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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선생의 쾌유를 기원하며
  • 지유석
  • 등록 2015-11-18 09:33:31
  • 수정 2015-11-18 17:5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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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노동개악 반대 시국기도회’가 열렸다. ⓒ 최진 기자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을 잇는 지정학적 위치와 어정쩡한 크기 때문에 늘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다툼의 희생양 신세를 감수해야 했다. 이런 질곡은 근현대로 이어지면서 더욱 깊어져 이 땅의 민초들은 기구한 인생을 살아야 했다. 하근찬은 단편소설 <수난이대>를 통해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미증유의 비극을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로 압축해 표현한다. 


아버지 박만도는 한쪽 팔이 없다. 일제 강점기 때 징용으로 끌려가 비행장 공사를 하다 폭격으로 팔을 잃은 것이다. 그에게 3대 독자 진수는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다. 그런 아들 역시 한국전쟁을 피해갈 수 없었다. 아버지는 전쟁터에 나간 아들이 돌아온다는 소식에 들떠 있다. 마중 나가는 길에 아들에게 주려고 고등어도 한 마리 사놓는다. 그런데 기차역에 와보니 아들의 모습은 눈에 띠지 않고, 상이군인 한 명의 모습만 보인다. 그 군인은 목발을 짚고 있었고, 다리 한 쪽은 바람에 펄럭거리고 있었다. 바로 아들 진수였다. 전쟁터에서 다리를 잃은 것이다. 아버지는 이 광경을 보고 실성한다. 


지난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의 물대포 진압으로 쓰러져 사경을 헤메고 있는 백남기 선생의 사연은 <수난이대> 만큼이나 기구하다. 백 선생의 27년 지기이자 후배인 최강은 씨는 16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백 선생을 “1973년에는 유신 철폐 운동하다 수배돼 무기정학 처분 받았고, 1980년 5월 17일 5.18 계엄포고령 선포 전에 학교 기숙사에 있다가 연행됐다”면서 “1981년 3월 가석방으로 풀려난 뒤, 고향으로 내려와 30년 넘게 농촌·농민운동에 전념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어처구니없다. 백보양보해서 일제 강점과 한국전쟁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지만, 어디까지나 외부로부터 강요된 질곡이다. 그러나 백 선생의 경우는 다르다. 


한국 사회의 퇴행, 백남기 선생 거리로 몰아 


우리 사회는 스스로 퇴행을 선택했다. 2008년 이명박 정권의 등장은 퇴행의 신호탄이었다. 현 박근혜 정권은 출범 과정에서 국가정보원(국정원) 및 국군 사이버사령부가 광범위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아왔다. 그러나 이런 의혹은 철저하게 물타기 됐다. 이 정권의 지도부가 나서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을 총지휘하던 채동욱 검찰총장을 찍어내고 수사팀을 공중분해시킨 것이다. 


정권의 공작이 주효했지만 만약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면, 즉 국민이 정권의 작동방식을 면밀히 감시하고, 언론이 감시견 역할을 충실히 했다면 이런 공작은 아예 입안조차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른바 ‘보수층’은 개발독재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혔고,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이런 향수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바로 이때 언론이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다. 감시견 역할을 해야 할 언론이 정권의 선전도구를 자처했다는 말이다. 


이 정권 들어 벌어진 일을 보자.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원정 성추행’, 세월호 참사, 정윤회 문건파동, 성완종 리스트,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 국정원 도·감청 의혹 등 국가의 존립 기반을 뒤흔들 일이 연이어 불거져 나왔다. 이 정권은 그것도 모자라 역사 교과서 국정화마저 밀어붙일 기세다. 그러나 이 정권은 온갖 위기 상황에서도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정권은 위기 때마다 개발독재에 대한 환상과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확대 재생산했고, 이런 전략은 언론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제대로 먹혀들었다. 


백 선생은 여생을 편안히 누려야 하는 분이었다. 백 선생은 인생의 황혼기에 한때 젊음을 바쳐 싸웠던 유신독재의 망령이 부활하자, 이를 보다 못해 다시 거리로 나선 것이다. 그리고 결국 물대포를 맞아 사경을 해매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 14일 경찰은 민중총궐기에 참가한 백남기 선생을 향해 물대포를 조준 사격하고, 쓰러진 백 선생을 옮기는 시민들에게도 물대포를 조준 사격했다. (사진출처=미디오몽구 갈무리)


이 나라의 발전이 박정희라는 독재자의 리더십 때문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구로공단에서 졸린 눈 비벼가며 밤새도록 일하던 이름 없는 노동자들이 일궈낸 값진 열매다. 그러나 여전히 이 나라 사람들 열 명 중 세 명은 박정희 덕분에 잘 산다고 ‘믿는다’. 바로 이런 그릇된 사고가 백 선생의 운명을 기구하게 만든 주범이다. 


백 선생의 상태는 위중해 보인다. 민주-진보세력은 반성해야 한다. 그의 아픔과 질곡은 독재의 망령을 걷어내지 못한 데 따른 귀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전히 독재가 이 나라를 발전시켰다고 믿는 이들에게 당부한다. 하루라도 빨리 미몽에서 깨어나기 바란다. 어느 순간 깨어났을 때, 용도 폐기되기 직전일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백 선생의 쾌유를 간절히 소원한다. 



[필진정보]
지유석 : 베리타스 기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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