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 대해 직언을 아끼지 않았던 천주교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와 박원순 서울시장이 만났다. 이들은 제주 4·3사건에 대한 바른 인권·역사의식 정립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하며 평화의 가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제주를 찾은 박원순 시장은 일정 이틀째인 15일 오후 4시 제주시 아라동 천주교 제주교구 주교관을 찾아 강우일 주교와 면담했다. 두 사람은 제주 4·3사건이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었으며, 아직도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역사정립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박 시장은 “사회적으로 어려울 때마다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평소에 존경하는 마음이었다”며 말문을 열었고, 강 주교는 “4·3사건에 대해 옛날부터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박 시장은 “우리나라에서 국가폭력과 인권침해 사례는 여럿 있지만, 4·3사건 만큼 심각하고 중대한 일은 없었다”고 강조했고, 강 주교는 “4·3사건은 한국 현대사에서 아주 심각한 사건이지만, 역사에 언급이 안 되고 묵살됐다. 제주 사람들은 뼛속까지 (아프게) 느끼는 사건이지만 제주 밖에서는 거의 인식을 못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부분 국민이 그냥 숫자만 알고 내용이 어떤지는 모르는 현대사인데, 박 시장과 같은 분이 계셔서 다행이다. 이번에 유족들도 많은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전날 박 시장은 제주 4·3평화공원을 방문해 “유족들의 요구사항을 포함해 4·3특별법 후속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역사를 왜곡하며 유족에게 고통과 피해를 주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법령도 필요하다”며 제주 4·3사건에 대한 ‘2단계 후속 조치’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박 시장은 “4·3특별법이 제정되면서 1단계 진상규명 진전이 있었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많다”며 “인권의 중요성이 잘 인식되지 않아 4·3사건에 대한 혐오적인 발언들이 나오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강 주교는 “유대인의 경우 이스라엘 사람뿐 아니라 미국과 세계 각국에 사는 유대인이 지금까지도 과거의 진실을 알기 위해 여러 측면에서 노력하고 있다”라며 “우리나라 국민이 제주 4·3사건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깊이 알고 인식을 심화한다면 민주주의 발전에 굉장히 도움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날 면담은 10여 분 공개면담 이후 비공개 면담으로 진행됐다. <제주의소리>에 따르면 박 시장 측 관계자는 이후 비공개 면담 내용에 대해 “평화의 가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것”이라고 밝혔다.
차기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박 시장과 평소 제주지역뿐 아니라 한국 천주교회의 ‘어른’으로 불리는 강 주교의 만남은 시작 전부터 관심이 쏠렸다. 박 시장은 14일 제주 4·3평화공원 참배로 제주 일정을 시작해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 특별강연, ‘2016 아름다운 제주국제마라톤대회’ 참가, 태풍 ‘차바’ 피해농가 방문 후 강 주교와의 면담을 끝으로 공식적인 일정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