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글에서 나는 ‘물음표’의 의미와 생명력을 운위하며, ‘국정교과서로 역사에 대한 물음표를 결코 차단할 수 없음’을 설파했다. 우리는 파란만장한 근현대사를 경험했다. 이민족의 오랜 강압 통치, 민족반역세력의 발호, 동족간의 참혹한 전쟁, 산업화로 치장되는 오랜 독재 권력의 폭압, 피어린 민주화 투쟁, 그리고 10년 동안의 민주정부 경험도 쌓았다.
‘분단’이라는 이름의 굴레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 속을 살고 있는지, 평화와 통일이 얼마나 중요한 과업인지를 모르는 국민은 없다. 세계에서 가장 냉혹하고 위험한 독재 권력이 유지되고 있는 북한의 실상도 모든 국민이 알고 있다. 이미 체제 경쟁은 끝났다는 사실, 남한의 경제력이 북한보다 40배에 달한다는 것도 대부분의 국민이 알고 있다.
한편으로는 남한의 권력과 북한의 권력이 서로를 이용하고 있는 현실, ‘적대적 공생관계’가 암암리에 유지되고 있다는 것도 많은 국민이 알고 있다. 한편으로는 북한을 핑계대면서 한편으로는 북한의 독재 권력을 닮아 가려는 남한의 오늘의 권력 행태를 보며 큰 우려 속에서 분노를 표출하는 국민들도 있다.
파란만장한 역사의 굴곡 속에서 민주화의 경험까지 쌓은 국민들의 의식 수준은 이제 정치권력이 마음대로 쥐락펴락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미 국민들의 의식 속에는 ‘물음표’가 관성화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음표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일부 노년 계층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국민들의 의식 속에서 물음표는 오늘도 관성적으로 생동한다.
그러므로 국정교과서 따위를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성공한다 해도 국민들의 물음표는 계속적으로 생동할 터이고, 그로 말미암아 갖가지 현상들이 생겨날 것이다. 독재 권력이 더욱 강화된다 하더라도 벽돌 틈에서도 풀이 나고, 얼음장 밑으로도 물이 흐르는 현상까지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권력에 중독된 권력 의지
그럼에도 나는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쿠데타’라고도 지칭되는 박근혜 정부의 패악적인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보면서 분별력을 잃은 권력의 천박한 속성을 감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임기 절반을 넘긴 시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선언했다. 부친 박정희 대통령의 친일과 장기 독재를 미화하고 윤색하면서 산업화 업적을 크게 칭송하는 국정교과서를 임기 안에 만들어 2017년 박정희 대통령 탄신 100주년을 장식하고 싶은 의지가 너무도 뚜렷하다.
누가 봐도 5년짜리 정권의 과욕이다. 박근혜 정권 이후에도 국정교과서가 유지되리라는 확고한 보장은 없다. 그럼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칼을 빼들었다. 자신의 권력이 5년짜리이고, 자신의 임기 이후에도 국정교과서가 유지되리라는 확고한 보장이 없다는 사실을 그녀 또한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당차게 활을 쏘았다.
국정교과서가 40여 년 전 유신 시절의 유물이라는 사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는 짓이라는 사실, 대다수 국민이 반대한다는 사실도 모를 리 없다. 그것을 알만큼은 알기에 최대한 북한을 끌어들이고, “국민의 혼(魂)” 운운하며 무속인 같은 말까지 하는 것이리라.
이 지점에서 많은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교과서 집착에서 ‘권력에 중독된 의지’를 읽는다. 자신의 임기 이후에도 국정교과서가 유지될 수 있는 토대, 즉 친위 세력의 장기 집권을 도모하려는 의지가 무섭게 작동하고 있음을 읽어낼 수 있다.
그것 또한 과욕임이 명명백백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절대로 그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믿는 구석들이 있기에 그 과욕은 계속 확대 재생산될 것이다.
권력의 견고한 울타리
박근혜 대통령의 권력은 럭비공의 속성을 지녔다. 40여 전에 깊이 체감했던 아버지의 무소불위 제왕적 권력에 대한 향수가 계속적으로 작동한다. 40년 전 퍼스트레이디 시절에 이미 내면화되고 습성화된 권위주의는 특이한 언행으로 표출되곤 한다. 난해하기 짝이 없는 우주인 같은 언설, 자아상실의 일면까지 엿보이는 유체이탈과 심각한 기억 상실, 심리장애의 표출 같기도 한 수많은 갖가지 의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색깔론의 칼을 휘두르는 폭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경기장의 럭비공은 튀는 방향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경기장의 선수들은 럭비공의 방향을 예측하며 행동 대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럭비공은 너무도 돌발적이고 엉뚱해서 아무도 제대로 행동 대처를 할 수가 없다.
