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당장 하야하라!
- 대국민담화에 대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논평
오늘 오전, 대통령의 담화는 그가 어서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안 되는 중대한 이유를 거듭 확인시켜 주었다. 자신의 잘못을 남 이야기 하듯 하고 제3자에게 그 탓을 돌리는 평소의 파렴치부터, 사상 초유의 국정붕괴 사태를 불러온 장본인이 나라의 운명을 염려해서라도 자리를 지키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교만까지 우리는 그에게서 이기심과 독선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인간의 죄를 바라본다. 슬프고 부끄러운 일이다.
“자네 소문이 들리는데 무슨 소린가? 집사 일을 청산하게. 자네는 더 이상 집사 노릇을 할 수 없네.” (루카 16장 2절)
1. 우리의 요구는 단순하다. 당장 자리에서 내려와 조용히 시민의 자리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대통령 한 사람을 살리려고 국가공동체 전체를 망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 “국정은 결코 중단돼서는 안 된다”면서 사퇴를 거부한 것은 대통령의 현실인식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보여 주었다. 대통령 국정지지율 5%(한국갤럽 4일자 발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고 국민을 안중에 두지도 않는 무지와 불통의 지도자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 국정이랑 국가의 주인인 국민에게 맡기고 악정을 저지른 자는 그 죄를 통회하고 당장 자리에서 물러나 수사를 받기 바란다. 그 후에 그동안 부당하게 그러모은 재산이 있다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납하고, 소록도를 즐겨 찾던 어머니처럼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 속죄하는 길만이 마지막 남은 애국의 길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마르코복음 11장 16절)
2. 대통령은 최순실, 안종범의 뒤에 숨는다. 그런데 박근혜의 등 뒤로 숨어버린, 아직 전모가 다 드러나지 않은 국정농단의 또 다른 주역들이 있다. 그들은 새누리당 국회의원들, 정경유착의 파트너인 재벌들, 선거에 개입하고 간첩사건을 조작해온 국정원과 불의에 편승해온 정치검찰 그리고 “부패한 수구기득권 언론들”이다. 이들이야말로 국민의 기쁨과 희망을 슬픔과 절망으로 만들어 버린 또 다른 공범들이다. 국민과 함께 울고, 웃지 못하는 이런 부패한 세력은 말끔히 정화되어야 한다. 오늘의 위기를 그야말로 적폐청산의 기회로 삼아 이런 비선실세들을 과감하게 청산하지 않는 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반복될 수 밖에 없다.
“그물이 가득차자 물가로 끌어 올려 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마태오복음 13장 48절)
3.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물을 당겨 모을 것과 버릴 것을 가르는 일은 어부의 할 일, 추수의 때를 맞아 알곡을 거둬들이고 쭉정이를 따로 모아 태우는 것은 농부의 할 일이듯 역사를 추수하는 일은 시민들의 소명이며 특히 하느님의 뜻을 펼쳐야 할 우리 신앙인들의 책임이다. 지금은 모두가 일어나서 불의를 꾸짖고 정의를 세울 때다.
혹시 아직도 학생과 젊은이들이 앞장서서 나서주기를 기다리는지 모르겠다. 그래서는 안 된다. 기성세대가 앞장서서 어린이와 학생과 청년들의 내일을 열어주어야 한다. 오늘의 비극을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는 계기로 삼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하느님 앞에 그리고 이 땅의 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던 분들 앞에 큰 죄를 짓게 된다.
박근혜의 실패가 최태민 일가와의 악연을 끊어버리지 못해서 생긴 일이라면, 오늘 대한민국의 비극은 친일, 친재벌, 부패한 수구기득권세력과 결별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임을 명심하자.
오는 11월 7일부터 전국 각 교구별로 “박근혜 퇴진과 민주회복을 위한 시국기도회”가 열린다. 수도자들과 교우들 그리고 뜻 있는 시민들의 동참을 바란다. 세월호를 타고 의문의 죽음을 당한 아이들과 농민 백남기 선생을 생각하며 악에 저항하고 선을 바로 세우는 일에 우리 사제들이 앞장서고자 한다.
2016년 11월 4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