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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연중 제7주일 독서·복음 묵상
  • 김수복
  • 등록 2017-02-17 19: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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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레위 19,1-2.17-18)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에게 일러라.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나, 주 너희 하느님께서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너희는 마음속으로 형제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 동족의 잘못을 서슴없이 꾸짖어야 한다. 그래야 너희가 그 사람 때문에 죄를 짊어지지 않는다. 너희는 동포에게 앙갚음하거나 앙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


시편(102)

주님께서는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시나이다


제2독서(1코린 3,16-23)

<모든 것이 여러분의 것이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며,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자를 파멸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아무도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가운데 자기가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지혜롭게 되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이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지혜가 하느님께는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을 그들의 꾀로 붙잡으신다.” 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생각을 아신다. 그것이 허황됨을 아신다.” 그러므로 아무도 인간을 두고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바오로도 아폴로도 케파도, 세상도 생명도 죽음도, 현재도 미래도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복음(마태 5,38-48)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연중 제7주일 독서·복음 묵상



제1독서(레위 19,1-2.17-18) 해설

<모든 사람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레위 17-26에 수록되고 수집되어 있는 율법들을 “나, 주 너희 하느님께서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19,2) 라는 한 구절로 요약할 수 있다. 그래서 율법을 ‘거룩한 율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19장에 나오는 행동 규범 가운데 사랑하라는 계명이 들어 있다(17-18절). 사랑하라는 계명에는 부정문도 들어 있다. 즉 다른 사람에게 적의를 품지 말고 복수심을 불태우지 말라고 금하고 있다. 또 긍정문도 들어 있다. 즉 “동족의 잘못을 서슴없이 꾸짖어야 한다”(17ㄴ절)와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18ㄴ절)고 말한다. 


사람들이 서로 형제자매의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주장은 에제 3,17-19를 상기시킨다. “사람의 아들아, 내가 너를 이스라엘 집안의 파수꾼으로 세웠다. 그러므로 너는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해야 한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너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 말하는데도, 네가 그에게 경고하지 않으면, 곧 네가 악인에게 그 악한 길을 버리고 살도록 경고하는 말을 하지 않으면, 그 악인은 자기의 죄 때문에 죽겠지만, 그가 죽은 책임은 너에게 묻겠다.”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유명한 말씀은 자기 동족 아끼기를 자기 자신 아끼듯 하라는 뜻이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그 계명이 이스라엘 백성의 경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인용하신 의도는 사람 모든 사람·온 인류를 껴안는 보편적 사랑에 있다. 예수님께서 내리신 사랑하라는 계명은 내 자신·내 가정·내 지방·내 나라의 울타리를 없애고 뛰어넘어 사랑하라는 계명이다. 사실 온 인류를 화합하게 하고 전쟁을 끝내는 원리는 예수님의 사람사랑, 인류사랑 밖에 없다. 그리고 내가 가장 가까운 부모·자식·남편·아내를 진정으로 위해주고 아껴주는 길도 사람사랑・인류사랑과 연결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예수님께서는 신명 6,5에 나오는 하느님 사랑에다 사람사랑을 한데 묶어서 온갖 율법과 예언자들의 말씀을 요약하신다.


시편 (102) 해설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네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니>


주님의 계명은 무지막지한 추상적 명령이나 강요가 아니다. 먼저 하느님께서 은혜로이 개입하여 계약을 맺어주고, 그 계약에 따라 당신의 계명을 지키면 당신 사랑을 받고 당신 자신을 모시게 되는 무한한 행복을 내리겠다고 약속하신다. 우리는 먼저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형제자매인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먼저 인류공동체를 당신의 보편적 사람사랑의 원리로 화해하게 하고 일치하게 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생명을 바치셨기 때문에 우리도 인류 화합을 위해 생명을 바쳐 용서할 수 있는 것이다.


제2독서(1코린 3,16-23) 해설

<모든 것이 너희 것이고,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며,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이다>


농사(6-9절)와 건축(9-15절)을 비유로 들면서 바오로는 구원을 선포하는 일에서 설교자들이 가진 역할과 그 한계를 분명히 밝힌다. 그들은 하느님을 위해서 집단으로 일하는 일꾼에 지나지 않으며(9절), 하느님의 활동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삼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바오로는 코린토 신자들의 공동체가 하느님의 성전이고 그 성전 안에 성령께서 거처하신다고 말한다(16-17절).


복음 선포의 직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개별로 제멋대로 그 직분을 수행할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로서 집단으로 그리스도를 가운데 모시고 성령의 지시에 따라 그 직분을 다양한 모양으로 또 시대와 장소와 상황에 맞추어 선포해야 한다. 그리고 신자들도 파벌을 만들어 갈라질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로 뭉쳐서 사회와 인류가 하나로 뭉치는데 누룩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개별로 그리스도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신비스런 한 몸을 이루어 전달한다. 이 때 그리스도의 신비스런 몸에 속하는 사람들이란 그리스도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 그리스도의 삶의 방식대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그렇게 살아갈 때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신비체요 하느님 성전인 교회는 어디까지나 하느님·그리스도·성령의 사랑을 전달하는 것이지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내세우고 전달하는 것이 결코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야만 재물에 눈이 어두워지거나 그릇된 권력과 손잡는 일을 피할 수 있다.


