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는 19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헬(Hell)조선 현상을 통해 보는 한국의 청년 문화’라는 주제로 문화의 복음화 포럼을 열고 한국사회의 청년 문제 상황과 그 원인을 분석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매스컴위원회는 “문화의 흐름에 따른 인간 삶의 변화가 교회의 신앙과도 깊은 연관이 있으므로 사회 현상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신앙을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청년문화에서 말하는 ‘헬조선’이란 무엇이고, 어떤 상황인지를 살펴 해법을 찾기 위해 오늘 포럼을 준비했다”고 문화의 복음화 포럼 취지를 밝혔다.
매스컴위원회 총무 김민수 신부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청년들은 어려운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교회가 청년들의 고민을 공유하고 이들이 처해있는 사회의 현실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청년들이 이 사회의 주도적인 임무를 수행하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교회가 희망의 길을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를 맡은 허아란 햇살청소년사목센터 책임연구원은 청년문화에 대한 부드러운 접근을 위해 이날 포럼을 토크쇼 형태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패널로 참석한 엄기호 연세대 교수는 사회학적인 접근으로, 하지현 건국대 교수는 심리학적인 접근으로 청년 문제를 분석했다.
“교회, 착한 사마리아 사람 돼야”
엄기호 교수는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오늘날 한국 청년들이 ‘탈락에 대한 공포’와 마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들은 자신이 언제 탈락할지 모르기 때문에 인생을 기획하거나 타인과 소통하는 일,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성찰 등을 할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엄 교수는 “오늘날 청년들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취업을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한다. 스펙을 쌓아 이력서에 들어갈 한 줄이라도 만들어놔야 안심을 한다”며 “한 학생은 기말고사가 끝나자 ‘공부하느라 바빠서 공부할 틈이 없다’고 말했다.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 전념하는 것이 대학생들의 현실이다. 게다가 등록금도 비싸 학교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도 해야 한다”고 전했다.
또한, 청년들이 취업에 대한 외적인 압박감과 함께 미디어의 변화에서 오는 내적 감성의 변화로 ‘탈락에 대한 공포’와 ‘성장 포기 현상’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온라인에서는 서울시장에게도 자기 생각을 직접 전하는 ‘전능감’을 느낄 수 있지만, 현실에서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면 이에 대한 괴리감으로 좌절한다는 것이다. 그는 “현실에서 타자와 부딪히며 자신의 한계를 알아가는 것이 성장인데, 온라인으로 ‘전능감’을 누리던 한국 청년들은 괴리감을 탈락으로 받아들여 성장을 포기한다”고 분석했다.
또한, 한국이 압축적 근대화 과정을 통해 고도성장을 이뤘기 때문에 ‘하면 된다’는 신념이 강하지만, 오늘날 경제구조와 세계 흐름은 신념만을 강요해서는 적응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회적으로 중요한 전환은 ‘하면 된다’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해도 안 되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그 안에서도 성장이 이뤄진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라며 “정답이 아니면 말을 안 하는 사회는 성장이 없는 사회이므로, 우리가 개인의 한계를 인정하는 모습까지 격려할 수 있는 안정된 사회인가를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회의 청년 사목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면서 엄 교수는 성경에 기록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을 언급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대가성 없이 생명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완수했듯이 교회가 청년들에게 대가를 바라지 말고 그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엄 교수는 “교환이 중심인 사회는 공동체가 아니라 시장이 만들어진다. 시장에서는 사람이 구매력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교회는 본당 연령회처럼 ‘거저 주고 거저 받는’ 비시장성을 바탕으로 청년 공동체 형성을 지원해야 한다”며 “비시장성의 사회를 보여주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앞으로 교회가 청년을 맞이할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내 아이, 나보다 못 살수도 있다”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건국대 교수는 표면적인 현상 이면에 있는 청년들의 심리분석을 중심으로 청년 문제를 분석했다. 그는 청년 문제를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시선으로 청년 문제를 해석하면서 청년들에게 부과되는 시대적, 집단적 압박감을 줄여주는 것이 심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현 교수는 “부모 세대는 자식들이 ‘겉으로는 나보다 뛰어난데 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1년에 7만 명 정도가 중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있는데, 이 내면에는 ‘낙오자’라는 인식이 강하게 연관돼 있다”며 “헬조선이란 말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무슨 짓을 해도 낙오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순응하고 살아도 안 되고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안 되는, 꿈도 꿀 수 없는 현 상황은 청년세대가 처해있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또한, 청년 세대가 디지털 문화가 일반화된 세상 속에서 성장해 가상공간과 현실공간의 구분이 없어서, 현실이 가상을 따라가지 못할 때 나타나는 괴리감이 그들에게 좌절감을 준다고 설명했다.
하 교수는 “과거에는 유명배우가 신혼여행을 가는 것을 나와 비교하지 않았다. 그러나 연인들의 100일 이벤트 사진을 100장 정도 보고 있으면 이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100만 원짜리 유모차 사진을 100번 정도 보고 있으면 그것이 당연해 보인다”며 “인간을 대상화하고 자신의 전능감을 내재화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패배감을 모르던 사람들이 연애의 현실을 통해 첫 패배감을 느끼게 되면, 그것을 상대방 탓으로 돌린다. 고려대 사건이 그렇고 데이트 폭력도 그래서 나온다”고 분석했다.
이어 “‘허세’라 불리는 전능감을 현실에서는 실현하기 힘들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모가 해야 하는 최고의 교육은 부모 품에서 적절한 고통을 주는 것이다”라며 “모든 기성세대는 ‘내 아이가 나보다는 더 잘 살았으면’ 하고 바라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이 힘들다. 부모 세대는 좋은 일자리 250만 개를 200만 대학생들이 선택해 취업했지만, 지금 청년들은 컴퓨터에 일자리를 뺏기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내가 하는 대로 하면 된다’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또한 “우리 사회는 집단동조화가 매우 강해 ‘남들만큼만 해라’는 요구가 많다. 출신 대학이 어디이고 어디에 취직했는지를 통해 사람을 평가한다. 이런 마음에서 벗어나 청년들의 압력을 줄여주는 것이 사회적으로 중요하다”며 “성장은 자아중심성에서 자아비중심성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부모들은 자식 세대에게 나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고려하는 것이 성장’임을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아란 연구원은 포럼을 마무리하며 “오늘 상반기 문화포럼을 통해 파악된 청년 문제는 하반기 문화포럼에서 그 해법에 대해 심층적으로 다시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포럼에는 평신도와 수도자, 청년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에서는 2006년부터 해마다 한두 차례씩 한국 사회의 문화 현상 안에서 복음화를 모색하는 ‘문화의 복음화 포럼’을 개최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