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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프레스 인터뷰 2회 작은자매회
  • 염율리안나
  • 등록 2015-05-06 13:30:04
  • 수정 2015-06-22 11: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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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4월 27일. 예수의 작은 자매회 부천자매원 인터뷰.


“우정의 사도직. 세대와 인종과 종교와 문화가 달라도 우정은 가능하다.”


예수의 작은 자매회는 샤를 드 푸꼬의 정신을 이어받아 창립되었으며, 창립자 마들렌 자매(수녀)는 ‘이 시대 가장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기’를 통해 인종, 문화, 종교를 초월한 연대의 삶을 실천하였다. 국제수도회인 예수의 작은 자매회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올해로 60년이 된다. 서울, 부산, 대구, 문산 등지에서 이 시대 가장 가난한 이들을 찾아 그들 가까이 함께 살고 있는 작은 공동체. 그 가운데 부천 공동체를 찾아가 함께 생활하시는 세 분 수녀님 -이순이 세라피나, 강순화 엘리사벳, 데레사 프엉(Phuong)- 을 만나 뵙고 이야기 나누었다.



* 염 율리안나 기자 (이하, 염) : 안녕하세요. 이제 막 시작한 작은 언론매체에 이렇게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세 분 수녀님께서는 이곳에서 어떤 일들을 하시고, 어떻게 생활하고 계시는지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 강순화 엘리사벳 수녀 (이하, 엘리사벳) : 네 반갑습니다. 저희는 이곳에 이주민, 이주노동자들의 이웃으로 살기 위해 왔습니다. 저희 자매들은 늘, ‘오늘의 한국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찾는데, 저희 생각에 이주민 노동자들이 가장 가난한 이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그들의 이웃으로 살기위해 지난 해 4월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세월호 사건이 터지기 조금 전에 이곳에 터를 잡았습니다. 저희가 살고 있는 이 건물 바로 옆이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의 기숙사입니다. 그리고 바로 아래층도 이주노동자들이 기숙사로 쓰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 주변에 이주 노동자들이 많이 살고 있지요.


제 소개를 먼저 하자면, 저는 이 동네에 성심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저소득층 아동들을 위한 라면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오후 한시부터 저녁 여덟시까지 라면 끓여주는 일을 하고 있지요. 가격이 따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기부함을 만들어 놓고 그곳에 본인이 넣을 수 있는 만큼만 넣는 라면집 입니다. 그렇다보니 주로 초등학생들이 많이 옵니다. 카페이름도 아이들이 지었어요. ‘수라상’이라고 ‘수수한 라면 세상’을 줄여놓은 말이라고 하네요. 저는 그곳에서 라면을 끓이는 일과 음식을 남기지 않도록 하고, 자신이 먹은 자리를 치우게 하는 일 등 일상 예절을 익힐 수 있게 돌보아 주는 일, 그런 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 염 : 이러한 일들이 ‘예수의 작은 자매회’에서 주로 하는 일들인가요? ‘예수의 작은 자매회’에 대해서도 좀 더 자세히 소개 해 주세요.


* 엘리사벳 : 예수의 작은 자매회가 한국에 들어온 지 올해로 60년이 됩니다. 저희 수도원은 예수님의 나자렛 영성을 심화 시켰던 샤를 드 푸꼬의 정신을 이어받아 창립되었습니다. 샤를 드 푸꼬는 ‘예수님은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하느님의 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왜 가난한 이들과 함께 가난하게 살았는가’에 대해 물음을 던졌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온통 나자렛 예수에 집중해서 살다가 사하라 사막에서 살해당해 돌아가셨습니다. 뒤늦게 그의 발자취를 담기 위해 그의 생애를 조사하던 전기작가에 의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당시 샤를 드 푸꼬와 함께 생활했던 많은 이슬람 신자들이 그는 진정으로 하느님의 사람이었다는 증언을 하면서 그 정신에 대한 붐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회를 창설한 마들렌 자매역시 몸이 많이 아픈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샤를 드 푸꼬 정신으로 살겠다’며 사막에 갔었다고 합니다.


