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한반도 사드배치 결정에 반대하며 동북아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생명평화 미사’가 18일 오전 10시 30분께 경북 칠곡군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에서 열렸다.
‘평화가 내 원이건만 그들은 그 말만 하여도 싸우고자 달려들더이다’(시편 120,7)는 성경 구절을 주제로 봉헌된 이 날 미사에는 경남·경북에서 모인 지역주민들과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 등 500여 명이 참석해 왜관 수도원 대성당을 가득 채웠다. 특히 사드배치 유력 후보지였던 칠곡군 주민들과 사드배치 최종 결정지인 성주군 주민들이 참석해 정부의 사드배치를 규탄하며 함께 미사를 봉헌했다.
이날 미사는 대구대교구와 안동교구, 성 베네딕도회 정의평화위원회(이하 정평위)가 공동으로 주최했으며, 성주지역 본당 사제를 비롯해 대전, 안동, 의정부, 부산교구 소속 30여 명의 사제가 공동으로 집전했다. 또한, 성공회 구미본당 박문수 신부와 천재욱 신부도 미사에 참석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정부의 사드배치 결정이 철회되길 기도했다.
이날 미사를 주례한 왜관 수도원 박현동 아빠스(원장)는 정부의 사드배치 결정이 한국을 새로운 냉전의 화약고에 놓이게 해 우리 민족의 화해와 통일의 길을 더욱더 멀어지게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민족 분단으로 한반도에 고립된 한국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고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박 아빠스는 “우리는 사드배치를 통해 참된 국익이 무엇인지를 성찰하고 평화를 위한 선택을 인식하게 됐다. 한미일과 북중러의 새로운 대립구도가 신냉전 체제로 굳어져, 평화와 상호 번영, 대화, 통일, 신뢰, 화해라는 가치가 질식되기 직전에 처해있다”며 “성주군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한국 천주교회는 한반도의 군사적, 경제적 불안을 가중하는 현재 상황에 심각한 우려와 함께 분명한 반대 뜻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대구대교구 정평위원장 신종호 신부는 지난 15일 정부의 사드배치 결정에 반대하는 천주교 주교회의의 성명문을 낭독하며 ‘평화는 절대로 무기의 힘으로 이뤄질 수 없다’는 교회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신 신부는 “나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에 무기가 들어서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분명히 반대한다”며 “있어야 할 자리에 그것이 있는 것, 모든 피조물의 조화와 보호가 평화라는 사실을 상기한다”고 말했다.
사드배치 규탄하며 미군기지로 행진, ‘사드 가고 평화 오라’
미사가 끝난 뒤 평화행진이 이어졌다. 미사 참석자 500여 명은 ‘사드 가고 평화 오라’, ‘한반도 평화는 우리 손으로’라는 문구가 적힌 손 피켓을 들고 왜관 수도원을 시작으로 순심고등학교를 거처 미군 부대까지 약 1.5km를 행진하며 정부가 사드배치 결정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행진 참석자들은 묵주기도를 봉헌하며 기도 속에서 행진을 시작했다. 뙤약볕 속에서도 참석자들은 손 피켓을 들고 정부의 사드배치 결정을 규탄하며, 시민들에게 사드배치를 반대하는 교회의 견해를 밝혔다.
미군기지 앞에서 진행된 모두발언에서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정평위원장 황동환 신부는 한반도 사드배치를 포함한 한미일 군사동맹 형성이 북중러 군사동맹 결성을 부추겨 전쟁의 불씨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한반도 사드배치가 대결과 전쟁을 조장하기 때문에 한국전쟁과 같은 참상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민이 한반도 사드배치를 좌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황 신부는 “미국과 일본이 그토록 공유하고 싶었던 것은 세계 제2의 패권국가인 중국의 군사정보였는데, 이번 사드배치로 그 음흉한 속셈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며 “그러나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은 필연적으로 북·중·러 삼국과 대립으로 갈 수밖에 없다. 사드가 한국에 배치되면 핵 군비경쟁과 군사력 대결체제가 훨씬 격화될 것이고, 중국과의 관계악화로 경제적 타격을 감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드배치로 우리가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평화와 안보, 경제적 타격을 감수하고 지역민의 희생을 강요해야 하는 백해무익한 것이다”고 말했다.
황 신부는 “사드배치 확정 보도가 나오자마자 중국 정부는 한국이 총알받이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는 실로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을 우리 국민에게 안긴 것이다”라며 “사드는 성능 좋은 미사일 하나를 들여오는 것이 아니다. 성주뿐 아니라 이 나라, 이 땅 그 어느 곳에서도 배치돼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의정부교구 정평위원장 상지종 신부는 정부의 이번 사드배치 결정이 미국의 군사 패권주의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이 하느님을 믿는 나라라고 한다면 세계 전쟁을 조장해왔던 그동안의 잘못을 반성하고 인류의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탄했다.
상 신부는 “미국은 무기를 팔아먹고 사는 나라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크고 작은 전쟁의 배경에는 미국이 있다. 그 나라가 우리에게 사드를 팔아먹겠다고 하는데, 이 정권은 뭐가 좋은지 그것을 날름 삼키려 한다”며 “미국은 무기를 팔아서 약한 나라를 잡아먹는 깡패 짓을 그만두어야 한다. 하느님을 믿는 나라답게 평화를 이루기 위해 지금이라도 온 인류에게 사죄하고 평화를 위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정한길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 연합회 회장은 “박근혜 정부 3년 반 동안 북한에 쌀 한 톨 보낸 적이 없다. 쌀값은 개 사료 값만도 못하게 전락했고 백남기 농민이 이 땅에서 농사를 짓게 해달라고 투쟁하다가 변을 당했다”며 “그런데도 정부는 농사를 지으며 평화롭게 사는 성주 지역민의 의견을 무시한 채 사드 배치를 강행하고 있다. 미국의 하수인들이 제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고 규탄했다.
행진 참가자들은 왜관 미군기지 앞에서 “NO THAAD STOP MD!”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로 비행기를 접어 군부대를 향해 날리며 “한반도 평화 위협하는 사드 한국배치, 철회하라”는 구호를 다함께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