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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역겹다, 정말 역겹다
  • 전순란
  • 등록 2017-03-01 11:09:38
  • 수정 2017-03-01 11: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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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27일 월요일, 맑음


“여보, 낙동강 물이 다 썩어 바닥의 민물조개들이 다 폐사를 했대!” “잘 됐네, 명박이 자기들이 뽑았잖아?” 내 대답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는 보스코. ‘그게 어디 잘 된 일이냐? 낙동강 물을 썩혀놓고선 우리 동네에 문정댐을 만들어 부산 사람들에게 식수로 보내겠다는 식인데? 저 아름다운 산, 용유담과 칠선계곡과 백무동이 물에 잠길 판인데? 천년고찰 실상사도 물속에 가라앉고?’ ‘우리가 지구의 끝에 있는 아마존 밀림이 사라지는 것도, 지구의 허파라는 아마존에서 나오는 공기로 인류가 살아간다고 밀림채벌에 가슴 아파하고 반대운동을 하는데?’


낙동강도 두어 시간만 가면 닿는 내 땅이고 내 강이기에 명박이가 한 일이 밉고 속상한거다. 박근혜도 마찬가지로 지금 탄핵이 기각되면 그녀가 국정을 계속 잘 들보리라고 생각하고서 저 늙은이들 태극기를 몸에 두르는 건지? 예전에야 순실이가 있어 연설문이라도 고쳐줬는데 이제는 그녀도 없고 ‘헌재의 최종 변론에 질문하면 어찌 대답할까?’ 그게 무서워 못나온 여자를 ‘우리 대통령’, ‘우리 영애님’, ‘우리 공주님’이라고 부르는 저 사람들 머리야말로 낙동강에 폐사한 조개가 아닐지? 특검 연장을 거부한 황교안도 그 무리에 든다. 


역겹다, 박-최순실 게이트가 시작하고, 탄핵정국이 되고, 헌재 재판이 벌어지는 동안, 박근혜, 청와대, 변호인단, ‘자유당’, 탄기국의 모든 언행이 상식적인 사람들에게 정말 역겹다. 탄핵에 찬성하는 국민 80%는 저 짓들에 구토를 느끼고 있을 게다. 오늘로 말싸움은 그쳤으니 일단 내 위장이 좀 가라앉지만…


오늘 강릉에 아들 보러 간 미루가 ‘탄기국’ 집회를 보고 ‘못 볼 것을 봤다’고 하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왜 우리나라 집회에 성조기가 등장하는가?’ ‘민족적 자긍심도 전혀 안 보이는 사람들에게 무슨 지성적 판단을 바라겠는가?’ 그래도 저 무리가 우리가 끌어안고 가야할 동족이기에 가슴이 아픈 거다. 태극기의 남용을 광복회마저 한탄했는데… 친일을, 친미를 거침없이 표방하면서 한반도의 운명은 아랑곳없어 보이는 늙은이들을…




오후에 말람씨가 전화를 했다. ‘오늘은 또 뭐야? 박근혜 헌재재판 기각에 만원 걸라고?’ 하면 ‘왜? 헌재에서 박근혜 파면 선고 나오는 거 싫어?’라고 하겠지. “오늘은 또 뭔 일?” 덕성여대에서 여대 뒷산 언덕배기에 있는 나무를 2000그루나 베었단다. 자기도 모르고 있었는데 총무과에서 ‘좀 봐달라’는 전화가 와서 무슨 얘긴가 동네에 물어 보고야 알았단다. 누군가 고발을 했다니 예전 같으면 전순란이나 김말람이 틀림없을 텐데, 전순란은 고맙게도 지리산으로 가고 없고 김말람만 남아 있으니 그니가 틀림없으려니 해서 그리로 전화를 했나보단다.


그런데 문제는 고발을 하면 검찰 출두도 해야 하는데 대답이라도 제대로 할 인물이 없어 대표로 내 이름을 넣겠다며 인터넷으로 서류를 감수하고 출두할 때는 올라오란다. 오늘부터 산림법 공부할 테니 나 보고도 찾아서 공부를 해 두란다. 공무원들이 하도 법망을 잘 빠져 나가니 일을 시작하려면 해당 법령을 공부하는 게 우리의 기본이다. 또 한 번 시작하면 이길 때까지 싸우는 게 우리의 기질이어서 밤낮 안 가리고 서로 전화를 한다. 이렇게 해서 우이동 40년을 지켜 왔기에 서울시나 구청에서 무슨 못된 짓을 하려면 ‘우이동에선 전순란과 김말람만 조용하면 된다’라는 말이 생겼다나…



오후 햇살이 따습다. 보스코는 배나무 손질을 하고 나는 그의 가까이, 그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거리에서 지난 가을에 진 국화와 금송화 대궁을 잘라내고 올라오는 꽃들을 정리 했다. 파슬리는 겨우내 파랗고, 지금은 야생 양귀비가 힘차게 자라난다. 매발톱도 해가 좋은 자리에서는 머지않아 꽃대를 올릴 듯하다.


겨울을 난 배추가 뽑힌 자리엔 하지감자 놓을 퇴비가 밭고랑마다 던져져 겨우내 농사지을 날을 기다리던 아줌마들의 발길이 봄보다 더 일찍 서두르나 싶다. 오후 내 밭일을 하고 해질녘에야 올라왔더니 겨울동안 놀고 쉬던 근육이 사방에서 아우성이다. 보스코는 저녁을 먹자마자 긴방 요 밑으로 몸을 뉘고 잠들어버렸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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