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초여름 날씨로 폭염이 이어지는 5월. 백남기 선생이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진 서울 종로구청 입구 사거리에서 국가폭력을 규탄하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1인 시위가 진행됐다. 백 선생이 쓰러진 지 200일이 되는 날이었다.
점심시간을 맞은 종로의 거리는 활기가 넘쳤다. 드라마·주식·직장상사 등 일상을 주제로 한 생활이야기가 사람들 사이를 오갔다. 자동차 소음에 섞인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묘한 평화를 만들었다. 200일 전 생존권을 위해 집회에 참석한 농민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장소라는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이 현장은 백남기 농민이 물포에 쓰러진 장소이다. 아직 200일 동안 검찰 수사는 물론이고 경찰 수사도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처벌받은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1인 시위를 진행하게 됐다”
활동가들은 이날 정오부터 오후 1시까지 백남기 선생 국가폭력 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사거리 횡단보도마다 자리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변정필 팀장은 1인 시위에 참여하게 된 취지를 밝히며 ‘반드시’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보행자 신호 한 번에 100여 명의 사람이 건너다니는 횡단보도 앞에서 진행된 1인 시위였지만, 사람들은 시위자들의 팻말을 힐끗 쳐다볼 뿐이다. 변 팀장은 국가폭력의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지만, 사람들은 무심하게 지나쳤다.
변 팀장은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2015년 11월 14일의 딱 10년 전인 2005년 11월 15일 집회 과정에서 전용철, 홍덕표 농민이 돌아가셨다. 그때 책임자들이 조사받고 처벌을 받았더라면 이번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백 선생에 대한 국가폭력 사건을 국회에서 여전히 중요하게 다루고 있어 다행이라면서도, 이러한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청문회를 통해 무엇이 잘못인지를 가리고, 사건의 책임자를 처벌하는 단계까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들이 경찰에 대해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책임자가 처벌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처벌을 받는 선례를 만드는 것이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백남기 선생이 쓰러졌던 지난해 11월 14일 ‘집회시위 경찰력 사용 모니터링’을 위해 현장에 나왔던 변 팀장은 사람들의 머리 위로 물대포가 내리꽂히는 광경을 보면서 시민의 안전을 위해 일하는 경찰이 오히려 시민을 적으로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 경찰이 집회시위를 대하는 태도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후 1시를 기해 시위를 마친 활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인사를 나눴다. 폭염의 아스팔트 복사열 속에서 선채로 1시간가량 1인 시위를 진행했지만 활동가들은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다음 행선지가 어디냐는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점심을 못 먹어서 밥 먹으러 가요”라고 답했다. 그리고 곧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최근 강남역 살인사건과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으로 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우연히 살아남았다’라는 말이 나온다. 자신의 ‘생존’을 ‘우연’에 맡겨야 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처참한 현실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대한민국 국민들이 느끼는 생존의 위기감은 ‘예전에도 일어났던 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강남역 살인사건과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물론이고 백남기 선생에게 가해진 국가폭력 사건과 세월호 사건 역시 ‘예전에도 일어났던 일’이다. 그 속에는 ‘처리하지 않고 지나갔던 일’이라는 숨은 공통점도 존재한다.
활동가들이 1인 시위를 진행했지만 사람들은 무심했다. 200일 전 백남기 농민이 당했던 국가폭력의 현장이지만 그것을 알리는 팻말에도 사람들은 눈길을 주지 않았다. 백남기 선생의 국가폭력 발생과 관련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국민의 관심에서 벗어나 지나간 일이 되려한다. ‘처리하지 않고 지나갔던 일’은 반드시 ‘예전에도 일어났던 일’로 되돌아 올 것이다.
“처벌을 받는 선례를 만드는 것이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변정필 팀장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