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교황 프란치스코는 여성수도회 지도자 900여 명 앞에서 여성 부제직의 허용 가능성을 연구하는 위원회를 설치할 것이라고 말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같은 말은 3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세계여성수도자 장상연합(UISG)’ 회의에서 “왜 초대교회의 여성부제직과 관련한 문제들을 연구하는 공식적인 위원회를 설치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교황은,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몇 년 전 초대교회에서 여성부제직을 연구하는 ‘선하고 현명한 한 교수’로부터 위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당시 여성부제직이 어떤 역할이었는지는 선명하게 남아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 관련한 문제를 연구하는 위원회를 개설하겠다고 언급한 것이다. 사실 이것은 교황이 여성부제직을 ‘허용’할 수 있는 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 여성부제직에 대한 역할이 모호하여 그것을 연구하는 위원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니 더 이상의 것은 아직 아니다.
교황의 이 같은 언급이 빠르게 확산되며 다향한 해석이 나오자, 13일 페데리코 롬바르디(Federico Lombardi) 교황청 대변인은 “교황은 여성들의 부제직 수여를 도입할 지향이 있다는 것을 말한 적이 없다. 교황이 수도자들에게 말한 것들을 이 한 가지 문제로 축소시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교황청 내무장관 죠반니 안젤로 베치우(Giovanni Angelo Becciu) 대주교가 자신의 SNS(트위터)를 통해 “교황께서 나에게 놀라운 전화를 했는데 여성 부제들에 대한 것이다. 어떤 위원회를 생각해보라. 우리는 결론을 서둘러 내지는 않는다”라고 밝힌 바와 같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여성 부제직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이 문제를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한 위원회 설립을 논의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교계제도가 시작된 근본적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열 두 사도들의 복음선포 사명이 그들이 죽은 뒤에도 유지되고 존속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사도들은 봉사 직무에서 다양한 협조자들과 함께 할 뿐 아니라, 자신들에게 맡겨진 사명이 사후에도 지속될 수 있도록 자신의 직접 협력자들에게 일종의 유언 형식으로 ‘시작한 일을 완성하고 견고하게 할 임무’를 맡겼으며, ‘성령께서 하느님의 교회를 사목하도록 그들을 세우신 바로 그 온 무리, 하느님의 백성을 보살피라고 부탁하였다(사도 20,28)’는 성경에 기인하다. (교의헌장 제 20항 참조)
이렇게 사도들은 자신들의 후계자들을 세웠으며, 또 후에 그들이 죽으면 다른 적당한 사람들이 그 직무를 이어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준비했다. 곧 주교직, 사제직, 부제직이라는 교회직분이 오늘날 성직 제도의 출발이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추기경은 교계제도 안에 포함된 직분은 아니다) 이레네오 성인의 증언대로, “사도들이 주교로 세운 이들과 우리에게까지 이르는 그 후계자들을 통하여 사도전승이 온 세상에 천명되고 보존된다”고 교회는 설명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의헌장 제 29항에서 ‘부제들’을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교계의 더 낮은 품계에 부제들이 있다. 그들은 ‘사제직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봉사 직무를 위하여’ 안수를 받는다. 사실 그들은 성사의 은총으로 힘을 얻고, 주교와 그의 사제단과 친교를 이루어 전례와 말씀과 사랑의 봉사로 하느님 백성을 섬기고 있다. 부제의 소임은 관할 권위자가 그에게 맡겨 준 대로, 성대하게 세례를 집전하고, 성체를 보존하고 분배하며, 교회의 이름으로 혼인을 주례하고 축복하며, 죽음에 임박한 이들에게 노자성체를 모셔 가고, 신자들에게 성경을 봉독하여 주며, 백성을 가르치고 권고하며, 신자들의 예배와 기도를 지도하고, 준성사를 집전하며, 장례식을 주재하는 것이다. 자선과 관리의 직무를 부여받은 부제들은 복된 폴리카르포의 권고를 명심하여야 한다. 자비롭고 부지런하여야 하며, 모든 사람의 봉사자가 되신 주님의 진리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
