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중태에 빠진 백남기 선생의 가족들이 1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대사관을 방문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관심을 호소하는 서한을 오스발도 파딜랴 교황대사에게 전달했다. ‘존경하올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백남기(임마누엘) 가족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서한은 천주교 신자인 가족들이 직접 작성했으며, 백 선생의 부상 경위와 현 상태, 국내 상황 등에 대한 설명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권오광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연합 대표는 “철저히 진상을 조사해 시시비비를 가려달라고 정부에 호소해왔지만, 조사는커녕 최소한의 인간적 사과도 없었다”며 “염치없는 정부와 염치없는 대통령의 태도에 대해 교황청이 귀 기울여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살인적인 국가폭력, 백남기를 살려내라’, ‘살인적인 폭력진압, 경찰청장 파면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30여 분 동안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광주교구 정의평화위원장 이영선 신부는 “이제는 전라남도 보성에서 혜화동까지 눈물 없이 오고 갈 수 없는 길이 돼버렸다.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서 말 한마디 못하는 남편을 보는 아내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그 아빠를 봐야 하는 아이들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눈물이 나지 않고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며 “오늘 이 자리에 선 것은 슬퍼서다. 편지를 교황님께 보내는 것도 이러한 마음에서다. 인간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 나눠주시는 분이 교황님이라는 생각에 편지를 보낼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정현찬 가톨릭농민회 전국회장은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국민을 테러집단과 비교하는 짓은 정말 부끄러운 것이다. 맨손이었던 백씨에게 물대포를 쏴 사경을 헤매게 한 정부가 18일 넘게 방치와 다름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짓이다”라며 “가족들이 거리에 나오는 상황만은 말리고 싶었는데 이 폭력정권의 태도가 해도 너무하다. 방송이나 언론들은 우리를 폭력집단이라고 몰아가고 있다. 백씨와 백씨 가족의 이 억울함과 슬픔을 국민이 제대로 알 수 있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백 선생의 장녀 백도라지 씨는 “작년 교황님이 광화문광장에서 사랑과 평화를 이야기하고 축복하고 가셨는데, 한 해가 지나고 저희 아빠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계신 지 18일째가 됐다. 그러나 지금까지 관련된 누구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교황님께 아버지 홀로 병실에서 사투를 벌이는 사정을 말씀드리고 우리 가족을 보살펴달라고 청하기 위해 편지를 썼다”고 말했다. (영상보기)
백 선생의 자녀 백도라지‧백민주화‧백두산 씨와 이 신부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주한 교황청 대사관을 방문했다. 이 신부는 이날 40분 동안 비공개로 진행된 만남에서 교황대사가 ‘백 선생이 사고를 당하게 된 경위와 현재 상태’를 자세히 물었다고 전했다. 또한 “가족들이 어려움을 잘 이겨내길 바라며 위로와 축복을 해주셨다”며 “교황청에 보내는 정기 문서에 가족들의 편지를 함께 보내겠다고 약속하셨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