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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김웅배] 전쟁 승리를 기원하던 ‘묵주기도’
  • 김웅배
  • 등록 2016-09-30 11:00:06
  • 수정 2016-10-17 10:3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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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정확히 21년 전, 1571년, 레판토에서 지중해의 제해권을 둘러싸고 지금의 터키 이슬람 세력과 스페인, 베네치아 등과 연대한 가톨릭 세력이 맞붙었다. 이것이 바로 세계 4대 해전 중에 하나라는 레판토 해전이다. 이 해전으로 몇백 년 간에 걸쳐 서구와의 전쟁에서 진 적이 없던 이슬람 막강 세력이 서구 가톨릭에게 패퇴를 당해 지중해의 판도가 서구 중심으로 바뀐 계기가 되었다.  


21년 후, 조선의 이순신 장군은 남해의 제해권을 두고 침략자, 일본군과 맞붙었다. 상대적으로 약한 전력이었지만 함포를 적재한 판옥선과 거북선을 앞세워, 서양에서 들여온 조총을 소지하고 전투 능력이 충만한 일본군을 섬멸했다. 


이순신 장군과 직접 대면하고 싸우지는 않았지만 고니시 유끼나가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붉은 바탕에 부대 군기에 흰 십자가를 그려넣고 밑에 군졸들까지 모두 신자들로 구성해서 조선을 침탈했다. 물론, 전쟁 전에 고니시는 흉폭한 가또오와 달리 신앙심을 이유로 조선 침략을 반대하였다. 하지만 결국 도요토미의 충실한 가신으로 조선 침략의 선봉장이 된다. 


충무공 이순신은 마지막 노량해전에서 도망가는 고니시를 쫓다가 적의 유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한다. 나중에 일본으로 돌아간 고니시는 도꾸가와 이에야스와의 내전 중에 포로로 잡혀 참수를 당한다. 일본식의 할복자살의 명을 받지만 가톨릭 신자로서 자살을 할 수 없다는 의지를 밝힌다. 이 일은 도꾸가와 이에야스의 극심한 가톨릭 박해의 직접적 원인이 된다. 


레판토 해전 승리의 배경에는 국가적 이익이 서로 달라 우왕좌왕하던 때, 교황 비오 5세의 열의로 예수의 십자가를 군기로 내세운 연합군의 신앙심과 교황의 명으로 후방의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승리를 기원하는 묵주기도를 대대적으로 바친 종교적 열정이 있었다. 이슬람과 대치한 가톨릭 신자들은 신앙심의 발로인 묵주기도로 일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대해전이 승리로 끝나자 교황은 승전일인 10월 7일을 묵주기도 기념일로 정했다. 그 후 19세기 말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10월을 묵주기도 성월로 설정하고 가톨릭 교회에서는 지금까지 개인과 가정 성화, 그리고 세계 평화를 위하여 묵주기도를 바친다.



묵주(로사리오)기도의 기원은 초세기부터 시작되었다. 본래 이교인의 관습으로 자신을 신에게 바친다는 뜻으로 장미화관(로사리오)을 머리에 썼는데 이것이 초대 신자들에게 전해져 기도 대신에 장미꽃을 바쳤다. 로마 박해 시절, 사자에게 잡혀먹힐 때 하느님께 자신을 드린다는 의미로 장미화관을 쓰고 순교를 했다고도 한다. 


예수회 신부 세스페데스는 고니시 군에 종군 신부로 참여해서 진중에서 미사를 드렸다. 그는 분명 20년 전, 레판토 해전 승리 후에 교황이 정한 묵주기도 기념일에 대해 잘 숙지하고 있었을 것이며 또한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며 묵주기도를 바쳤을 것이다. 고니시는 왜란 후에 조선 소녀, 전쟁 고아인 오다 쥴리아를 양녀로 삼아 세례성사를 받게 하였는데 고니시가 참수 당한 후, 쥴리아는 자신의 주군을 죽인 도꾸가와의 시녀가 되어 그의 온갖 회유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자신의 신앙을 지킨다. 고우즈시마에 지금도 전해 내려오는 오다 쥴리아의 경건한 신앙행위로 볼 때, 그녀 또한 유배지에서 죽을 때까지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쳤을 것이다. 그런데 쥴리아는 자신을 전쟁 고아로 만든 자신의 양부에 대해서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


일방에 승리가 아닌 쌍방의 평화를 기원한다


각자가 가진 종교의 호불호와 관계없이 신앙의 아이러니는 참 묘하다. 찬란한 문명으로 몇백 년 동안 중세 유럽을 가르쳤던 이슬람 세력은 이 해전 이후 서서히 몰락하여 근세에 이르러 자신들의 의지와는 별도로 유럽의 속국이 된다. 레판토 해전으로 가톨릭 신앙이 이슬람 신앙을 이긴 것이 되었다. 


그렇다면 종교적 의미로 볼 때 평화의 기도인 묵주기도가 이슬람의 몰락을 재촉했단 말인가? 그 몰락으로 인하여 지금 세계는 테러의 공포에 시달리는가? 종교적 역사의 수레바퀴는 지금 어디로 향해 구르고 있는가? 조선 침략의 선봉장으로서 십자가 군기를 휘날리며 조선의 무고한 인명을 앗아간 고니시는 크리스챤으로서 자신의 신앙을 지키고 목을 내놓았다. 조선 백성을 위해 일본 침략군에 맞선 이순신 장군은 신앙인은 아니었지만 백척간두에 선 조선을 구하고 순국했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는 다른 이순신과 고니시가 목숨을 걸고 서로 싸우고 있다. 묵주기도 성월에 일방에 승리가 아닌 쌍방의 평화를 간절히 기원한다.



[필진정보]
김웅배 : 서양화를 전공하고, 1990년대 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지금까지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에디슨 한인 가톨릭 성당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4 복음서를 컬러만화로 만들고 있다. 만화는 '미주가톨릭 다이제스트'에 연재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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