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기자들이 보여주는 이율배반
지난해(2015년) 8월 19일 한국기자협회(회장 박종률)는 창립 51주년을 맞아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5∼11일 현역 기자 300명을 대상으로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한 전화면접법을 통해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서 기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수행을 잘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88.5%가 잘못하고 있다(아주 잘못 50.5% / 다소 잘못 38%)고 답했다. 박 대통령이 국정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8.7%(아주 잘함 0.4% / 다소 잘함 8.3%)에 그쳤고, ‘잘 모름’은 2.8%였다.
현역기자 10명중 9명 가까운 꼴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부정적으로 본 셈이다. 기자들은 그 이유로 ‘독선‧독단적 리더십’(46.7%)을 가장 많이 꼽았고, ‘국민소통 미흡’이 35.6%로 그 뒤를 이었으며, ‘경제정책 실패’(8.2%), ‘복지서민정책미흡’(6.1%)등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88.5%에 달하는 기자들이 박근혜 정부의 국정수행 능력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면 당연히 언론의 비판기능은 활화산처럼 타올라야 한다. 언론의 본령은 정론직필이며, 언론인들의 사명과 책무는 진실보도와 비판정신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은 완전히 다르다. 조중동 등 메이저 신문들과 공영방송들에서는 ‘박비어천가’가 넘쳐난다. 공영방송들은 아예 종편방송들과 박비어천가‧북풍몰이‧편파보도‧양비론 경쟁을 한다. 허울만 공영방송이지 실상은 관영방송들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 때는 5년간의 국가 재정적자가 10조에 이르자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나라가 금방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고, 언론들은 난리를 쳤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국가 재정적자가 98조로 늘어났고, 현 박근혜 정권 3년 동안 167조로 늘어났는데도 언론들은 꿀 먹은 벙어리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 재정적자 10조를 가지고 비분강개하며 난리를 쳤던 용명한 언론인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명박의 98조와 박근혜의 167조는 노무현의 10조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고 보는 것은 설마 아니겠지. 그런 실눈들을 가지고 언론인 노릇은 할 수 없을 테니까.
종편들에서 접하는 ‘개 짖는 소리들’
TV조선과 채널A 등 수구족벌언론사가 운영하는 종편방송들을 보노라면 낯이 간지러운 건 말할 것도 없고 소름이 끼칠 때도 많다. 어떻게 저런 얼토당토않은 말들을 방송에 나와서 태연히 지껄일 수 있을까 싶고, 아예 정권의 전도사로 소매 걷어붙이고 나선 것 같은 시사토론 진행자와 출연자들이 측은하게만 보인다.
과거 종편방송이 없었던 시절 관영방송들의 소음을 일컬어 ‘개 짖는 소리’라고 표현했던 고 김남주 시인을 자주 떠올리게 된다. 김남주 시인이 살아 있다면 오늘의 종편방송들을 보고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개 짖는 소리’ 이상의 적절한 표현은 없을 듯싶은데, 종편방송들 덕에 정권의 나팔수들이 왕창 늘어났으니 ‘개떼 짖는 소리’라고 하면 어떨까.
한번은 내가 우스운 행동을 한 적이 있다. 버스터미널이며 치과의원이며 대형음식점 등 가는 곳마다 종편방송들이 켜져 있었다. 주인이나 종업원에게 왜 종편방송을 틀었느냐고 물으니 하나같이 자신은 모른다는 대답이었다. 나는 일삼아 같은 종편이지만 진실보도에 신경을 쓰는 JTBC로 채널을 바꾸어놓곤 했다.
그러나 한참 후 다시 가보면 어김없이 채널이 돌아가 있었다. 주인이나 종업원에게 다시 물으니 역시 자신은 모른다는 대답. 누군가가 TV조선이나 채널A나 MBN으로 채널을 돌려놓는 것 같다고 했다.
그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지난 2월 테러방지법 통과를 지연시키기 위한 야당 의원들의 국회 필리버스터가 진행될 때 다시 퍼뜩 공공장소들을 석권하다시피하고 있는 종편방송들의 위세를 떠올렸다. 더불어민주당의 정청래 의원, 전순옥 의원, 임수경 의원의 입에서 국정원 직원이 37만 명이라는 말이 나온 탓이다.
내 귀를 의심하면서도 공포를 느꼈다. 37만 명이라면 국군의 절반을 상회하는 수효가 아닌가. 군대와 달리 국정원은 운영예산도 비밀 속에 묻혀 있지 않은가. 그 37만 명이 전국 각지각처에 흩어져서, 보이지 않는 그 손들이 공공장소들의 텔레비전도 일일이 종편방송으로 틀어놓는 것은 아닐까? 억측일 수도 있지만 그런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을 뿌리칠 수 없었다.
‘기레기’들의 출세
‘작가정신’이라는 말은 지금도 문단에서 곧잘 사용되고 있다. 명색 문인인 나도 작가정신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내가 작가라는 사실을 수시로 되새기며, 작가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런데 작가정신이라는 말을 쓰다 보면 ‘기자정신’이라는 말이 절로 생각나는데, 요즘 들어 기자정신이라는 말은 왠지 듣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일부 진보언론 기자들은 종종 입에 올리지만, 보수언론 기자들은 거의 잊고 사는 것 같다. 언론 종사자들부터 기자정신이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입에 담지 않으니, 자연 사어(死語)가 될 수박에 없다.
기자정신이라는 말을 밀어내고 대신 들어앉은 단어가 있다. 신조어로 ‘기레기’라는 말이다. 기레기는 ‘기자’와 ‘쓰레기’기 합쳐진 말이다. 쉽게 풀어 말하면 ‘쓰레기 기자’라는 뜻이다. 쓰레기 기자들이 넘쳐나기에 그런 지칭이 생겨났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 때부터 기레기라는 말이 나돌더니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확산되었지 싶다. 특히 세월호 참사 보도 때부터 기레기가 창궐했다. 진실보도와 공정보도, 비판기능을 상실한 채 정권의 나팔수가 되어 조작과 왜곡을 일삼는 보도행태들이 특히 메이지 신문들과 공영방송, 종편방송들에서 줄을 이었다.
그러더니 공영방송에서 앵커 노릇을 하던 인사들이 돌연 청와대 대변인으로 발탁되고, 최근에는 조선일보의 편집국장 노릇을 했던 인사가 새누리당 비례대표 16번을 지정받아 국회의원이 되게 생겼다.
그들은 정권의 나팔수가 되어 출세를 하기 위해서 언론사에 몸담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들의 지향에 따라 출세의 길이 환히 열린 셈이지만, 그 환한 길은 추한 길이기도 하다. 오늘 당장엔 부귀영화가 따르겠지만, ‘기레기’라는 오명의 딱지는 어두운 그림자가 되어 길게 따라다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