샤를 드 푸꼬는 그 당시 가장 버림받은 사람들은 사하라 사막의 유목민 이라고 생각하고 그곳에 갔던 것입니다. 마음으로는 그곳에서 미사를 열심히 드리고 하느님을 현존하게 하려고 갔는데 가서 보니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참된 인간 대 인간으로의 만남’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우정의 사도직’이라는 말을 많이 했던 거지요. 그는 그곳에서의 생활에 대해 친구에게 소개한 편지에서 “나는 새로운 친구도 사귀고, 이전에 알던 친구들과는 우정이 더 깊어지고 그리고 때가 되면 하느님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한다네. 그리고 내가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작은 봉사라도 할 수 있게 되면 그 일을 하지.”라고 적었을 만큼 ‘우정’에 대해 깊이 생각했고 그 자체가 사도직 이었던 것입니다.


* 염 : 그럼 언제쯤 그 정신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자매회를 만들게 되었던 것인가요?


* 이순이 세라피나 수녀 (이하, 세라피나) : 1955년도, 아직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을 때였어요. 대구 왜관 옆에 있는 작은 나환우 마을에 처음 들어갔던 것입니다. 이 후 57년부터는 대구 공단에서 공장 노동자로 일했습니다. 모직, 안경, 타올 공장 등에서 일하면서 기도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신분을 따지지 않지만, 굳이 따진다면 수도자 이면서 노동자의 신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산업화 되어 가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을 당시, 노동자들과 같이 연대하기 위해 공장 일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버는 돈으로 우리가 실제 생활을 하기도 하는 것 이구요. 그 시대 공장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은 긴 노동시간에 낮은 임금과 낮은 처우를 받는 등 매우 열악한 환경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아픔을 함께 하기 위해 공장 일을 선택 했던 것입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우리나라에 자활근로센터가 생겨났고, 기초생활보호 수급권자라든지, 차상위계층 사람들이 그곳에서 노동하며 어렵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 때부터는 저희 자매들도 그 현장에서 많이 일 하기 시작했고, 저 또한 이 지역자활센터에서 일 했습니다.


우리는 큰 사업을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가장 중요한 것이 일단은 ‘만남’이에요. 일상중에 한 번 만나고 두 번 만나면서 서로를 알게 되고, 일단 서로를 알면 작게나마 도움이 되기도 하구요. 그러면서 상대방 안에서 일 하시는 하느님 체험을 하기도 합니다. 저희한테는 그것이 중요한 겁니다. 다른 것보다 우리는 시간을 내어 주고, 만나고 대화하는 것. 그들의 이웃으로, 친구로 살아가는데 가장 많이 시간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그 가운데서 생겨나는 우정. 우리는 그 우정의 사도직을 중요시 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날씨도 따뜻해져서, 저희는 거의 문을 열어놓고 생활합니다. 그러면 이웃에 사는 친구들은 쉽게 들어와서 하고 싶은 이야기도 하고 친분을 쌓아갑니다. 저희가 이곳에 온 지 1년 밖에 안됐기 때문에 이제 그런 우정의 시작이라고 보면 됩니다. 앞으로 오래 머물러야겠지요.


* 염 : 데레사 프엉 수녀님,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 데레사 프엉(Phuong) (이하, 데레사) : 저는 베트남에서 2년 전에 한국에 왔습니다. 올 1월부터 형제식당일을 시작했는데, 그 식당은 주로 공단에서 일 하는 사람들이 와서 밥을 먹는 곳입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많은 공장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듭니다. 저는 설거지도 하고 야채를 다듬기도 하면서 주방 보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일 하면서 한국말을 배우기도 합니다.


* 세라피나 : 주변에 베트남 사람들이 많다보니, 우리 데레사 자매의 역할이 매우 큽니다. 그들의 아픔을 듣고 공감하고 우리들과 나누어 기도로 바치는데, 사실 같은 나라 사람들이 어려운 환경에 있는 것을 듣는 것만으로도 매우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다 듣고 기도로 바쳐야지요.




▲ 왼쪽부터 이순이 세라피나, 데레사 프엉(Phuong), 강순화 엘리사벳 수녀님



* 염 : 집이 그냥 흔한 주택가의 작고 아담한 공간이네요. 자매회는 보통 이런 방식으로 세분이서 생활 하십니까?


