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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연중 제27주일 독서·복음 해설
  • 김수복
  • 등록 2016-10-01 11:5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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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하바 1,2-3; 2,2-4)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


주님, 당신께서 듣지 않으시는데 제가 언제까지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야 합니까? 당신께서 구해 주지 않으시는데 제가 언제까지 “폭력이다!” 하고 소리쳐야 합니까? 어찌하여 제가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제가 재난을 바라보아야 합니까? 제 앞에는 억압과 폭력뿐 이느니 시비요 생기느니 싸움뿐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환시를 기록하여라. 누구나 막힘없이 읽어 갈 수 있도록 판에다 분명하게 써라.” 

지금 이 환시는 정해진 때를 기다린다. 끝을 향해 치닫는 이 환시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늦어지는 듯하더라도 너는 기다려라. 그것은 오고야 만다, 지체하지 않는다. 보라, 뻔뻔스러운 자를. 그의 정신은 바르지 않다. 그러나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 


시편(94)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너희는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라 


제2독서(2티모 1,6-8.13-14)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형제 여러분, 나는 그대에게 상기시킵니다.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분 때문에 수인이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주어지는 믿음과 사랑으로, 나에게서 들은 건전한 말씀을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우리 안에 머무르시는 성령의 도움으로, 그대가 맡은 그 훌륭한 것을 지키십시오. 


복음(루카 17,5-10)

<신앙만 있다면!>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연중 제27주일 독서·복음 해설



제1독서(하바 1,2-3; 2,2-4) 해설

<믿는 사람은 하느님께 질문을 던질 줄도 알고, 응답을 기다릴 줄도 안다>


하느님께서 인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모습은 풀 길 없는 수수께끼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하느님을 가까이 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대변한다는 예언자까지도 고뇌에 찬 어둠을 통과할 수밖에 없다. 하바꾹은 철저히 겸허하고 열린 마음으로 하느님의 응답을 기다릴 줄 안다.


하바꾹은 어찌하여 숱한 사람들이 억압을 당하고 불의를 견뎌야 하는지를 하느님께 질문한다.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와 나라 안에서 인권탄압과 착취가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또한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략해서 통째로 노예화하는 엄청난 비극이 무엇 때문에 빚어지는지를 하느님께 질문한다.

하느님께서는 믿음만이 역사의 신비를 이해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답변하신다. 당장 시원스런 해답을 주지 않고, 아직도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오직 당신만을 굳게 믿고 의지할 필요가 있다고 답변하신다.


약탈과 억압뿐인 세상, 못된 자들이 착한 사람들을 등쳐먹는 세상, 정의가 짓밟히는 세상은 끝장날 날이 반드시 찾아오고야 말 것이다. 없는 이와 약한 이와 못난이를 편드시는 하느님께서 기어이 개입하시고야 말 것이다.


시편(95) 해설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너희는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라>


이 시편은 흔들림 없는 구원의 바위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찬미가다. 사람은 인류역사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신비 앞에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서 이끄는 대로 용기를 가지고 따라가야 한다. 하느님의 권능을 의심하고 시험하려 드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제2독서(2티모 1,6-8.13-14) 해설

<티모테오는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하여 용기를 가지고 투쟁할 줄 알고, 고통과 박해를 감수한다>


첫째 서간에서와 마찬가지로(1티모 4,12-14) 바오로는 티모테오에게 성령으로부터 받은 특은의 요청을 용기 있게 충실히 따르라고 권고한다.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은 비단 죄악으로부터 벗어나는 해방만이 아니고, 온갖 압력과 장애를 물리치고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용기이기도 하다.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은 온갖 두려움을 떨쳐버리는 사랑이요 굳셈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억제하고 성령의 지시에 순응함이다.


복음 전언 전체를 종합하는 열쇠는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시라는 사실이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시라는 주장과 믿음은 불신자들 보기에는 지지리 못나고 어리석게 보이지만, 믿는 자에게는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사람들을 사랑한 까닭에 십자가의 죽음을 거친 다음에라야 부활하는 영광에 다다르게 된다는 믿음을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서 굳게 간직해야 할 것이다.


복음(루카 17,5-10) 해설

<믿음과 몸 바침>


이 대목에는 초대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적용되는 예수님의 말씀들이 모여 있다.


먼저, 믿음의 위대한 힘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5-6절).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는 사람은 하느님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 위력은 세상의 권력행사처럼 비록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쓰러지지 않을 영원한 가치를 창조한다.


