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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연중 제2주일 독서·복음 해설
  • 김수복
  • 등록 2016-01-16 08: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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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이사 62,1-5)

<신랑이 신부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라>


시온 때문에 나는 잠잠히 있을 수가 없고 예루살렘 때문에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의 의로움이 빛처럼 드러나고 그의 구원이 횃불처럼 타오를 때까지. 그러면 민족들이 너의 의로움을, 임금들이 너의 영광을 보리라. 너는 주님께서 친히 지어 주실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리라. 너는 주님의 손에 들려 있는 화려한 면류관이 되고 너의 하느님 손바닥에 놓여 있는 왕관이 되리라. 다시는 네가 ‘소박맞은 여인’이라, 다시는 네 땅이 ‘버림받은 여인’이라 일컬어지지 않으리라. 오히려 너는 ‘내 마음에 드는 여인’이라, 너의 땅은 ‘혼인한 여인’이라 불리리니 주님께서 너를 마음에 들어 하시고 네 땅을 아내로 맞아들이실 것이기 때문이다.  정녕 총각이 처녀와 혼인하듯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와 혼인하고 신랑이 신부로 말미암아 기뻐하듯 너의 하느님께서는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시리라. 


시편(95)

전하여라, 모든 민족들에게 그분의 기적들을


제2독서(1코린 12,4-11)

<성령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형제 여러분,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께서는 같은 성령께서십니다.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께서십니다.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그리하여 어떤 이에게는 성령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이,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에 따라 지식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 안에서 믿음이, 어떤 이에게는 그 한 성령 안에서 병을 고치는 은사가 주어집니다. 어떤 이에게는 기적을 일으키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예언을 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영들을 식별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여러 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신령한 언어를 해석하는 은사가 주어집니다.  이 모든 것을 한 분이신 같은 성령께서 일으키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그것들을 따로따로 나누어 주십니다. 


복음(요한 2,1-12)

<예수님께서 카나에서 당신의 첫 기적을 행하셨다>


사흘째 되는 날,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그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다.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였다.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모두 두세 동이들이였다.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셨다. 그들은 곧 그것을 날라 갔다. 과방장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지만, 물을 퍼 간 일꾼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과방장이 신랑을 불러 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 뒤에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카파르나움으로 내려가셨다. 그러나 그곳에 여러 날 머무르지는 않으셨다. 




◇ 주님 세례 축일 ~ 독서·복음해설 ~


제1독서(이사 62,1-5) 해설

<신랑이 신부를 반기듯 너와 하느님께서 너를 반기신다>


시온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예언자의 이 노래는 바빌로니아 귀양살이에서 돌아온 시기에 첫 번째로 쓰였을 공산이 크다. 귀양살이에서 돌아온 히브리인들 눈에는 꿈속에 그리던 사랑스런 예루살렘이 이미 영광스러운 옷을 벗어버리고 폐허가 되어 참담하게 변해 버린 모습으로만 비쳤다. 이에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장차 구원을 받아 영광스럽게 되리라고 선언한다. 하느님께서 입을 다물고 계시는 동안 시온은 슬픔에 잠겨 있었지만 이제 하느님께서 입을 열어 말씀하시니 새로운 빛이 예루살렘을 비추리라는 것이다.


“너의 하느님 손바닥에 놓여 있는 왕관이 되리라.”(3절)는 상징적인 표현과 결혼생활에 견준 비유들은(4-5절)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을 사랑하고 흡족해 하신다는 것을 드러낸다. 하느님만이 가지신 변함없는 사랑은 한때 탈선하고 간음한 이스라엘을 씻어 주고 깨끗하게 하시어 그들이 옛적 하느님의 순결한 신부였을 때 누렸던 신선한 기쁨을 되찾아 주실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과 온 인류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신다. 하느님을 외면하여 실망에 빠져 버린 사람들을 하느님께서는 마치 인자한 신랑이 타락한 신부를 용서하여 받아들이듯이 구원하고자 하실 것이다.


시편(95) 해설

<전하여라, 모든 민족들에게 그분의 기적들을>


이 시편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을 모든 백성의 주님으로 찬양하면서 성전 안에서 노래 부른 시편이다.


이 시편을 꿰뚫는 흐름은 기쁨이다. 하느님의 왕권은 구원의 능력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노래 부르며 찬양하면서 묘사한 하느님의 모습은 장차 오실 ‘사람이 되실 하느님’의 모습에 대한 예언에 지나지 않는다. 과연 당신 자신을 낮추며 다스리는 분, 당신 권능을 오로지 사람들이 누릴 기쁨을 위해서만 행사하시는 분이 오시고야 말 것이다.


제2독서(1코린 12,4-11) 해설

<성령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나누어 주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을 이끌어야 할 바람직한 질서를 논하면서 바오로는 코린토 신자공동체 안에서의 특은들 또는 영적 선물들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말한다.


바오로가 8-10절에서 열거하는 다양하고 풍부한 특은들은 성령께서 사람들이 미리 정해 놓은 일률적인 틀에 얽매이기를 거절하신다는 것을 나타낸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인 각 사람에게 서로 다른 다양한 사명을 주신다.


성령께로부터 비롯된 그 다양한 사명과 소명이 서로 갈라지고 대립될 성질의 것은 결코 아니지만 바오로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늘에도 갈라져 싸울 위험은 늘 존재한다. 


