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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시학 : 감옥에 핀 나팔꽃 (김창규)
  • 김창규
  • 등록 2015-09-03 16:01:41
  • 수정 2015-09-22 10:3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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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 핀 나팔꽃



그의 이름을 몰라도

나팔꽃의 이름은 안다

감옥안의 단식 투쟁동안 참 많은 생각

사귀던 여학생의 얼굴이 떠올랐고

어머니가 용돈을 쥐어주던 그 곱던 손과

아버지가 등을 두드려주던 아침

햇살이 두둥실 미소를 짓던 날

지상을 떠날 시간이 되었다


창살 밖의 하늘은 여전히 불안하고

탱크와 장갑차 공수부대

그 앞에서도 소리를 지르고 맞섰던

마지막 저항 순결한 아침을 맞이하였던

시민군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오월의 시민들이 총을 들었던

그날은 해방의 세상이었다


얼마나 굶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내 영혼의 맑은 눈 속에 그분이 보였다

어머니의 따뜻한 손이었다

내 이마에 손을 얹고

축복하듯 기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이 내가 지상에서 마지막 본 환상이었다


감옥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을 만났기 때문이었고 그분은 내게

영원한 생명의 빛나는 오월의 화관을 씌워

자유와 평등의 세상을 살게 하셨다


내가 마지막 보았던 무등산

그 하늘아래 피었던 나팔꽃이 피는 아침

우주에 살아계신 그 분께서 나를 맞이하셨다

수십 발의 총탄을 맞고 죽은 청년이 그분의 왼쪽

거기서 나를 일으켜 세웠다

더 이상 배고프지 않았다




[필진정보]
김창규 : 1954년 충북 보은 출생으로 한신대학교를 졸업했다. 분단시대문학 동인, 한국작가회의 회원이며 시집 <푸른 벌판> 외 2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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