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아이들의 엄마 역할을 하며 봉사와 희생의 삶을 살았던 루미네(한국명 백광숙) 수녀를 기억하는 ‘루미네 수녀 기념관’이 30일 부산 안창마을에서 운영에 들어간다. ‘푸른 눈의 성녀’로 불리는 루미네 수녀는 부산의 대표적 달동네인 안창마을에서 20년 넘게 불우한 아이들의 어머니 역할을 한 독일인 수녀다.
지상 2층 규모의 본관과 광장으로 조성된 기념관은 지난 9월 공사를 마쳤으며, 체험학습관과 전시관, 공영주차장 등으로 구성됐다. 본관 1층은 마을주민을 위한 다목적공간으로 쓰이고, 2층은 루미네 수녀의 사진과 자작시 등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부산 동구 수정산 골짜기 안쪽에 있는 안창마을은 6‧25 전쟁 때 모여든 피란민들이 판자촌을 이루고 살면서 경제적으로 낙후되고 빈곤한 지역이 됐다. 루미네 수녀는 당시 부산 동구 사회복지관의 간호사로 일했고 이 지역 소외계층을 보살피며 자신 또한 스스로 몸을 낮춰 가난한 삶을 자처했다.
간호사 출신인 루미네 수녀는 예수성심 전교수녀회 소속으로 1972년 천주교 부산교구 언양 성당에서 교육과 의료봉사를 시작하면서 한국과 첫 인연을 맺었다. 루미네 수녀는 8년간 봉사활동을 마치고 1979년부터 독일에서 10년간 병원 원장을 맡았지만, 어린이들을 잊을 수 없어 1989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안창마을과의 인연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푸른 눈의 어머니’로 불렸던 루미네 수녀는 안창마을에 깊은 애정을 갖게 됐고, 한국명 이름도 안창 ‘백(白)’ 씨에 빛 ‘광(光)’, 맑을 ‘숙(淑)’ 자로 바꿨다. 루미네 수녀는 안창마을에서 홀몸노인과 장애인, 알코올 중독자 등 무기력하고 실의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 봉사와 헌신의 삶을 살았다.
가난하고 소외된 어린이들을 특히 안타깝게 여겼던 루미네 수녀는 1992년부터 2평짜리 판잣집을 구해 공부방을 운영했다. 또한 부모에게 버림받거나 방치된 아이를 하나둘씩 데려와 함께 살며 키웠다. 소외된 아이들에게 루미네 수녀는 어머니이자 선생님이었으며, 세 살짜리 유아부터 초등학생까지 12명이 루미네 수녀와 함께 먹고 자며 가족처럼 생활했다. 당시 루미네 수녀가 운영했던 공부방은 오늘날 동구 범일4동 ‘우리들의 집’ 지역 아동센터로 이어지고 있다.
21년 동안 안창마을에서 지낸 루미네 수녀는 2008년 법령 개정으로 무허가 건물에서의 공부방 운영이 불가능해지자 남태평양 마셜 군도로 선교 활동을 떠났다. 행정관계자는 “루미네 수녀님이 내년 여름 꼭 한 번 기념관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하셨다”며 “안창마을에서 희생과 봉사 정신으로 불우한 아이를 돌본 루미네 수녀의 정신을 기리고 알리기 위해 기념관을 조성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