* 세라피나 : 저희는 원래 작은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지부집과 수련소는 예외적으로 식구들이 조금 더 많기는 하지만 보통 이렇게 작은 공동체로 세 명, 네 명 생활합니다. 숫자가 되면 네 명이서 함께 생활하는 것을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합니다. 두 사람은 밖에서 일을 하고, 한 사람은 집안일을 하고, 한 사람은 집에 있으면서 이웃이 필요로 하는 일을 찾아서 그 부름에 언제든지 응답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상황을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저희의 경우는 그런 여건이 되지 않는 상황이지요. 그래도 저희 세 명이서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일을 통해 연대하고 있습니다.


이 주변에 사는 한국 사람들은 거의가 다 서민들입니다. 그런데 외국인에 대한 선입견이 좀 있는것 같아요. 선입견 때문에 먼저 다가가지 못하고 겁부터 먹는 것. 그럴 때 저희들의 역할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이주민노동자는 이상하거나 무서운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대단한 사람들이다,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외국에 까지 나와 힘든 일을 하는 것 이니 따지고 보면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라는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 주는 것 또한 우리들의 몫인 것 같아요. 사실, 말 그대로 인간중심으로 생각하면 이주민 노동자들은 존경할만한 사람들입니다. 가족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고 이곳에 와 있는 거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볼 때는 굉장히 귀한 가치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 염: 한국에 살고 있는 이주민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 엘리사벳 : 한국에 들어와서 4년 8개월이 지나면 무조건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그 때 나가지 않으면 미등록 상태가 되는데, 돈을 더 벌어야 해서 돌아가지 못한 미등록자들은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매우 큽니다. 또, 때로는 공장에서 일이 없다고 일방적으로 출근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 임시직으로라도 일자리를 찾아보는데 제가 같이 다녀 보았지만, 일자리를 주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는 한국에 와서 이주민들끼리 만나 자녀를 출산하게 되면, 그 아이는 국적이 없는 상태가 됩니다. 나라에 따라서는 국적을 만들어 주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런 아이들은 그야말로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공부방에서도 그런 아이들 4명을 돌보고 있습니다.


모두 아는 것처럼, 이주민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들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이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고, 이것은 점점 우리 사회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비책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 염: 무엇부터 고쳐져야 할까요?


* 엘리사벳 : 일반시민의 의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입견이 우리들 무의식 안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동남아 사람이라고 하면 일단은 우리보다 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라면집에 왔습니다. 그 아이의 엄마는 중국사람 이었는데 제가 그 분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하고 물으니, 엄마가 중국에서 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아이가 갑자기 끼어들면서 “엄마 한국사람 이잖아!”라고 하는 겁니다. 그 때 아이엄마가 옆에서 조용하게 “너는 한국사람 이고, 나는 중국사람 이야.”라고 설명했지만, 그 모습을 보면서 그 아이가 이전에 받았던 상처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은 차별로 인한 상처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큽니다.


* 세라피나 : 다문화가정지원센터 같은 곳에서 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인식변화를 위한 학교 교육과 제도적인 변화가 함께 가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 단일민족 이라는 사실을 너무 강조했습니다. 그런 문화 가운데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주민이 갑자기 늘어나니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함께 사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지요. 이주 노동자나 다문화가정을 동정의 눈으로만 볼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 중심으로 생각하면, 각자 소명을 가지고 우리나라에 온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격려하고 지지하면서, 마음으로부터 나의 형제자매로 받아들이겠다는 의식이 필요합니다. 물론 한 번에 만들어 지지는 않겠지만, 그래서 우리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겠지요. 단번에 눈에 보이지는 않겠지만 우리들의 작은 노력이 원주민과 이주민 사이에 작은 틈을 만들고 그 틈에서부터 섞여 사는 연습을 해야 되겠지요. 작은 선의 하나가 크게 작용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일하면 가장 쉽게 가까워 질 수 있는 것 같아요. 가까워지는 지름길이지요. 동등한 입장이 됩니다.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그냥 똑 같은 이웃. 그 옛날 샤를 드 푸꼬가 이웃들에게 문을 열어 놓고 나니 그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그 집을 우애의 집이라고 불렀다 합니다. 샤를 드 푸꼬가 나중에 진짜 우정이 무엇인지 깨달은 것은, 그가 죽게 되었을 때 그 지역에 가뭄이 들어서 염소젖조차 안 나오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조금씩 나오는 염소젖을 모아 와서 샤를 드 푸꼬를 살렸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그때야 비로소 우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 염: 선입견을 버리고 먼저 다가가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겠군요.