성령께서는 다양성을 통하여 통일된 조화와 일치를 바라시며 각 사람의 개성을 존중하고 지켜주신다. 그러므로 개별적으로 받은 소명이나 특은은 그 개인 또는 특정 집단을 위해 발휘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교회 전체와 인류 전체를 위하여 발휘하라고 주신 것이다. 그 같은 성령의 의도에 충실해야만 온갖 특은은 자기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에게 유익할 것이며 이웃과 사회에 가치 있는 결과를 맺을 것이다.


복음(요한 2,1-12) 해설

<예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가나의 혼인잔치 이야기는 신학적으로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기적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보여 주는 증표이다. 이 가나 혼인잔치에서 일어난 기적은 예수님께서 누구이신가를 차차 계시해 줄 일곱 가지 증표 가운데 첫 번째 증표였다.


이 첫 번째 증표가 어떤 모양으로 예수님의 ‘영광’을 계시해 주고 있는가? 특별히 메시아 시대는 풍요로운 시대일 것임을 입증한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까지 인류 역사를 잠깐 보면, 잔치 책임자가 한 말마따나 하느님께서 참으로 가장 좋은 것을 마지막 판에 남겨 두셨음에 감탄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만진 모든 것을 바꾸고 변형시키신 것이다.


잔치는 참석한 모든 사람들을 기뻐 들뜨게 한다. 그 잔치에 참석하는 사람은 더 이상 지나간 슬픔에 잠겨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예언자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때가 이르렀다. 하느님과 온 인류가 혼인잔치를 벌이는 ‘때’가 이른 것이다(참조. 이사 62,2-5). 이 ‘시간’과 ‘때’는 십자가 위에서 매달려 죽으신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신비가 완성될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가나 혼인잔치에서 그 신비를 미리 맛보게 하셨다.


묵상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이다


귀양살이 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기대하던 기쁨은 맛볼 수 없었다. 폐허가 된 예루살렘 도읍은 하느님께로부터 영영 버림받은 것처럼 비쳤다. 그러나 예언자는 절대 실망할 필요가 없다고 외친다. 그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하여 이전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이루어 주실 구원을 선포한다. 즉 하느님의 ‘정의’가 꽃피고 하느님의 ‘구원’이 횃불처럼 타오르리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정의는 숨어서 기어들어오지 않고 모든 사람이 똑똑히 지켜보는 가운데 당당하게 등장할 것이다. 예루살렘이 장차 하느님의 손에 들려 있는 ‘화려한 왕관’처럼 빛나게 될 것이다. 그 때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마치 신랑이 신부를 마음에 들어 하듯이 흡족해하실 것이다. 새로운 이름이 그 도시의 새로운 상태를 말해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정의롭고 평화로운 미래를 마련하여 줄 것이며 파멸과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실 것이다.


예언자들이 고대하던 그 ‘때’가 예수님과 더불어 도래했다.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당신 영광을 드러내시고(11절),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과 인류 사이의 혼인잔치가 벌어진다. 구원의 시대가 혼인잔치로서 개막된다는 사실이 요한 복음서 저자에게는 매우 뜻 깊은 것이었다. 그 혼인잔치에 예수님께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당신 능력을 드러내신다. 그러나 물을 술로 바꾸신 사건은 단순한 하나의 기적이라기보다는 그리스도 안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여 계신다는 증표가 된다.


요한 복음서 저자는 혼인잔치 기적에서 빵을 많게 한 기적에서와는 달리 아무 설명도 덧붙이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의 의도는 ‘술’을 예수님 자신으로 제시하고 예수님께서 인간들에게 기쁨과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심을 나타내려 함이 분명하다. 술은 메시아 시대에 넘칠 공동선을 나타낸다. 좋은 술이 풍성하게 넘쳤다는 것은 메시아 시대가 이미 와 있음을 뜻한다. 그러니까 가나 혼인잔치에서 일어난 이야기에서 요한 복음서 저자의 관심사는 예수님께 대한 신앙을 불러일으키는 데 있다.


모든 사람이 서로 도우라고 부르심을 받았다


예언자들이 고대하던 구원, 그리스도께로부터 시작된 구원은 비단 종말론적인 사건만이 아니다. 그 구원은 마지막 때에 가서 완성되겠지만 역사 과정 안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성령께서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갖가지 특은과 직무와 자질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바오로가 열거한 몇 가지 예로 끝나지 않고, 각 사람이 온갖 모양으로 성령의 특별한 은총을 받고 있다(7절). 모든 사람이 성령과 성령의 특은을 받고 있다. 각 사람이 성령께로부터 받은 특은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키워갈 일이다. 그리고 각 개인은 공동체의 일치와 조화에 이바지하는 일을 자기 존재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실상 각 사람이 처해 있는 특수한 조건과 자질과 능력과 기회는 동일한 성령께로부터 비롯된다.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주시는 특은은 어디까지나 공동선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인격을 존중하고 각 사람 안에 계시는 성령을 존중하면서 친밀하게 대화를 나눌 의무가 있다. 자신을 상대방에게 열어 주고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면서 함께 완성을 향해 걸어갈 때 진정한 구원이 이루어진다.




[필진정보]
김수복 :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10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고, 그 동안 서울 가톨릭 신학대학 6년을 수료했다. 40년 동안 5개 언어에서 성서와 신학 관련 서적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노동자였다. 현재 사랑하는 마누라와 아들 둘, 손자 셋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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