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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연중 제28주일 독서·복음 해설
  • 김수복
  • 등록 2016-10-08 08:57:22
  • 수정 2016-10-10 15: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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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2열왕 5,14-17)

<나아만이 하느님의 사람에게 돌아와 주님께 찬양을 드렸다>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이 일러 준 대로, 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다. 그러자 그는 어린아이 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졌다. 나아만은 수행원을 모두 거느리고 하느님의 사람에게로 되돌아가 그 앞에 서서 말하였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이 종이 드리는 선물을 부디 받아 주십시오.” 그러나 엘리사는 “내가 모시는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결코 선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고 거절하였다. 그래도 나아만이 그것을 받아 달라고 거듭 청하였지만 엘리사는 거절하였다. 그러자 나아만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시다면, 나귀 두 마리에 실을 만큼의 흙을 이 종에게 주십시오. 이 종은 이제부터 주님 말고는 다른 어떤 신에게도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을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시편(97)

주님께서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의 구원을 알리셨도다


제2독서(2티모 2,8-13)

<참고 견디면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게 되리라>


형제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이 나의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위하여 나는 죄인처럼 감옥에 갇히는 고통까지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선택된 이들을 위하여 이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받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말은 확실합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면 그분과 함께 살 것이고 우리가 견디어 내면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이며 우리가 그분을 모른다고 하면 그분도 우리를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성실하지 못해도 그분께서는 언제나 성실하시니 그러한 당신 자신을 부정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루카 17,11-19)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연중 제28주일 독서·복음 해설



제1독서(2열왕 5,14-17) 해설

<이방인 나아만이 하느님의 사람에게 돌아와 주님을 찬양하였다>


이 일화는 엘리사 예언자가 행한 기적 이야기에 속한다. 여기서도 복음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과 시리아 두 백성 사이의 적대관계가 드러나 있다. 시리아 사람으로서 나병에 걸린 나아만은 사람의 한계에 갇혀 절망하는 불신으로부터 빠져나와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에 도달한다. 이제 나아만은 나병을 치유 받고서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참된 하느님이심을 고백하면서 하느님의 위대함을 찬양한다.


이방인인 시리아 사람 나아만이 주님이야말로 온 우주의 하느님이시요 모든 사람의 하느님이시라고 고백한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만의 하느님이 아니시고, 제도교회만의 하느님이 아니시다, 주님께서는 고통과 병고에 시달리는 모든 사람들을 구출하려 벼르고 계시는 하느님이시다, 주님께서는 정말 사람을 차별하시지 않는다. 그 이유 때문에 사람은 등급이나 계급으로 가를 수 없이 평등한 것이다. 백인, 흑인, 황인이 서로 차별하거나 멸시할 수 없다. 귀한 사람, 천한 사람이 결코 따로 있을 수 없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주인이고 모든 사람의 아버지시다.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어디에나 그 한가운데 하느님께서 살아계시면서 힘찬 당신 능력을 펼치신다.


시편(98) 해설

<주님께서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의 구원을 알리셨도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정의를 모든 백성과 모든 사람 앞에 밝히 드러내려 하신다. 땅 끝에서 땅 끝까지 당신 구원을 이룩하려 하신다. 당신 정의와 구원에서 빠진 사람과 백성과 민족은 하나도 없다. 가장 가난한 사람, 가장 힘없는 백성에게까지 당신 정의와 사랑을 보여 주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하느님이시다, 결코 어떤 선택된 집단이나 나라들 안에서만 이기적인 정의와 질서가 이루어지는 것을 탐탁스럽지 않게 여기신다. 사회의 후미지고 그늘진 곳에서 신음하는 인생들과 제3,4세계의 무수한 사람들이 견디고 있는 모진 가난과 온갖 질병을 낫게 하고 없애려고 안간힘을 쓰는 하느님이시다.


제2독서(2티모 2,8-13) 해설

<하느님의 말씀은 감옥에 갇혀 있을 수 없다>


티모테오는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표양에 따라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사도로서 맡은 소임을 다하라는 권고를 받고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선포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박해를 받고 죽이겠다는 위협을 받게 되어 있다. 그러나 바오로는 그리스도 때문에 받는 고통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샘솟는 위안과 기쁨을 느낀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진리와 정의와 사랑을 전달하다가 바오로는 감옥에 갇힌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말씀은 결코 감옥에 갇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바오로가 진실을 밝히다가 감옥에 갇히게 된 사실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은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많은 사람의 마음을 차지하게 된다.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은 당신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는 사람들로 인하여 그 올바름이 공공연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고통과 투옥과 고문과 죽음이 두려워 진리를 외면하고 배반하면 그리스도께서도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모른다고 하실 것이다.


역사의 진실을 적나라하게 밝히고 현실의 진상을 발가벗겨 하느님의 진리에 들어맞는 사회와 세계를 만들기 위해 목숨을 걸어놓고 노력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리에 참여할 것이다.


복음(루카 17,11-19) 해설

<이 이방인 한 사람 외에 아무도 돌아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최후를 마치려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는 길에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사이 경계를 지나가고 계셨다.