경사가 심할 정도로 운동장이 기울어졌기에 럭비공의 방향을 더욱 종잡을 수가 없다. 운동장의 경사각을 이루고 있는 사이비 언론들은 박근혜 정부가 가장 크게 믿는 구석이다. 최근 독일의 유력 언론이 한국 언론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애완견’이라는 혹평 보도를 했지만, 한국의 사이비 언론들은 오히려 그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사이비 언론 보도를 그대로 믿어버리는 50대 이상 노년층의 단순성과 맹목적인 지지도 박근혜 정부가 크게 믿는 구석이다. 생활상이야 어떻든 노년층의 자연 수명은 점점 늘어난다. 수명이 연장되는 것조차도 그들은 과거 독재 권력의 은덕으로 생각한다.
검찰과 경찰, 국정원 등 권력 기관들은 국가에 대한 충성과 정권에 대한 충성을 혼동한다. 정권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만이 자신들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한다. 군대 역시 정권의 친위 조직 성격이 강하다.
이렇게 믿는 구석들이 풍부하고 견고하다 보니, 반민주적이고 헌법 파괴적인 행동이 예사롭게 표출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도 믿는 구석들 때문에 발생되었다. 야당이 극력 반대하고 국민 대다수가 거부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희석되리라는 계산도 믿는 구석이다.
신 유신시대의 신호탄
사실 국정교과서 내용은 별 문제가 아니다. 어떤 내용이 어떻게 기술되건 그것을 둘러싼 물음표들은 계속 생동할 터이므로, 게를 가재라 한다 해서 게가 가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국정교과서 내용보다도, 2015년 이 시기에 40여 년 전의 유물인 국정교과서가 낮도깨비처럼 출현했다는 그 사실이 바로 문제인 것이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발전하고 신장되어야 할 시기에, 그리고 날로 시민정신이 발양되고 있는 이때 느닷없이 독재 시대의 유물이 등장했다는 것은 그대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반영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고 능멸이다. 버스 승객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제 멋대로 역주행을 감행하는 난폭 운전자의 행동이다.
민주주의를 능멸하며 역주행을 감행할 수 있는 배짱에서 나는 괴이한 공포를 체감한다. 더욱 크고 무서운 일을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국정교과서 카드는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신 유신시대의 서막, 신호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비상식적인 일이 한번 벌어지고 위력을 발휘하게 되면 연쇄적으로 더욱 비상식적인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
박근혜 정권은 불법부정선거의 일면도 지니고 있는 18대 대선의 노하우를 지니고 있다.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댓글공작은 세상에 널리 알려졌고, 선관위의 개표 부정도 의심 받고 있는 상황이다. 정권 초기부터 부정선거에 대한 시민들의 치열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견고한 권좌 앞에서 아무런 효력도 발휘하지 못한다.
최근 미얀마에서 벌어진 수치 여사를 중심으로 한 민주세력의 놀라운 승리 소식을 접하면서 제18대 대선의 개표 부정을 주장하는 세장치민주연합 강동원 의원 같은 이는 미얀마처럼 투표소에서의 수개표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지만, 현 정부와 새누리당이 그것을 수용할 리 만무하다.
지난 제18대 대선의 노하우와 대중조작 능력을 갖춘 현 집권세력은 벌써부터 만반의 준비에 돌입하고 있다. 야권의 분열은 끝날 날이 없어 새누리당의 총선 승리와 ‘정권재창출’은 불을 보듯 뻔한 일 같기도 하다.
정권재창출에 대한 집념과 자신감을 바탕에 깔고, 박근혜 정부는 국정교과서와 ‘노동개악’에 저항하는 노동자·농민‧시민들의 행동 추이를 보면서 사회혼란을 빙자하여 국가 공권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비장의 카드를 꺼낼지도 모르겠다.
박근혜 대통령이 여러 가지로 아버지를 모방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공연하고 엉뚱한 상상이겠지만 나는 40여 년 전 박정희 정권 시절의 비상시국국무회의와 계엄령, 긴급조치 따위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때마다 야릇한 공포감으로 온몸을 곱송그리며 주먹을 쥐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