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이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지만 사회가 평화롭기는커녕 폭력이 교묘하게 구조화되고 도리어 내면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하는 제6차 “레페스포럼”(REPES Forum)에서 박현도 교수(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이슬람학)가 “IS: 국가, 종교, 폭력”이라는 제목으로 발제한 내용의 요약이다. 이를 통해 종교와 평화의 관계에 대해 상상해본다.
참석자:
박현도(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HK연구교수, 이슬람학)
원영상(원광대 연구교수, 일본불교학)
유영근(대화문화아카데미 협동원장, 변호사)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종교평화학/진행)
전병술(건국대 연구교수, 동양철학)
전철후(강남교당 교무, 원불교학/기록)
정종학(강남교당 운영위원장)
홍정호(연세대 객원교수, 선교학/정리)
평화 문제를 세계사적 차원에서 상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현상이나 사건 중의 하나가 IS 문제이다. IS는 종교 현상이자 동시에 정치 현상이기도 하다. 종교와 정치가 어떻게 폭력이 되는지, 종교와 정치가 평화에 공헌할 수 있겠는지 그 사례 및 가능성을 IS를 통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이 분야 전문가이신 박현도 박사님과 함께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 (이하는 박현도 교수의 발제 요약문이다)
“IS: 국가, 종교, 폭력”
IS 형성의 국제정치적 배경
IS는 종교현상이며, 정치 현상이다. IS가 무슬림인지 아닌지는 믿는 자들이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이 말은 곧 믿는 자가 아닌 내가 IS가 무슬림인지 아닌지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러한 판단은 무슬림들이 해야 한다. 이 부분을 전제로 하고 이야기 하겠다.
IS를 알려면 정치적인 상황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중동국가라 불리는 나라들은 식민주의의 산물이다. 1900년대 이전에는 중동 국가라는 것이 없었다. 오스만튀르크 지역에 서구가 들어가면서 땅을 빼앗았다. 아랍지역이라는 도화지에 영국과 프랑스 두 나라가 금을 긋고 자신들의 이익에 맞는 나라를 만든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중동 국가이다.
1916년에 영국과 프랑스가 오스만튀르크 지역 아라비아 반도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 논의 한다. 밀약을 하였고, 기본적으로 이 틀 안에서 국가라는 것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또 영국은 팔레스타인을 두고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다.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 국가를, 아랍 사람들에게는 아랍인의 국가를 세워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같은 땅을 두고 다른 약속을 했으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의 시작은 영국이고, 그 뒤처리를 미국이 하고 있다. 물론 미국도 필요한 것이 있기 때문에 뒤처리를 하고 있다. 여기서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봐야 할 것은 시리아와 이라크를 가르는 국경이다. 국경선은 영국과 프랑스가 석유가 발견된 지역에서 이해관계에 따라 적절하게 그은 것이다. 올해가 이 라인을 그은 사이크스-피코협정 100년이 되는 해이다. 1916년에 영국의 사이크스와 프랑스의 피코가 밀약을 한 국경선이다.
IS가 이라크에서 발생하여 시리아로 확장해가면서 양쪽 지역을 지배하는데, 이 라인을 왕래하면서 자신들은 사이크스-피코협정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표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반도의 남북을 가르는 휴전선을 열혈 젊은이들이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계속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이것이 바로 서구 식민주의 잔재를 싫어하는 아랍인들이 IS를 매력적으로 볼 수 있었던 부분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20세기 초반부터 영국과 프랑스의 지배를 받던 지역이 국가로 독립한다. 이러한 식민지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중동을 이해하기 어렵다. 오늘날 정치 문제의 뿌리이다.
IS와 알자르까위
IS는 요르단 출신 알자르까위가 창시자다. 미국의 공습으로 40세에 삶을 마감하였는데, 원래는 범죄자다. 자르까위는 현재 중고차 거래가 활발한 지역 자르까에서 부랑아처럼 지내다가 교도소 신세를 지기도 하였다. 그는 소련군에 대항하는 아랍전사가 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가서 오사마 빈 라덴을 만난다. 오사마 빈 라덴은 처음에 자르까위를 좋아하지 않았다. 둘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오사마 빈 라덴은 고학력에 테러 가담하기 전에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었는데, 자르까위는 고등학교를 중퇴한 데다 범죄 경력이 있었으며, 극단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요르단으로 돌아 온 자르까위는 요르단에서 극단주의자 캠프를 차리고 활동하다 체포되어 수형생활을 하다가 1999년 사면되어 풀려난다.
영국과 미국, 이라크와 IS
2003년에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한다. 이라크는 친미 지도자 사담 후세인이 지배하던 독재국가였다. 이라크라는 나라는 영국이 만든 나라이다. 당시 셋으로 나뉜 곳을 하나로 강제로 만든 나라다. 언어적으로는 아랍어를 쓰는 사람들과 쿠르드어를 쓰는 사람 두 그룹으로 나뉘는데, 아랍어를 쓰는 사람들은 다시 소수 순니파와 다수 시아파로 나뉜다. 영국은 순니아랍과 접촉했고 이들의 말을 듣고 나라를 만들었다. 함께 살기 어려운 셋을 합쳐 이라크라는 나라를 만든 것이다. 본래 쿠르드는 떼어 놓으려고 했는데 그 지역에서 석유가 나오자 붙여버렸다.