그 때 나병환자 열 사람이 율법 규정에 따라 일정한 거리를 두고서 자기네 병을 낫게 해주시라고 예수님께 간청한다. 예수님께서는 그냥 그들이 측은해서 유다인, 이방인 가리지 않고 모두 낫게 해 주신다. 자기 병이 낫게 된 것을 알게 된 열 사람 중 하필이면 이방인이라고 멸시받던 사마리아 사람 한 명만이 되돌아와 감사드리고 하느님을 찬양한다. 예수님께서는 이방인인 그 사람에게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하였다”고 말씀하신다.


특권의식은 누구에게나 항상 착각이고 근거 없는 우월감에서 우러나온 자기기만으로써 어김없이 다른 사람에게 해독을 끼친다. 자기가 태어난 배경・신분・기득권・소속된 가정과 나라와 집단 그리고 타고난 자질과 능력과 애써 성취한 위치 따위와 소속된 종교까지도 결코 그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선택되고 선별된 특권의식으로 연결될 수 없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과 그 가운데서도 특히 가련하고 불쌍한 못난 인생들을 편들고 구출하고 해방하신다. 그런 하느님 아버지를 알아뵙고 감사드리고 찬양할 줄 아는 믿음만이 사람을 살릴 수 있다.


묵상


누가 하느님께 감사드릴 줄 알았던가


자기가 큰 은혜를 받아 나병이 나았음을 깨닫고 돌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린 사람은 이방인이었다. 더구나 유다인이 적대시하던 사마리아인이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침 뱉고 돌아서는 불결한 인생이고 저주받은 인생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가족이나 동족이나 유다교에 속한 사람이라 해서 특별한 관심을 쏟지 않으신다. 유다인들이 싫어하고 미워하던 사마리아인에게 더 마음이 끌리신다. 멸시와 천대를 받는 일그러진 나병환자에게 애틋한 인정을 느끼신다. 예수님께서는 어부 같은 사람들과 병자들과 창녀와 세리와 나병환자와 허기진 군중과 더불어 당신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앓고 계신다. 당신이 무엇인가를 베풀기 전에 먼저 그런 하찮은 인생들과 똑같은 처지의 사람이 되고 그들과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신다. 먼저 당하고 사는 못난 인생들 중의 한 사람이 된 다음에 그들에게 당신 진심과 구원능력을 전달하신다. 나병환자가 자기 병을 고쳐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찬양할 줄 아는 극히 정상적인 올바른 사람이 된 것은 가진 것 없이 가난하고 검소하게 살아가시는 친근감 있는 예수님을 믿고 신뢰한 덕이었다.


자기들 가운데 자기들과 더불어 똑같은 생활을 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만날 수 있을 때, 먼 나라 사람 이방인이거나 가진 것 없고 병들어 불결해진 나병환자 같은 사람들이 처참한 자기네 처지에서 벗어나 해방의 기쁨을 맛볼 수 있게 된다. 오늘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이어가기로 작정하고 결심한 사람들도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인류 대부분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진리와 정의와 사랑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지상 생애를 살고 가진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허기지고 병고에 신음하는 사람들과 자기 몸으로 그 가난과 고통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자기는 기름지게 잘 먹고 푹신푹신한 침상에서 자면서 가난한 사람들더러 어서 부지런히 일해서 잘 먹고 따뜻하게 지내라고 입으로만 격려하는 것은 복음전파가 결코 아니다. 우선 가난한 나라들과 정당하고 정의로운 교역을 맺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재화와 기술을 공으로 또는 값싸게 제공한 다음에라야 선교사들을 보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함께 나누면서 친하게 지내려 하는 우리 같은 사람이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가진 것을 내놓고 따뜻하게 나누지 않는 상태에서 마음을 나누고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예수님께서는 만물의 주인이지만 모든 것을 내놓고 정작 당신 자신은 머리 하나 편히 누일 자리도 없으셨다. 그런 예수님을 닮아야 가난과 병고에 지친 사람들에게 해방과 구원을 조금이라도 선포하거나 전달할 수 있다. 나병환자를 낫게 하신 예수님처럼 굶어죽고 영양실조로 병들어 죽어가는 무수한 사람들을 낫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가진 모든 것을 내놓고 포기하고 나눌 필요가 있다. 투기자본을 이용하여 가난한 나라들을 착취하기를 즉시 중단할 뿐 아니라, 기왕 착취한 것을 반환하고, 나아가서는 하느님의 소유인 모든 자원과 재화와 능력과 기술을 기꺼이 내놓고 고통도 함께 나누고 거기서 우러나오는 기쁨도 함께 나눌 필요가 있다.


그러한 방식으로 베푸는 치유의 은혜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선물이다. 은혜를 받아 가난과 병고에서 벗어나 함께 친하게 사는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것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를 닮아 가난한 자기들과 일심동체가 된 사람들을 통하여 전달된 엄청난 구원의 은총과 진정한 해방 덕택이다. 그러므로 감사와 찬양을 받으실 분은 오직 하느님이시다. 또한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찬양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야 참으로 정상적인 사람이다. 구원을 받아 해방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오순도순 사는 세상이 반드시 이 땅 위에 이루어진 다음 영원한 세상으로 고스란히 건너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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