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신앙연구소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는 26일 경기 화성시 수원가톨릭대학교에서 ‘현대의 복음선교와 여성문화’를 주제로 31회 학술발표회를 개최했다. 이번 강연은 여성문화를 중심으로 여성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해, 한국 교회의 복음화를 조명하는 자리였다.
이날 세미나에는 수원교구 이성효 총대리 주교를 비롯해 사제와 평신도, 신학생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수원가톨릭대학교 총장 유희석 신부는 이번 세미나를 통해 한국문화 안에서 여성문화가 어떻게 자리매김할지 고민해보고, 한국교회가 여성의식을 개선해야 할 점을 찾길 바란다고 밝혔다.
가톨릭대학교 종교학과 교수이면서 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 대표인 최혜영 수녀가 ‘한국교회 안의 여성문화’를, 동 대학 인간학연구소 최진일 연구원이 ‘여성의 제네라티비티(Generativity)와 생명윤리’를 주제로 발제했으며, 박은미 주교회의 여성소위원회 총무와 이성과신앙연구소장 곽진상 신부가 논평을 맡았다.
“교회의 여성의식, 일반 사회의 양성평등 의식을 따라가는 수준”
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 대표 최혜영 수녀는 지난해 2월 교황청 문화평의회가 여성에 대해 다룬 의제 중 네 번째인 ‘교회 내의 여성의 현존’에 초점을 맞춰 한국 가톨릭의 여성문화를 살폈다. 그는 한국 가톨릭교회의 가부장적인 문화를 지적하며, 교회가 여성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혜영 수녀는 “서구에서는 1960년대 여성운동이 일어나면서 가톨릭교회에도 큰 영향을 줬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는 상황을 의식하고 신학과 교회 전통 안에서 성차별과 억압의 현실을 비판, 대안을 제시했다”라며 “한국은 1980년대부터 여성수도자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러나 가톨릭여성연구원을 시작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한국 천주교는 별로 변한 것이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지난해 교회의 여성문화와 관련해 열린 교황청 문화평의회 총회가 교회 전체에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했다. 새로운 논의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보편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여성의식에 대해 성찰하고 이를 발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최 수녀는 “처음 ‘여성문화 - 평등과 차이’란 이름으로 문화평의회 총회가 열린다는 말을 듣고 식상한 느낌이 들었다. 1970대와 1980년대에 이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눴었고, 이후에도 깊이 있는 대화가 오갔지만, 방향이 없었다”며 “그러나 교황님과 교회의 지도자들이 발표한 성명을 보면서 교회 안에 여성에 대한 새로운 바람이 부는 것은 아닌지 기대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1980년 후반부터 여성주의와 여성신학의 영향을 받은 진보적 여성 단체가 생겨나고, 2001년 제도교회 차원에서도 주교회의 평신도 사도직위원회 산하 여성소위원회가 생겨나면서 여성 사목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아직도 교회 내에서 여성 의식은 일반 사회의 양성평등 의식을 따라가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최 수녀는 평가했다.
특히 가부장적 특색이 강한 교회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교구와 본당 내 여성 사목을 활성화할 수 있는 전담기구 설치, 교회 내 의사결정 과정에 여성의 참여를 확대할 수 있는 여성할당제 적용, 신학교 교육에 참여하는 여성 교수직 확보 등에 대한 제안이 계속됐지만, 그에 대한 교회의 응답은 매우 소극적인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최 수녀는 “문화라는 것은 하나의 고정된 것이 아니고 여성 역시 하나로 고정해서 말할 수 없다. 여성의 목소리는 하나가 아니고, 각자의 체험들도 하나가 아니다”라며 “다양한 문화를 경험한 다양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서는 교회가 여성에 대해 재인식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리스도교 문화가 오래 자리 잡은 문화라 할지라도 ‘복음화’가 필요한 죄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라며 “남성중심적이고 가부장적 성차별의 요소가 깊이 자리했던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관행에 대해 변화가 필요하다. 한국 가톨릭교회가 더욱 복음적인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여성 문화’에 대한 관심을 발전시키고, 양성평등적인 교회로 나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시도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제양성 과정에서부터 ‘여성 인식’ 도와야”
박은미 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 교수는 논평을 통해 최 수녀의 발제를 요약하는 한편, 관련 내용을 더욱 심화했다.
박은미 교수는 “이미 교구별로 ‘여성위원회’나 ‘여성연합회’라는 이름을 지닌 여성 기구들이 마련돼 있는 것으로 안다”며, 여성 사목 전담기구를 설치해야 한다는 최 수녀의 주장을 반박하면서도 “이 기구들이 여성 사목을 전담하는 기구로 기능하고 있는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서울대교구에는 ‘가톨릭여성연합회’라는 이름의 단체가 있지만,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여성들의 사적인 모임 성격이 짙고, 일반 여성 신자들은 이런 단체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라며 “이 단체가 본당 여성들과 연결점을 갖고 본당 여성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등의 활동을 해 오지 못했다는 점에서 서울대교구부터 여성 기구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30,40대 미혼 여성의 심리건강 증진을 위한 상담소를 지구별로 개설하고자 하는 제안이 남녀 신자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상담소여야 한다는 내용으로 확장되면서 지지부진한 논의에 그쳤던 점을 지적하며, 여성 사목의 대상을 여성 자신만으로 국한하지 말자는 최 수녀의 주장을 반박했다.
여성 영세자 감소가 교회 활동을 주도하는 여성 신자 증가의 둔화로 이어진다는 최 수녀의 주장에 대해서는 “한국사회의 전반적 상황 변화에서 30,40대 여성의 경우 안정적인 신앙생활을 하기가 어렵다. 청장년층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활력 있게 하도록 교회가 배려하는가”라며 “교회에서 활동하는 여성 신자들의 연령이 고령화되고 있다는 점은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점”이라고 덧붙였다.
사제 양성 과정에서 여성 교수직을 늘려야 한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사제가 남성과 여성의 관계적 의미를 깊이 인식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면에서 여성학·여성신학이 신학교 교과과정에 편입되고 더 많은 여성이 교수로 활동해야 한다”라며 “향후 사제 양성과 교육에 여성 교수와 신학자의 더 많은 참여가 기대 된다”며 뜻을 같이했다.
박 교수는 “여성이란 이유로 살해되고, 빈곤한 여성들이 신발 깔창을 생리대로 사용하는 말을 들어도 이렇다 할 반응을 보여 주지 않는 교회를 보면서 ‘여성의 문제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말은 공허한 미사여구로 여겨질 수 있다”며 “여성의 문제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과제는 교회가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해서라도 떠안지 않으면 안 될 무거운 짐이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