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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위로의 조건 (편집장 칼럼)
  • 편집장 김근수
  • 등록 2015-04-22 11:09:41
  • 수정 2015-04-24 18: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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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화가 있다. 사탕을 좋아하는 어느 아이가 있었다. 이를 걱정한 어머니가 의사에게 전화하여 아들에게 사탕을 삼가라는 말을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의사는 그렇게 하겠다고 승낙하였다. 병원을 방문한 아들에게 의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 달 뒤 다시 병원에 오라는 말 뿐이었다. 의사의 말에 갸우뚱한 어머니는 한 달 후 아들과 함께 병원을 다시 찾았다. 이번에 의사는 아들에게 사탕을 덜 먹으라고 당부하였다.


아들이 없는 자리에서, 한 달 전 왜 그런 말씀을 하지 않았냐고 어머니는 의사에게 물었다. 의사는 이렇게 답했다. 자기도 그때 사탕을 즐겨 먹었다고, 그래서 의사인 자기부터 사탕을 끊고 나서 환자에게 조언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고, 그동안 의사는 정말 사탕을 끊었고 그래서 이제 아들에게 말할 면목이 있었다고.


의사뿐 아니라, 부모뿐 아니라 종교인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남에게 할 말은 먼저 자신이 지켜야 한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은 자랑이 아니라 의무다. 부모가 자녀에게 밥 세끼를 먹이는 일은 자랑이 아니라 의무다. 자녀에게 먹을 것을 준 부모가 어디서 그 일을 자랑하지는 않는다. 사제가 미사를 드리는 것은 자랑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다. 주교가 희생자를 위해 미사를 드리는 일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여러 곳에서 거행된 세월호 1주기 추모 미사를 둘러싸고 어색한 이야기가 여럿 들린다. 그동안 세월호에 대해 무관심했거나, 부적절한 발언으로 유가족에게 상처를 준 주교들이 무려 추모미사를 직접 집전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디냐 하고 자화자찬하거나 놀라기도 하는 모양이다. 참 씁쓸하다. 그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고 뽐낼 일인가.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진실된 위로는 누가 할 수 있을까. 세월호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들은 그런 위로를 할 자격이 없다. 그들은 지난 날 자신의 언행을 회개하고, 사과하고, 용서를 청해야 한다. 그것이 먼저다. 유가족에 대한 위로는 다음 일이다.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뉘우치는 일이 먼저다.


가해자, 가해자를 교묘히 편들고 동조한 자. 그리고 방관자는 희생자에게 위로의 말을 건낼 자격이 없다. 지난 1년 세월호 참사에 대해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추모미사 한번으로 느닷없이 칭송받을 수는 없다. 추모미사로 칭찬받기 전에 주교들은 지난 1년의 침묵을 반성해야 한다. 위로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희생자와 고통을 함께 나누는 사람만 희생자를 진실로 위로할 수 있다. 주교들이 희생자 편에 서는 것이 먼저다. 위로는 그 다음 일이다.


예수와 로메로대주교는 가난한 백성들과 운명을 함께 했다. 그래서 예수와 로메로대주교는 가난한 사람을 진실로 위로할 수 있었다. 그 위로는 싸구려 위로가 아니었다.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위로였기 때문이다. 희생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희생자를 감히 위로 하러 들다니, 말도 안 된다.


“이 백성들과 함께라면 착한 목자 되는 일은 어렵지 않다”고 로메로 대주교는 말했다. 그러자 엘살바도르의 가난한 백성들은 “이런 목자와 함께라면 착한 양떼 되는 일은 어렵지 않다”고 화답하였다. 우리도 그렇게 답하고 싶다. 그런데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는 착한 목자는 우리나라에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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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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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seph2015-04-22 14:01:19

    부모가 자녀에게 밥 세끼를 먹이는 일은 자랑이 아니라 의무다. 자녀에게 먹을 것을 준 부모가 어디서 그 일을 자랑하지는 않는다. 사제가 미사를 드리는 것은 자랑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다. 주교가 희생자를 위해 미사를 드리는 일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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