복음(마태 5,38-48) 해설

<원수를 사랑하여라>


이 대목은 예수님께서 ‘산위에서 행하신 설교’의 종결 부분이다.


38절에서는 탈출 21,24; 레위 24,20; 신명 19,21에 나오는 보복에 관한 율법을 자유스럽게 인용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율법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신다. 이 예수님의 입장을 역설적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고 신비스럽게 느끼는 사람도 있다.


43-48절에서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나온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죽지 않고 살기를 바라신다. 모든 사람을 돌아서게 하여 구원하시려는 것이 하느님의 포부요 구원경륜이다. 깜박거리는 호롱불을 저버리지 않고 꺾인 갈대를 잘라내지 않는 하느님이시다. 사람은 하느님을 닮아가는 데 살아 움직이는 목적이 있다. 사람은 사람을 하느님처럼 감싸주고 용서해야 하느님을 닮은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묵상


사랑하라는 계명

 

사랑하라는 위대한 계명은 이미 구약 시대에 생활의 근본 규범으로 제시되고, 하느님과 참된 관계를 맺고 있는지 여부를 가리는 유일한 척도로 여겼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내용을 더 깊게 하고 그 범위를 모든 사람과 온 인류에게로 넓히셨다. 그리고 사랑만이 죄악과 죽음을 이겨내고 없앨 수 있음을 강조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은 추상적인 어떤 윤리가 아니라 세상 안에서 인류와 그리고 인류 역사와 맺는 올바른 관계를 말한다.


모든 사람을 네 몸처럼 아껴라.


인간집단을 올바른 인간사회로 만들려는 열망이 구약 성경 전체 밑바닥에 흐르고 있다. 특히 개인적인 복수를 억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18절), 공동체가 미움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음을 역설했다(17절). 어떻든,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항상 연대성을 기준으로 판단해야하는데, 그 이유는 그렇게 해야만 집단적 선익과 개인적 선익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라 했다(18절). 그렇게 하여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바라시는 거룩함이 실현된다(2절). 그 거룩함은 그냥 외적이고 문화적인 차원의 거룩함이 아니고, 하느님께 온전히 속한다는 뜻에서 말하는 거룩함이며, 형제자매인 모든 사람과 맺는 친교로 증명되고 표현되는 거룩함이다. 형제자매인 모든 사람과 맺는 친교의 정도가 하느님과 맺는 친교의 정도를 규정한다.  윤리적 판단의 기준은 어떤 추상적인 원리에서 나오지 않고, 사람 자신 안에서 그리고 형제자매인 모든 사람과 맺는 구체적인 관계 안에서 나온다.


원수를 사랑하여라


구약 시대에 점차로 발전되어온 사랑의 개념과 범위를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확정짓고 넓히신다. ‘산위에서 행하신 설교’에서 율법을 순전히 겉으로만 지켜서는 아무 쓸모가 없고, 아주 새로운 생활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율법 폐지를 주장하지 않고, 율법의 외형을 넘어서 그 내적인 깊은 요구를 채울 것을 바라신다. 그분은 사랑 속에 온갖 율법이 들어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 사랑의 범위를 인간성 자체에 기초를 두고 온 인류에게까지 넓히신다. 사람이라면 하나도 빼지 않고 사랑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온 세상의 모든 사람 하나하나에게까지 미치는 사랑이라야 그리스도다운 사랑이다.


원수에 대한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가르치고 실천하신 사랑의 핵심이다. 때리면 같이 때려주고, 싫어하면 같이 싫어지고, 미워하면 같이 미워지고, 무정하면 같이 헐뜯고 하는 것이 인지상정인가? 아니면 이해해주고 감싸주고 위로하고 참아주고 견디고 손해보고 용서하는 것이 더 아름답고 정말 사람다운 인정인가? 개인이나 소수 사람의 집단이 자기의 죄책감을 질식시키고 마비시킨 채 가난한 사람들의 인권을 여지없이 짓밟고 그들의 땀과 피와 생명을 빼앗아갈 때, 그들이 취해야 할 처신은 어떠해야 하는가? 


하느님의 소유인 재화와 능력을 자기 것인 양 거의 독점하고 욕심 사납게 소비하면서 또 계속 더 그러기 위해 군사력을 이용하여 경제적인 팽창주의와 패권주의를 강행하는 인정 없는 부자들과 부유한 나라들을 앞에 두고 수탈당하는 인류 대부분인 가난한 사람들이 취해야 할 처신은 어떠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의 답변은 “원수까지도 사랑하여라”이다. 소극적으로는 미움과 증오의 감정을 삭이고 폭력의 유혹을 뿌리치는 일이고, 적극적으로는 인정 없고 불의한 그들도 시공 안에 살아 있는 한 구원받아야 할 귀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근거하여 그들을 사람으로서 사랑하고 그들을 이기심의 마수에서 빼내라는 말씀이다. 그렇게 하는 방법은 그리스도답게 살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위력을 발휘하는 길밖에 없다. 세상의 죄를 대신 지고 없애는 어린 양이 되는 길 밖에 없다. 무작정 비굴하게 당하는 게 아니라 용기를 가지고 가난한 사람들이 자기네 권익을 되찾기 위해 투쟁하면서 그리스도처럼 생명을 바치는 길밖에 없다. 이때 목적은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불의한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돌아서게 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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