 급속히 커지고 있다.


성직자는 노사문제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철칙인가? 그렇다면 조형물까지 세우고 교구장 집전 미사까지 봉헌한 심도직물 사건은 무엇인가? 그건 옛 날 이야기인가? 다른 교구나 다른 가톨릭 병원들의 경우는 그렇지 않은데, 그럼 그것은 그들이 잘 몰라서 그런 것인가?


병원 운영을 좌지우지 하고 있는 것이 교회라는 사실은 아마 교구 사람들도 부인하지 못 할 것이다. 그런데도 교회는 누가 정했고, 인정하고 있는지 모르는 자신들만의 원칙을 내세우면서 뒷짐 지고 있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고, 사태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도무지 해결의 기미조차 찾기 힘들게 되어 가고 있다.


교구장인 최기산 주교가 빨리 밖으로 나와야 한다. 최 주교는 인천교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 그만큼 권한도 크다. 절대적이다. 반대로 의무 또한 그만큼 크고 막중하다. 어찌됐건 이번 병원 사태는 교회가 연관된 사건이다. 그런데도 교구장이 ‘원칙’을 내세우며 나 몰라라 하고 있으면, 그것은 결국 신자들 뿐 아니라 시민들을 모욕하는 것이고, 무시하는 것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게 된다.


정 그 원칙이라는 것을 깨트릴 수 없다면, 그 이유를 공개적으로 밝혀야 한다. 그것도 불가능하다면, 더 큰 의혹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도대체 뭐가 있길래 만나 이야기하자는 것을 그토록 피하는 것일까? 전에 했던 강론 등을 들으면 그렇지 않던데, 하는 의문을 갖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인천교구 성직자들은 심도직물에서부터 면면히 내려오고 있는 노동사목의 훌륭한 전통을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때다. 아무리 '교회는 변했고, 병원 학교 사회복지 운영이 대형화 되었다'고는 하지만, 교구장 말씀대로 '모두가 잘 살아야 행복'하기 때문이다.


노조는 교구장을 끝내 못 만나면 바티칸으로 가겠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을 방문한 한국 주교단에게 “세월호 문제가 어떻게 돼 가고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교황이 앞으로 언젠가 “인천성모병원 문제는 어떻게 됐습니까?”라고 묻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교구장이 빨리 나와야 할 또 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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