다음으로는 헌신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7-10절).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에 따라서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서 가진 모든 것과 자기 목숨까지 바친 다음에라도, 하느님 앞에서 취해야 할 우리의 자세는 끝까지 겸허해야 마땅하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헌신에 의하여 이루어진 사람들 사이의 사랑과 친교와 기쁨은 하느님께로부터 나온 엄청난 영원한 가치이다. 그 영원한 가치는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우리 헌신을 하느님께서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여 갚아 주시겠지만, 헌신에 상응한 대가를 초월한 보답이므로 오로지 감사할 수 있을 뿐, 마땅한 권리처럼 요구할 수는 없다.


묵상


삶의 부조리와 믿음


하바꾹은 자기 백성의 역사 현실을 바라보고서 심각한 회의와 불안에 빠진다. 그러면서도 사람들 가까이서 말씀하고 계시는 하느님을 생생하게 체험하고 있다.


하바꾹 예언자가 자기 시대 사회 상황을 앞에 두고서 혼란에 빠져 안절부절 못했듯이, 사도들도 그리스도께서 자기들에게 맡기신 사명을 수행하기에 앞서 심한 동요와 갈등을 느낀다. 그래서 그들도 마찬가지로 하느님께 똑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하느님께 행동하시기를 청한다.


사람들은 자기네 가련하고 무력한 처지를 실감하는 순간, 하느님께 그런 간청을 드리는 외에 달리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사람들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한계와 벽에 부딪힐 때, 비로소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고 하느님과 인격적인 대화를 나누게 된다. 자기네 무력함을 절감하는 사람 앞에 하느님께서는 인간 한계를 무한히 초월하는 신비스런 당신으로서 다가오신다.


그러나 언제나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는 당장 쫓기듯이 응답하시지는 않는다. 하느님의 응답은 우리를 더 근본적인 가난 속으로 몰아넣고, 더 도전적인 새로운 질문을 던지심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네 본래 처지와 모습을 똑똑히 발견하도록 하신다. 하느님께 행동하시기를 간청한 하바꾹은 그 응답으로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으라는 사명을 받는다.


하느님을 가까이 모시고 하느님을 뵈옵고 받아들인 하바꾹까지도 하느님께서 내리실 결론과 종말에 관해서는 오로지 믿고 신뢰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따라서 믿음은 오늘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을 보장한다. 신앙은 그 마지막을 기다리는 확신이다.


불확실한 시대에도 확신에 넘치는 믿음


믿음은 어떤 세력이나 권능이 아니라, 오히려 무능함이고 무력함이다. 마치 하인처럼 주인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고 그 말씀의 위력이 발휘되도록 하는 사람의 겸허함이다. 그런 사람은 하느님께 자기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하느님만을 믿고서 부조리한 역사의 격류를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 사람의 무능함과 겸허함과 포기를 통해서 하느님의 위력이 발휘된다.


다른 사람들 앞에 자기 자신을 내세우거나 자랑할 근거가 도무지 없음을 똑똑히 알고 있는 그런 사람에게 세상을 이기는 승리가 안겨진다(참조. 1요한 5,4). 하느님께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만이 자기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당신 사업을 수행하시도록 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사업을 십자가의 무력함과 약함 속에서 수행하신다. 스스로 잘나고 강하다는 사람 안에는 하느님께서 들어서실 자리가 없다. 자기 본모습을 똑똑히 바라보고 시인하고 자기가 실상 다른 어떤 사람보다 나을 것이 털끝만치도 없음을 인정하는 사람이라야 하느님께서 그 속에 들어가 그 마음을 차지하고 당신 뜻을 받들게 하신다.


하느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충만해 있는 사람은 의심할 여지없이 가난한 사람이다. 스스로 자만하지 않는 사람이다. 자기가 실상 아무것도 아님을 절감하는 사람이다. 자기의 헌신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말씀이 전달된 줄을 알면서도, 그 하느님의 말씀 자체는 하느님께로부터 비롯되고 결코 자기의 자격이나 잘남에서 비롯되지 않음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다. 하느님의 말씀이 전달되는 사실 자체는 자기의 하잘것없는 헌신에 도저히 비길 수 없이 무한히 위대한 사건임을 서슴없이 인정하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최선을 다하고 나서도 하느님 앞에 전전긍긍하는 사람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은총과 총애를 당신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당신이 원하시는 만큼 베푸신다. 하느님의 은총과 총애는 스스로 헌신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마땅한 권리로서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베푸실 은총과 영원한 복락은 사람의 노력과 헌신의 대가를 무한히 초월한 영원한 선물이다. 사람은 따라서 하느님 앞에서 끝까지 겸허할 도리밖에 없다.


그런 사람은 하느님의 충실하심을 믿고 선포한다. 겸허한 종을 통하여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는 하느님께서 마지막 날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시고 말리라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낸다.



[필진정보]
김수복 :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10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고, 그 동안 서울 가톨릭 신학대학 6년을 수료했다. 40년 동안 5개 언어에서 성서와 신학 관련 서적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노동자였다. 현재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둘, 손자 셋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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