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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규) 죽음의 시학 : 어머니 보고 싶어요
  • 김창규
  • 등록 2016-05-18 10:09:09
  • 수정 2016-05-18 10: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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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태극기를 앞세우고 민족민주화대성회 참석을 위해 교문을 벗어나 금남로로 향하고 있는 전남대학교 교수들, 이들 뒤를 학생들이 따르며 민주주의를 위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출처=5.18기념재단)



어머니 보고 싶어요

 -고아출신 박용준을 애도하며-



광주는 어둠의 긴 터널이었다.

5천 년 잠자던 그녀의 혼은

무등산을 단숨에 날아올라 새가 되고

깃털은 바람에 감겨 춤을 추는데

저 골짜기 돌무덤 헤치고 무명의 시체가 일어선다

청년의 이마와 가슴 가운데 수십 발 총탄세례

YWCA 이층 복도에서 스러졌다

피는 천국의 계단을 적시고 흘러

그녀의 움푹 패 인 음부와 젖가슴 골짜기를 적시고

뜨겁게 흘렀다

아들아,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잃어버렸어

이제야 어미를 찾아오는구나.

금남로는 피의 강물이 흘렀지

여기보아라 용준아 엄마다

그녀는 남편을 잃었고 아들을 잃어버렸다

부처님 오신 날 광주는 피를 흘렸고

하나님을 보았다는 시인을 만났을 때

어머니를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극락 강의 흰 코끼리 한 마리가 앞발을 들고 울적에

갠지스 강가의 흰 소가 제 몸을 맡기고

M16 방아쇠를 당기던 공수부대장교의 이글거리는 눈

아, 나는 그날을 잊을 수 없다 

태어날 때 어머니의 자궁 속은 따뜻했지

내 몸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어

거기가 어디였을까

혼자 사는 여자가 버린

스물다섯 발의 총탄세례



 *고 박용준은 5.18때 총을 들고 싸운 고아 출신이었다. 배운것도 없고 해서 YWCA신협의 돈을 수금하는 25세의 청년이었다. 낡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일을 하였다. 그는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5.18광주항쟁기간 동안에 열심히 싸우다가 박용준은 공수부대장교가 쏜 총탄 20발을 맞고 스러졌다. 박관현 열사 옆에 잠들어 있었는데 나는 그의 무덤을 찾아가 31년 만에 큰 절을 두번 올렸다. 그리고 기도를 드렸다. 



[필진정보]
김창규 : 1954년 충북 보은 출생으로 한신대학교를 졸업했다. 분단시대문학 동인, 한국작가회의 회원이며 시집 <푸른 벌판> 외 2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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