공존 할 수 없는 셋을 하나로 만들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아주 훌륭한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가 나타나서 대통합을 이루는 것이다. 두 번째는 반대파들을 제거하는 독재 정치이다. 이 때 사담 후세인은 후자를 택했다. 2003년에 미국은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였고, 시아파가 정권을 잡게 되었다. 사담 후세인의 잔당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중요한 관건이었다. 혼란이나 분쟁을 피하려고 한다면 어쩔 수 없이 사담에게 가담한 군경은 사면했어야 하는데 이들을 모두 해임하였다. 잘 훈련된 군인들이 실업자가 되면서 생계가 어려워졌다. 결국 무기를 잘 다루는 군인들이 IS에 들어갔다. IS가 전투력이 좋은 이유다.
IS는 이라크에서 똬리를 틀었다. 2011년 시리아에서 내전이 일어나면서 미국은 시리아 정권을 싫어하기 때문에 반정부군을 지원하였다. 이들에게 지급한 무기가 반정부군을 가장한 극단주의자들에게도 흘러들어갔다. IS는 혼란을 틈 타 시리아에서도 근거지를 구축하였다. 그리고 2014년 6월 29일에 이라크와 시리아를 하나의 단위로 지배하는 IS 국가 건설을 공포하였다.
IS의 복잡한 이름들
IS를 둘러싸고 이름이 많이 복잡한데 이름부터 정리해보자.
2006년에서 2013년까지는 이라크 이슬람국가(Islamic State of Iraq, ISI)라고 하고, 2013년에 시리아로 들어가면서 이라크와 샴 이슬람국가(Islamic State of Iraq and al-Sham, ISIS)라고 하였다. 샴(al-Sham)은 시리아를 가리키는 아랍어다. 샴을 영어식으로 부르면 레반트(Levant)다. 그래서 이라크와 레반트 이슬람국가(Islamic State of Iraq and Levant, ISIL)라고도 한다. ISIS 또는 ISIL로 부르다가 2014년 6월 29일에 ‘Iraq and al-Sham’ 또는 ‘Iraq and Levant’를 떼어 내고 ‘Islamic State (IS)’로 부른 것이다.
하지만 아랍권에서는 이들이 이슬람도 아니고 무슬림도 아니기 때문에 ‘Islamic State (IS)’라고 부르지 않는다. 아랍어 명칭에서 앞 글자만 따서 ‘다이시(DAISH)’ 또는 ‘다에시(DAESH)’라고 한다.
IS의 전략, 가까운 적부터 친다
알카에다와 IS는 궁극적으로 이슬람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방법이 다르다. 알카에다는 중동을 지배하는 서방 국가를 먼저 치는 작전을 구사하였지만, IS는 중동의 비무슬림 정권을 먼저 무너뜨리고 서방을 제압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알카에다와 달리 멀리 있는 적이 아니라 가까운 적을 먼저 친다. 뱀의 머리가 아니라 몸통을 먼저 친다.
IS는 자신들에게 대항하는 모든 국가들을 십자군으로 부른다. 환치시킨다. 또 종교적인 표현을 적극적으로 쓴다. 이들이 발행하는 잡지를 보면 이슬람의 역사와 교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가 적잖다. 역사성이 깊은 용어를 쓴다.
전사를 모집하는 과정에서는 종교를 앞세우면서 돈과 여자를 미끼로 현혹한다. 젊은 사람들이 돈, 여자, 총을 들고 직접 싸우는 IS에 매력을 느낀다. 가상 세계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에 죄의식을 못 느끼니까, 게임을 통해 훈련시키고, 실제로 사람을 죽여보라는 IS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IS는 전문가들에게 돈을 많이 주고 매스미디어 조작을 시도한다. 이들이 만드는 잡지, 동영상은 제작 수준이 높다. 전문가 작품이다. 예를 들어 참수장면을 영화 찍듯이 촬영하면서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참수되는 사람의 모국어로 동영상을 제작하여 시청자의 공포감을 극대화시키는 수법을 사용한다.
IS의 극단성과 복잡한 국제 관계
IS의 발흥에는 복잡한 국제 관계가 얽혀 있다. 시리아 정권을 무너뜨리려는 미국, 아랍왕정산유국, 이를 막으려는 정부군, 러시아, 이란이 대립하고 있다. IS 동조자가 역내외 국가에서 합류하고 있다. 서양에서도 많이 넘어가고 있다. 서양에서는 무슬림으로 태어났지만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이민 2, 3세들이 합류한다.
