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은 22일 오후 3시 50분께 미국 워싱턴 D.C. 인근 메릴랜드 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 5박6일 간의 미국 방문을 시작했다.
이날 공항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내외와 두 딸이 전용기에서 내려오는 교황을 직접 영접했다.
교황은 쿠바에서와 마찬가지로 역대 교황들이 입던 붉은 망토 대신 흰색 수단'(카속)만 입었으며, 트렙에서 '주케토'(교황 모자)를 벗어든 채 내려왔다. 공항에 나온 수백 명의 환영 인파는 '미국 방문을 환영합니다'를 연호했다.
교황은 오바마 대통령과 악수를 한 뒤 부인 미셸 여사, 두 딸, 미셸 여사의 어머니, 조 바이든 부통령 내외, 미국 주교단과 차례로 인사를 나눴다. 이후 백인 1명과 흑인 2명, 히스패닉계 1명 등 4명의 화동과 반갑게 인사했다.
교황은 앤드루스 공군기지 귀빈실에 잠시 머문 뒤 양 옆이 개방된 교황 전용차 '포프모빌' 대신 미국 측에서 준비한 승용차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교황이 탄 차는 대형 세단이나 방탄차가 아니라 이탈리아 산 검은색 소형 피아트 500L로, 이 모델은 배기량 1,400cc 안팎의 소형차에 속한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의 공항 영접은 매우 이례적으로, 교황에 대한 각별한 예우의 뜻이 담긴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교황 전용기 트랩 아래에 레드카펫을 깔았고, 28명으로 구성된 의장대 사열도 있었다.
2008년 부시 전 대통령이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공항에서 영접하긴 했으나, 그 이전까지는 다른 외국 정상들과 마찬가지로 백악관에서 교황을 맞이하는 게 관례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미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교황은 그동안 선진국의 규제받지 않은 자본주의를 줄곧 비판해 왔기 때문에 이번 미국 의회 및 유엔총회 연설에서 어떤 언급을 할지 주목되고 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빈민촌에서 19년간 사목한 교황은 선진국 자본주의를 '야만적 자본주의', '악마의 배설물' 등으로 불렀으며, 최근에는 생태회칙을 발표하는 등 기후변화와 소득 불평등, 동성 결혼, 이민자 문제 등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교황은 24일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을 마친 뒤 워싱턴 D.C.의 성 패트릭 성당에서 수백 명의 노숙자와 극빈자, 이민자들을 만난다. 이후 일용 노동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성 마리아 식사' 푸드 트럭 봉사 현장을 찾을 예정이다.
미국 정부는 교황이 방문하는 도시에 '국가 특별 안보행사'를 선포하고, 이에 준하는 경호를 하도록 관계 기관에 지시했다.
국가 특별 안보행사는 미국 대통령 취임식, 대통령 국정연설, 정당의 정치 행사,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의와 2001년 9·11 사태 직후 열린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 2002년 미국프로풋볼(NFL) 슈퍼볼에서만 발동됐다.
교황의 오는 27일까지의 미국 방문 일정은 다음과 같다.
◆ 23일 : 오바마 대통령 회동, 워싱턴 시내 퍼레이드, 성 매튜 성당 기도, 바실리카 국립 대성당 미사 집전
◆ 24일 : 미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 대중과의 만남, 성 패트릭 성당 방문
◆ 25일 : 유엔총회 연설, 9·11테러 희생자 추모 박물관 방문, 매디슨 스퀘어 가든 미사 집전
◆ 26일 : 필라델피아 성 베드로와 바오로 대성당 미사 집전
◆ 27일 : 세계 천주교 가족대회 거리행진, 미국 출발
한편 미국 존 베이너 하원의장과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 해리 리드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 낸시 펠로시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 등 4명의 지도부는 교황의 24일 의회 합동연설 때 전체 의원들이 지켜야 할 에티켓을 담은 이례적 서한을 발송했다.
교황이 연단에 서기위해 본회의장 중앙 통로를 지날 때 몸을 만져서는 안 되고, 사진을 찍어서도, 교황 오른 손에 낀 금반지에 입을 맞춰서도 안 된다고 요청했다.
이는 연설을 전 세계와 지역구민들이 지켜보고 있는 만큼 순조롭게 행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으로, 의회 지도부는 이러한 요청을 깨는 의원들이 나올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여야 의원 50명으로 '감시조'를 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