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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권종상] 성 패트릭의 날, 아일랜드와 조국을 생각하며
  • 권종상
  • 등록 2016-03-23 17:00:57
  • 수정 2016-03-23 17: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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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3월 17일은 성 패트릭의 날 (St. Patrick's Day)이었습니다. 우체부인 제 배달구역에 있는 어느 집도 성 패트릭의 날을 상징하는 세 잎 클로버, 그리고 녹색 장식들을 달아 놓았더군요. 이 집 주인이 아이리시계라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하지요. 


성 패트릭은 가톨릭을 아일랜드에 포교한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입니다. 아일랜드는 오랜 투쟁, 내전이라는 슬픈 역사 끝에 독립을 이뤘으나 북아일랜드 지역은 아직도 영국령입니다. 이 때문에 이곳에서는 꽤 오랫동안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세력들이 테러까지 동원한 다양한 방법으로 독립 투쟁을 펼쳐 왔습니다. 


이런 상황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일랜드 사람들의 술 소비량은 엄청납니다. 정치적인 스트레스가 스트레스의 근원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아일랜드인들을 떠올릴 때 함께 떠오르는 대상은 술입니다. 이날 하루, 동네의 아이리시 펍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이곳에서도 아시아의 한국인, 그리고 러시아인과 더불어 술 많이 마시는 사람들로 정평이 나있을 정도지요.


아일랜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성 패트릭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일랜드 사람들이 이민 사회에서 가졌던 슬프고 독특한 역사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이른바 ‘아일랜드 대기근’이라고 불리는 엄청난 사태가 일어난 19세기 중반의 역사적 환경 속에서 미국으로 대거 이민을 가게 됩니다. 사실 감자마름병이라는 역병이 일어나 감자를 주식으로 삼았던 그들의 삶을 통째로 흔들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 당시 아일랜드를 지배하고 있던 영국인들이 아일랜드에 엄청난 양의 조세를 요구했습니다. 그렇게 곡물을 수탈해 갔기 때문에 더 많은 이들이 굶주리게 됐다는 사실은 감춰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사태가 있기 전에도 꾸준히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에는 특히 많은 아일랜드인들이 미국으로 유입됐습니다. 이들은 초기엔 흑인들과 연대하여 농장주들에게 저항하는 등 미국 내 빈민저항세력의 핵심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골치를 앓던 농장주들과 지배층이 사용한 방법은 당시 아일랜드인들과 연합하여 함께 봉기를 일으키던 흑인들과의 분열 책동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미국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의 효시가 됩니다. 


개신교 출신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던 영국인들과는 달리, 천주교인이 주를 이루었던 아일랜드인들은 흑인과 유태인의 중간쯤에서 멸시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과 비슷한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은 이태리 사람들이었지만, 비교적 낙천적이었던 이태리 사람들과는 달리 고향에서도 차별을 받았던 기억이 뿌리 깊게 남아있던 아일랜드인들은 지배층이 세운 계략에 쉽게 걸려들었습니다. 지배층은 이들에게 마름의 자리를 안겨 주었습니다. 소설 ‘엉클 탐스 캐빈 (Uncle Tom’s Cabin)’에서 묘사된 악랄한 백인 마름들은 바로 아일랜드인들입니다. 이런 슬픈 역사를 극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러한 역사들은 지금의 미국 사회에서 가장 슬프고 암울한 현실인 인종차별을 공고히 했습니다. 지배자들의 전술은 늘 이런 방식으로 피지배자들을 분열시키고 나누는 것이었지요. 


미국에서도 가끔 우리나라의 광주 민주화항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습니다. 미국 본토에서 가장 높은 산 중 하나였던 세인트 헬렌스 화산이 폭발한 날이 바로 1980년 5월 18일이기 때문입니다. 매년 그 날이 오면 광주의 비극은 세인트 헬렌스 화산 폭발 등과 함께 TV의 ‘오늘의 역사’같은 코너에 소개되기 마련이고, 이를 본 친구들이 물어옵니다. “광주라는 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인종이 달랐나? 아니면 종교가 달랐나?”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름대로 설명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힘에 부칠 때가 많습니다.


결국은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이 깨어나 자기의 권리를 행사하고, 부조리에 맞서는 것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을, 너무 오래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는 비극적인 상황을 생각하며, 성 패트릭의 날에 갈라진 아일랜드와 갈라진 조국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민중들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필진정보]
권종상 : 미국 시애틀에서 우체부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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