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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가톨릭영화제 개막, “전쟁 같은 현실에서 '함께 하는 삶'을”
  • 최진
  • 등록 2016-10-28 18:31:54
  • 수정 2016-10-28 18:5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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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데이 39> 중 (사진출처=day39)


상의를 탈의한 미국 군인들이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노래한다. 장난과 웃음, 서로를 놀리는 말들이 리듬에 맞춰 오간다. 친근하면서도 기발한 장난들이 오가며 청년이 내뿜는 특유의 젊음이 피어난다. 그리고 흥겨운 풍경 속에서 한 병사가 ‘살인자’라는 단어를 내뱉는다. 청년들은 자신들을 살인자라고 설명한다. 장면이 넘어간다.


가톨릭영화인협회가 주관하는 제3회 가톨릭영화제(CaFF)가 서울 명동역CGV 시네라이브러리에서 27일 개막했다. 올해 가톨릭영화제는 ‘함께하는 삶’을 주제로 이날부터 30일까지 3일간 총 53편의 영화가 스크린에 오를 예정이다. 영화는 모두 무료 상영이다.


가톨릭영화제는 평범한 삶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숨 쉬고 있는 생명과 사랑을 함께 보고 느끼며 공감하는 가치를 추구하는 영화제다. 보편적인 가치와 가톨릭 영성을 담고 있는 영화들을 함께 보고 대화를 나누는 장이다.


▲ 27일 서울 명동역CGV 시네라이브러리에서 제3회 가톨릭영화제가 개막했다. ⓒ 최진


총격전이 이어진다. 환히 웃던 군인들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긴장과 초조함이 스크린을 채운다. 총탄 속을 달리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자신들의 순서를 기다리며 한 명씩 뛰어나간다. 총으로 사람을 조준한다. 살려달라는 몸짓을 하는 사람의 가슴에 조준경을 맞춘다. 


이춘재 가톨릭영화제 조직위원장은 “영화제에 참석해주신 분들, 행사를 위해 노력해주신 신부님과 수녀님, 자원봉사자분들께 감사드린다. 영화제 동안 함께하는 삶의 기쁨을 느끼시길 바란다”며 영화제 개막을 알렸다.


가톨릭영화제 집행위원장 조용준 신부(성바오로수도회)는 “가톨릭교회에서는 올해가 자비의 특별 희년이다. 자비라는 말이 참 좋은 말이지만, 잘못하면 ‘있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 대한 태도’로 이해할 수 있다”며 “고심한 끝에 우리는 각자가 다른 존재지만,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세상을 지향하자는 뜻에서 제3회 가톨릭영화제의 주제를 ‘함께하는 삶’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 조용준 신부는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세상을 지향하자는 뜻에서 이번 가톨릭영화제 주제를 `함께하는 삶`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 최진


조 신부는 “오늘날 우리는 미움과 불신, 혐오가 만연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긍정적인 마음으로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고 때로는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다면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세상, 진정 평화로운 세상이 만들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영화제가 작고 보잘것없지만, 선한 지향에 보탬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 한다”고 말했다.


작은 마을 한 집안에서 여자의 비명이 울린다. 텅 빈 시선으로 전방을 경계하던 병사가 집 안으로 들어간다. 군의관은 한 여성의 출산을 돕고 있었고, 병사에게 자신을 도와달라고 말한다. 적을 찾아 죽이려던 병사의 눈앞에서 생명이 탄생하려 한다. 임산부 옆에는 조금 전 총격전으로 가슴에 구멍이 뚫린 남자가 숨을 헐떡이며 누워있다. 태어날 아이의 아빠다.


영화제 사전제작지원 심사위원에는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를 비롯해 배우 박희본 씨, 이정향 영화감독, 전평국 경기대 교수, 이민우 신부(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참여한다. 단편경쟁부문 심사위원에는 배우 양미경 씨와 서울대교구 홍보국 유환민 신부, 홍지영 영화감독 등이 참여한다. 


영화제 단편경쟁부문 심사위원인 홍지영 감독은 “이번 가톨릭영화제 ‘함께하는 삶’이란 주제를 보면서 어쩌면 영화라는 장르 자체가 함께 만들고 함께 보고 그 감흥을 함께 나누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라며 “경쟁이지만 경쟁 아닌 작품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함께 심사한다는 마음으로 임하겠다”고 말했다. 


병사는 혼란스럽다. 죽음의 장소에서 보았던 긴장감이 생명의 탄생에도 이어진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제왕절개 수술이 진행되고, 곧 애처로운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조금 전까지 총을 들었던 병사의 손에는 갓난아기가 들려졌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청명하게 울리는 순간, 아이의 아빠는 숨을 거뒀다. 생명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 영화 <데이 39> 중 (사진출처=day39)


영화제의 정체성과 지향을 보여주는 개막작으로는 제스 구스타프손 감독의 <데이 39>(2015년)가 선정됐다. <데이 39>는 전쟁터에서 미국인 신참병사와 군의관이 아프가니스탄 여인의 출산을 돕는 내용으로, 15분짜리 단편영화다. 숫자 39는 전쟁터에 파견돼 39일째 날이라는 뜻이다.


전쟁영화를 개막작으로 선정한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 팀장 손옥경 수녀는 오늘날 우리의 일상이 전쟁터라는 생각에서 <데이 39>를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함께하는 삶이 좌절됐을 때 나타나는 상황인 전쟁터를 통해 이번 가톨릭영화제 주제인 ‘함께하는 삶’을 더욱 부각했다.


손 수녀는 “우리는 살면서 여러 상황에 놓이게 되지만, 때로는 가치·이해·이념을 내려놓고 가장 소중한 것을 위해 무릎을 꿇어야 할 때도 있다. 이 영화는 전쟁 같은 현실에서 어떻게 함께하는 삶으로 넘어가는지를 강렬하게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 손옥경 수녀는 영화 <데이 39>는 전쟁 같은 현실에서 어떻게 함께하는 삶으로 넘어가는지를 강렬하게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 최진


아이의 아빠를 죽인 것도, 아이와 산모를 살린 것도 모두 군인들이다. 앞서 관객들이 보았듯이 ‘노래와 웃음으로 함께하는 삶의 기쁨’을 군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태어난 아기를 남겨두고 다시 총을 잡는다. 병사들은 푸르고 어두운 사막 속으로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긴다. 전쟁은 함께하는 삶이 어그러진 흉측스런 열매라는 사실이 남았다.


지난해 가톨릭영화제 조직위원장을 맡았던 조혜정 씨는 “가톨릭영화제는 가난한 영화제지만, 가난하기 때문에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제 기간에 더 많이 함께하고 더 많은 문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개막식 다음 날인 28일 오후 7시에는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지구는 공동의 집입니다’를 주제로 영성 토크가 진행된다. 생태와 환경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영화제에 출품된 작품과 함께 돌아볼 예정이다. 이어 29일 오후 7시부터는 노숙자들의 보호시설인 ‘안나의 집’ 김하종 신부와 함께 현대 사회에서 ‘함께 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오픈 토크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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