교계제도, 권력의 서열이나 통치의 범위 아닌 ‘봉사의 직분’으로 이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교계제도의 입장은 큰 변화를 맞이한다. 그 동안 교회는 교계제도를 권력, 권한(potestas)의 범위로 이해했지만 공의회는 ‘potestas’(권한) 대신 ‘munera’(직분) 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교계제도는 권력의 ‘서열(ordo)’, 혹은 ‘통치의 범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한 개인이 봉사하는 ‘직분’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지체이며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모두가 각자의 직무를 수행한다. 즉 다양한 카리스마(은사) 안에서 동등하게 공동체와 세상의 성화를 위해 봉사한다. 성령의 충만한 작용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사업, 곧 하느님 나라의 건설에 참여한다. 하느님 백성인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파견되고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한 도구로서 다양한 방식으로 각자의 직무 안에서 그리스도와 공동체에 봉사한다. 따라서 하느님의 백성은 각기 다른 직무를 수행하는 신자들로 조직되었기에 교회 안에서 각자의 직분에 상응하는 다양한 형태로 사제직을 수행한다. 세례와 성령의 도유를 통해서 모든 신자는 공통사제직(일반사제직)을 수행하고, 특별히 뽑힌 성직자들은 서품을 통해 공적 사제직(직무적 사제직)을 수행한다.
역사적으로 여성의 성직참여 ‘서품 (Ordinatio)’이 부정되었던 것은 직무에 대한 이해보다는 시대적 배경에 의한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여성의 성직참여에 대한 반대이유를 보면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 이유로 정리된다.
▲ 그리스도는 여성이 아니고 남성이었다. ▲ 그는 열두 남성을 선택했고 그의 첫 사목자들이 되게 했다. ▲ 바오로 사도에 따르면 여성은 교회 안에서 침묵을 지켜야 하며 따라서 여성은 말씀의 사목자가 될 수 없음을 밝히고 있다(1고린 14,34-5). ▲ 바오로 사도에 따르면 에덴동산에서 먼저 죄를 지은 것은 여성이므로 여성은 남성을 지배할 수 없다. ▲ 초대교회는 여성사목자들이 있었으며 이것은 특히 동방에서 6세기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이 사목자들은 ‘서품’ 받지 않았다. 우리는 사목이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 여성은 성모 마리아와 예수 주변의 다른 여성들의 운명, 곧 진실하고 헌신적인 봉사자의 운명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예수는 남녀의 구별 없이 모두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대하셨고 또 동등하게 인격체로서 대하셨다. 예수에게 성별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역사적인 우연일 뿐이다. 또한 열 두 사도가 모두 남성이라는 것은 당시의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당시 여성은 사회적 지위가 없었고, 남성에게 예속되어 있었으며 법률적인 권한 행사 자격마저 없었다. 바오로의 주장도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의한 것이다. 여성이 시민권이나 법적인 권리가 없이 남성에게 예속되었던 시기에 쓰인 것들이기에 그렇다.
마리아가 사제가 아니라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아니다. 마리아는 어떤 사제직보다도 우월한 사제직을 수행했다. 중재자로서 마리아는 언제나 구원의 탁월한 협력자적 사제로 간주되었고 마리아가 신품성사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여성을 신품성사에서 제외시키는 논거로 작용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곧 교회가 전통적으로 주장해온 남성의 사제직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거는 교리적 전통이 아니라 관습에 의한 것이다. 직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으며 관습을 교회법적 차원에서 해석한 면이 강조되었다.
직무에 대한 이해가 정확해지면 여성사제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느님 백성으로 세례 받은 모두는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수행한다. 여기에는 남성이나 여성의 구분이 없다. 그리고 일반사제직에서부터 신품성사를 통해 공적 직무를 수행하는 데에 남녀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여성에게 ‘서품’을 지금 당장 허용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재는 여성도 ‘일반사제직’을 수행하고 있고 앞으로 일반직무, 공적직무를 모두가 고유한 방식으로 공동체 안에서 수행함이 마땅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작했듯이 그리스도의 직무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새롭게 하려는 시도, 그렇게 교회의 권력이 건강하게 분산될 때 교회의 쇄신도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