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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해야 할 시복청원
  • 현이동훈
  • 등록 2015-10-01 10:40:57
  • 수정 2015-10-01 16: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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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바티칸과 중국의 관계가 크게 냉각되기 시작했다. 중국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만교회와 바티칸이 중국 순교자들을 시성한 것이다. 중국의 애국회 문제로 골치 아픈 교황청은 그때부터 더 골치 아프게 됐다.



중국 정부는 반역자들을 가톨릭교회가 정당화 시킨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때부터 중국정부는 틈만 나면 교황청 일치교회인 지하교회를 탄압한다. 최근에는 중국정부가 가톨릭 성당과 개신교 예배당 십자가를 불법으로 지정해 철거하기도 했다. 이에 교황청 분립 친정부 교회인 애국회는 지하교회의 고통에 침묵하고 있다.


이런 중국의 현실에서 현재 남한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대 순교자 시복청원 운동을 생각해 보자. 이 시복청원 운동은 두 군데서 진행 중이라고 한다. 서울대교구와 베네딕토 수도회이다. 시복대상자들 다수가 침묵교회인 평양교구, 함흥교구-덕원수도회자치구이다. 서울대교구가 추진하고 있는데 교구장이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하고 있다. 베네딕토회 역시 아빠스가 함흥교구-덕원자치구 서리를 맡고 있다.


시복시성은 신중해야 하는 작업이다. 문제는 순교자이다. 순교자는 시복시성에서 행적이 남아있으면 기적심사는 면제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이 불분명하거나 없는 사람도 쉽게 대상자가 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순교지역의 역사를 고려하지 않는 문제가 생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정중규씨가 지적한 대로 현대순교자 시복청원 운동은 세기를 너무 당겼고 이념적인 느낌이 강하다. 중국의 사례처럼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 사실 북한 정부 입장에선 일제부역자들, 나치전범들, 미제침략자들을 처벌했다고 할 것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에 소극적이었던 대한교회 성직자들과 수도자들, 독일인 선교사들, 미국인 선교사들이 있었다. 이들은 북한 정부에 의해 탄압 당했고 강제 송환 당했다. 북한은 지금도 이 문제를 자신들의 정당한 처리였다고 주장한다.


북한이 지금도 이런 상황인데 남한교회가 단독으로 현대순교자들을 시복청원을 한다는 건 무리다. 게다가 북조선 침묵교회 중 유일한 평양 장충성당 신자들과 조선가톨릭교협의회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처사다. 시복대상자 가운데 친일부역자가 있을 수 있는 몰역사성 문제도 있다. 


▲ 103위 순교 성인화, 문학진 화백


시복청원 이전에 남북 역사학자들이 함께 모여 연구했어야 했다. 이명박 정부 이후부터 남북교류가 힘들어진 상황이다. 비록 힘들어진 상태이지만 북조선이 가톨릭 박해를 인정하게 하고 유감을 표하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다.


남한 가톨릭교회는 기념보다 반성을 많이 해야 한다. 교구설정 기념한다고 바쁜 교구가 있는데 그런 위선 그만하고 친일부역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게 먼저다. 3.1 투쟁 등 독립운동에 소극적이었고, 한국전쟁을 막지 못했으며, 정신대 희생자들과 강제징집 및 강제노역 희생자들을 외면한 죄부터 반성해야 한다.


대한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 가톨릭신자 독립군 의민단에 대한 재조명이 있어야 한다. 일제부역을 거부한 가톨릭신자들, 일제에 저항하다 성직을 박탈당하거나 그만둔 성직자들과 수도회를 그만둔 사람들을 생각해야 한다. 독재정권 시절 저항의 표시로 몸을 불태웠으나 자살이란 낙인이 찍힌 가톨릭신자 민주열사와 노동열사에 대한 명예회복을 먼저 해야 한다.


작년 시복식에서 제외된 두 번째 조선인 사제 최양업 신부의 시복청원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만 한다. 아시아 평화를 고민한 안중근 토마스 의사도 먼저 시복되어야 한다. 기념만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그리고 베네딕토회는 흥남철수 당시 많은 사람을 살렸던 미국 뉴튼수도원의 마리누스 수사의 시복청원부터 먼저 하라고 말하고 싶다. 


필자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다. 주일학교 교장선생님이 성지순례 할 때 어느 마을 어르신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역사를 팔아먹는 놈들"이라고. 그 당시엔 그 어르신이 가톨릭을 몰라서 한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에 와서 잘못되거나 성급하게 추진된 시복시성은 역사를 팔아먹는 일이 되는 것임을 깨달았다.


시복청원을 중지하고 다시 생각해 보길 바란다. 10여 년 전 중국 순교자 시성식처럼 성급히 추진한다면 북한 교회 신자들은 박해를 받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남한교회는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합리화했던 창세기의 카인이 되고 말 것이다.

 


[필진정보]
현이동훈 (안토니오) : 가톨릭 아나키스트로 아나키즘과 해방신학의 조화를 고민하며 실천하고 있다. 장애인 인권과 생태주의에도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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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2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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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dmin2015-10-01 15:49:25

    안녕하세요 가톨릭프레스 편집국입니다.
    댓글 남겨주신 이종원님 감사합니다.

    확인결과, 베네딕토 16세 교황 재위 시절인 2005년 11월 21일 함흥교구장인 이동호 아빠스께서 사임하자 당시 춘천교구장인 장익 주교를 함흥교구장으로 임명하였고, 덕원자치수도원구 자치구장으로 이형우 아빠스를 임명하셨다고 합니다.

    덕분에 한 가지 사실을 더 알게 되었네요.
    가톨릭프레스에 관심가지고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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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mem2015-10-01 11:00:14

    시복 청원은 평양교구 소속 대상자는 서울대교구가 함흥교구-덕원수도원차지구 소속 대상자는 성 베네딕도회 왜관 마오로 플라치도 수도원에서 청원한다는 기사의 내용은 맞습니다만, 함흥교구장 서리는 2005년인가 2006년에 춘천교구장이 맡는 것으로 변경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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