IS는 극단주의 특징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도 바로 폭력의 정당화다. 폭력을 합리화하고 찬란한 과거로 회귀하고자 한다. 이들은 이슬람을 칼의 종교라고 표현한다.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가 아니라 칼의 종교라고 규정하고 있다. 종교의 기본은 경전과 경전을 지탱하는 칼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폭력을 정당화 한다. 이슬람을 평화라고 하는 자는 모두 멍청이라고 비난한다. 폭력을 통해 이들은 과거로 돌아가고자 한다. 이슬람의 발흥한 7세기가 이상적인 시기다. 무함마드 시대의 이슬람을 순수하고 이상적으로 여겨 과거로 돌아가고자 한다. 이슬람 세계가 중세 때 까지만 해도 서구보다 앞섰는데 오늘날 보면 지금은 제3세계국가가 되버렸다. 이슬람을 제대로 믿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문제이니 과거 이상적인 세계로 돌아가 해결하려고 한다.
자의적 문자주의와 신앙검증
또 문자주의를 따른다. 말씀의 문맥을 무시한다. 꾸란에는 잔인한 표현들이 많다. 꾸란에는 사람을 죽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잔인한 표현은 구약성경을 이길 수는 없다. 잔인한 내용은 구약성경에 더 많이 나타나 있다. 문제는 구약성경에는 육하원칙에 따라서 이야기가 꾸며지지만 꾸란은 말만 모아 놓았다. 경전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상당히 곤란하다. 그런데 문맥을 무시하고 경전을 읽고 있다. 심지어는 경전 자체도 모르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무슬림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IS는 자의대로 이슬람법을 실행한다. 이슬람법은 유대교의 법전통과 같은 맥락이다. 서로 유사하다. 일상의 생활양식을 법으로 규정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법 적용에는 고도의 다양한 해석 작업이 필요한데, 전통을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IS는 신앙검증(타크피르)을 통해 시아파를 무슬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신앙을 거부하는 자들이라고 한다. 순니파들 중에서도 자신들을 따르지 않으면 무슬림으로 보지 않는다. 서구에 동조하고 물든 자들은 모두 불신자들이기에 죽여야 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자신들은 현재 십자군 전쟁을 수행중이라고 한다. 십자가를 무너뜨리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알카에다는 적어도 같은 이슬람의 이름으로 무슬림을 죽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IS는 무슬림이라도 죽인다. 신앙검증을 한다고 하면서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면 무조건 죽인다. 오사마 빈 라덴이 자르까위를 싫어했던 이유 중 하나도 자르까위가 신앙검증을 신봉하였기 때문이다.
IS는 반서구, 반세속주의를 주창하고 종말론적 예언을 따른다. 예언자 전승에는 최후의 종말 전쟁을 다비끄에서 십자군과 벌인다고 적혀 있는 구절이 있는데, IS는 이를 신봉하여 자신들의 선전 잡지명을 다비끄라고 짓고, 자신들이 현재 서구 세력과 종말전쟁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다비끄는 시리아에 있는 작은 마을인데, IS가 지배하고 있는 지역이다.
IS 테러가 무서운 이유는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격한 두려움을 심고 있다. 시리아의 경우 이해 당사자들이 심각하게 얽혀있기에 IS를 쉽게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반성해야 할 점은 잘못된 종교적 신념이다. 인터넷을 통해서 살인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여성의 성을 착취하는 것, 여성의 강제결혼도 문제다. 정말 놀라운 것은 살인을 쉽게 생각하도록 인식하는 것이다. 일부 청소년은 그것이 멋있다고 한다.
무슬림 사회 내부 반성과 재교육이 필요하다.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고 구호만 외칠 일은 아니다. 무슬림 사회 자체 내에서 깊은 성찰과 반성이 이루어져야 한다. 서구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무슬림 내부 자체의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는 문제의식에서 담론이 끝나서는 안 된다.
국제사회가 국익을 버리고 공공선의 평화를 추구 할 수 있는지 반성도 필요하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시리아에 인도적 원조를 하고 있다. 많지는 않지만 정부수립 이래 단일국가차원에서 가장 많은 지원을 하고 있는 곳이 시리아다. 일본은 전투에 도움을 주는 노력을 하다가 테러를 당했다. 그런데 사실은 이 때문에 국제 사회에서 일본이 더 신망을 받는 국가가 되었다. 국제사회에서는 일본을 테러 방지를 위해 함께 싸울 수 있는 믿을 만한 국가로 인식하고 있다. (박현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HK연구교수)
폭력적 현실 속에 있는 종교가 평화에 공헌할 수 있을까. 평화를 내세우는 종교인이 도리어 폭력에 공헌하는 것이 아닐까. 종교 및 평화 연구자들이 구조화된 폭력적 현실을 진단하고, 종교의 초라한 실상을 폭로하면서, 평화를 상상하는 토론을 벌였다. 모임 이름은 “레페스 포럼”. 레페스(REPES)는 REligion and PEace Studies의 약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