* 엘리사벳 : 네. 그것은 원주민이 해야 하는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 모르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거든요. 알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야 하고, 알고 나면 내가 생각했던 것이 허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죠. 우리 2층에 사시는 할머니만 해도 이웃에 미얀마 청년 2명이 살고 있는데, 만나보기도 전부터 무섭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청년들은 우리가 길에서 무거운 옷장을 들고 와야 했을 때 너무나 기꺼이 도와주던 고마운 청년들이었습니다. 심지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 하세요.”라고 해서 참 든든했습니다.


이런 역할은 종교기관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잘 섞여 어울려 살 수 있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활동해야 합니다. 이것을 거창하게 표현하면 예언자적 역할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섞여 사는 것만이 방법입니다. 지금 교황님이 지향하는 것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경이, 종교가 뭐 그리 중요한가요. 경계를 허물고 다 같이 어울려 살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더욱이 가톨릭은 보편성을 더 강조하기도 하잖아요. 종교를 떠나서, 모든 틀을 넘어서서 사람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 염: 오늘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런 이야기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자주 들려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톨릭프레스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 세라피나 : 제가 자활근로센터에서 일을 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에 한 부모 가정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어요. 제가 처음 갔을 때 15명의 여성들과 함께 일을 했는데 그 가운데 남편이 있는 사람은 딱 한 명 뿐 이었어요. 그 한명도 남편이 병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성들이 대부분 아이들의 양육을 책임지고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육비 지원을 제대로 받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저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무거운 짐을 가난한 저소득층 여성들이 어깨에 다 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그야말로 그들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 무게가 느껴졌습니다. 물론 다행스러운 것은 그렇게라도 일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것인데, 현실을 이겨내기에는 매우 힘든 상황입니다. 그곳에서는 신자들도 대부분 쉬고 있는 경우가 많지요. 우리는 원래 가톨릭 전교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교를 적극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사실 먼저 관심을 가지고 다가와도 선뜻 권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이 매우 가슴 아픕니다. 교무금이나 헌금 등의 부담 없이 신앙생활을 할 수 있어야겠지요. 그들이 두 번 상처받는 일은 없어야 할 테니까요.


또, 이 주변에는 아시아의 거의 모든 나라 사람들이 와서 살고 있습니다. 이주민은 점차 늘고 있고 우리는 점점 더 섞여 살아가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회의 창립자 마들렌 자매가 처음 집을 얻어서 유목민하고 같이 일하고 생활하며 느꼈듯이, 세대와 인종과 종교와 문화가 달라도 우정은 가능합니다. 내가 마음으로 우정을 나누는 사람은 무엇을 해도 이해가 되고 예쁘게 보이잖아요. 그런 마음으로 우리도 서로를 존중하면서 각자 안에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발견하기도 하면서 기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엘리사벳 : 우선, 이주민은 우리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 한 가족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앞 서 말씀드린 것처럼, 차별을 없애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저희는 이 시대 가장 가난한 이들을 찾아 이곳에 왔습니다. 이주민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가난한 사람들이 마음 놓고 갈 수 있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잘 사는 동네의 교회는 건물부터 다른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위화감을 주지 않는 교회, 문턱이 높지 않은 교회, 찾아가면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시설이 낙후되었어도, 마음 편하게 누군가를 만나는 교회가 주변에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인터뷰 이후 강순화 수녀님께서 직접 만든 자매회 소개영상을 보여주셨다. 먹고, 일하고, 기도하고, 사랑하는 자매회 수녀님들의 소박하지만 강렬한 삶이 고스란히 담겨진 영상을 특별히 가톨릭프레스 독자들에게 공개하도록 허락 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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