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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시선] “탄핵 기각과 인용은 하느님만이 아신다?”
  • 최진
  • 등록 2017-02-27 19:16:51
  • 수정 2017-02-28 10: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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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앞에 부끄럼 없는 판단 해 달라”


박근혜 대통령 취임 4주년인 25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다양한 집회가 열렸다. 노동자와 청년·농민·학생 등 시민단체들은 박근혜 정권 퇴진과 적폐청산을 염원했고, 보수단체들도 최대 규모의 집회를 열며 탄핵 기각을 외쳤다.


‘탄핵기각을위한국민총궐기운동본부’(이하 탄기국)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한문 앞에서 ‘제14차 탄핵기각 총궐기 국민대회’를 열고 ‘탄핵 기각’과 ‘특검 해체’ 등을 촉구했다. 


▲ 지난 25일, 탄기국은 대한문 앞에서 ‘제14차 탄핵기각 총궐기 국민대회’를 열고 ‘탄핵 기각’과 ‘특검 해체’ 등을 촉구했다. ⓒ 최진


주최 측은 이날 집회 참석인원을 300만 명이라고 주장했다. 참석자들은 서울광장과 대한문에서 숭례문까지의 600m 구간을 채웠다. 이들은 오후 5시께 민중총궐기 집회 현장을 찍은 도로영상과 태극기집회 영상을 비교하며, “태극기가 촛불을 이겼다”, “우리가 승리했다”며 촛불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박 대통령을 예수에 비유해 논란을 일으켰던 서석구 변호사는 이날 집회에서도 “탄핵 기각과 인용은 하느님만이 아신다. 그리고 하느님은 대한민국을 위기 때마다 구해주셨던 분이다”라며 “성경은 믿는 대로 이뤄진다고 적혀있는데, 우리가 탄핵기각을 믿는다면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 혼란을 틈타 빨갱이들이 침투해 나라가 공산화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다함께 기도하며 이 태극기집회를 이어가자.


▲ 서석구 변호사는 이날 집회에서도 “탄핵 기각과 인용은 하느님만이 아신다”며 “성경은 믿는 대로 이뤄진다고 적혀있는데, 우리가 탄핵기각을 믿는다면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일주일 전 같은 장소에서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여형구 신부는 서 변호사처럼 ‘애국발언’을 했다. 사회자는 “이제 우리에게 상상도 못하던 빛이 들어오고 있다. 좌파가 많기로 유명한 천주교에서 여형구 신부님이 오셨다”라며 여 신부를 소개했다.


여형구 신부는 태극기집회에 4번 정도 나왔는데, 천주교 신자들에게 들켜서 올라왔다며 감사의 인사로 발언을 시작했다. 신자에게 들켜서 올라왔지만 원고는 준비돼있었다. 그는 정의구현사제단을 언급하며 “천주교 사제들은 정구사 사제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많은 사제들이 정치‧사회에 참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집에만 있다”라고 소개했다.


여 신부는 정구사 사제들이 사사건건 나라에 잘못되는 상황에만 참여했고,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집권시기에는 가만히 있었음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훨씬 많은 사제들이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지금 이 태극기집회에 와있다고 주장했다.


▲ 지난 주 맞불집회에서 여형구 신부는 무대에 올라, “천주교 사제들은 정구사 사제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많은 사제들이 정치‧사회에 참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집에만 있다”라고 말했다. ⓒ 최진


그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나는 박사모 회원이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다 잘해서 이런 사태가 일어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깨끗하다는 것을 온 국민이 5분만 생각하면 안다”라며 “국회의원들은 이런 대통령을 정확한 결과물 없이 선동과 조직력을 사용해 탄핵부터 했다”고 평가했다. 


여 신부는 헌법재판소 판사들에게 “정말 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 어떤 것인지 하느님 앞에 조금도 부끄럼 없는 판단을 해주십사 청한다. 옳은 판단 해달라”고 당부했다. 


‘빛’이 되려면 광장을 향해야 


한편, 또 다른 100만의 시민들은 25일 촛불을 들고 광화문광장을 붉게 채웠다. 그리고 자신들의 삶을 유린하고 농단한 현 정권의 적폐를 고발하고 이를 함께 물리쳐나가자고 다짐했다. 


▲ 맞불집회가 열린 한편,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적폐 청산을 외치며 광화문광장을 가득 채웠다. ⓒ 최진


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광장에 나왔다. 그런데 이렇게 나눠져서 집회를 한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 집회를 하면서도 저들을 위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했다.


전주교구 송천동성당 이재진 씨는 “광화문에 와서 촛불을 들어서 너무 뿌듯하다. 국민의 의무를 한 것 같다”며 “국민을 향한 바른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 신앙인으로서 이를 위해 기도한다”고 말했다. 


송천동성당 한 청년은 “평소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싶었지만, 거리가 멀어서 못 나왔다. 이렇게 성당을 통해 참여할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다”며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열정의 삶을 사셨고,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 같다. 그 열정을 이룰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 박근혜 대통령 취임 4주년인 25일,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였다. ⓒ 최진


과연 여형구 신부의 주장처럼 정구사 사제들보다 훨씬 많은 사제들이 집에서 박근혜 정권을 응원하며 태극기집회에 마음을 보태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다만 여 신부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사제들이 집을 박차고 나와 촛불을 직접 들어야 할 판이다. 집에 있으면 꼼짝없이 박사모와 한 배를 탄 신세가 됐다. 


억울한 마음에 촛불집회를 나갈 결심이 섰다면 조심해야 한다. 신자들에게 들켜서 갑자기 발언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리 원고를 준비해두는 치밀함을 추천한다. 혹시 아는가. 주최 측으로부터 자신을 ‘빛’으로 소개받을 기회가 주어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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