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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부활 제4주일 독서・복음 묵상
  • 김수복
  • 등록 2017-05-06 09:14:41
  • 수정 2017-05-07 10:4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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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사도 2,14ㄱ.36-41) 해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이 되게 하시고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베드로는 이 설교에서 주님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선언한다. 확고한 믿음이란 회개하고 악(사람에 대한 무관심과 미움)을 버리려는 굽힘 없는 의지를 뜻한다. 그 같은 믿음으로 우리는 적극적으로 하느님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으며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에게서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하느님의 성전이요 그리스도와 한 몸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거쳐 부활한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는 인류가 고대하는 메시아 즉 구세주이시다. 우리는 그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는다. 죄를 용서받는다는 말은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셨듯이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시편 (22) 해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이 시편은 착한 목자에 대한 시편이다. 제2독서와 복음의 내용이 미리 예고되고 있다.


이 시편은 착한 목자의 은혜로운 활동을 강조한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떼를 푸른 목장으로 인도하고 맑은 물가로 데려간다. 그의 지팡이가 그 양떼를 보호하고 인도하기 때문에 강도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하느님께서야말로 인류를 무한한 행복으로 인도하는 착한 목자이시다. 무한한 행복이란 물질적 풍요함까지도 포함한 행복 자체이신 하느님과 누리는 친교이다. 하느님과 친교를 누리는 것은 하느님의 성전이 된 사람들과 친교를 누림으로써만 얻을 수 있다. 


제2독서(1베드 2,20ㄴ-25) 해설

<예수님의 상처로 우리 병이 나았다>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수난한 착하신 목자 그리스도의 운명에 동참하여 정의로운 생활을 우리 자신부터 실천하라고 부르심을 받았다. 


진실을 외치는 사람은 흔히 박해를 받는다. 정의와 진리를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의 길은 수난과 십자가의 길이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운명이었고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따르려 하는 사람의 운명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의 소명이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인류가 단합하는 것은 그 희생 위에 이루어질 것이다.


복음(요한 10,1-10) 해설

<예수님께서는 인류가 고대하는 세상을 구원하는 목자이시다>


- 세상을 구해주실 메시아로 본 목자. 이스라엘 백성은 선정을 폈던 왕 목자 다윗을 대표적이고 이상적인 인물로 보았다. 에제키엘 이후(참조. 34장), 이스라엘 백성은 상처받은 양떼를 치유해주고 보호해 줄 구원자로서 목자를 기대했다.


- 착한 목자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당신이야말로 고대하던 목자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에 반대하는 사람은 누구도 그리스도의 양떼가 될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도 그리스도처럼 당신 양떼인 인류와 그 가운데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수난하고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그 양떼 속에 동화(同化)하지 않으면, 착한 목자의 구실을 할 수 없다.


묵상


목자이신 예수님과 목자들


오늘 첫째 독서에서 예수님을 ‘메시아(구세주)와 주님’으로 정의했고, 제2독서와 복음에서는 당신 양떼를 위하여 생명을 바치시는 착한 목자로 제시했다.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보호와 사랑과 인도로 인류는 기필코 생명을 찾아 얻을 것이다(같은 생명을 가진 사람들로서 하나가 될 것이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들이 예고한 메시아로서 하느님의 백성인 인류의 유일한 머리이고 유일한 인도자이시다. 교회가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삶을 이어가는 대변자 구실을 하려면 예수님의 길을 오늘에도 걸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그리스도께서 당신 양떼인 인류의 목자가 되실 것이다.


충실치 못한 목자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보면, 주님께서 당신 백성의 참된 목자로서 당신을 드러내신다. 이집트 탈출 때 주님께서 광야에서 당신 백성을 ‘양떼처럼’ 인도하신다(시편 78,52-53).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이사 40,11).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귀양살이로 벌하신 뒤에도, 안쓰러운 마음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샘물로 인도하고(이사 49,10), 흩어진 백성을 불러 모으고(56,8), 당신께로 오게 하신다(즈카 10,8).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아버지요 머리인 주님께서는 양떼를 당신 ‘종’들에게 맡기신다. ‘모세와 아론을 통하여’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인도했고(시편 77,20), 여호수아의 손을 통하여 인도했고(민수 27,15-20), 다윗을 통하여 당신 양떼를 인도하셨다(시편 78,70-72). 판관들을 통해서도 당신 양떼를 인도하셨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흔히 자기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여 주님의 손발 구실을 해내지 못했다. 그리하여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에제 34,8), 오히려 양떼를 흩어 놓았다(예레 23,1-2). 그 때문에 유일한 목자이신 주님께서 거듭 거듭 개입하고 빗나간 당신의 수족들에게 벌을 내리고(즈카 10,3. 13,7), 새로운 다윗, 메시아이신 예수께 당신의 권한을 모조리 위임하셨다(에제 34,23-24).


착한 목자는 자신을 바치는 목자이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목자이시다.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착한 목자에 대한 기대가 예수님 안에서 채워졌다. 그분은 ‘위대한 목자’이고(히브 13,20), 모세보다 훨씬 위대한 분이시다. 특히 요한 복음서는 그 분이 ‘유일한 목자’이시고(10,11 이하), 유일한 중계자로서 양떼가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문이라고 말한다(10,7. 9-10).


예수님께서는 당신 생명을 양떼를 위해 바쳤기 때문에 완전한 목자이시다(10,15. 17-18). 그분은 즈카르야가 예언한 대로 ‘상처를 받으셨을’ 뿐 아니라(즈카 13,7. 마태 26,31), 당신의 사람들인 인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인류가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게 하기 위해, 인류가 아버지의 한 자녀들로 서로 사랑하게 하기 위해 당신 생명을 자발적으로 바치셨다(요한 14,20. 15,10).



이렇게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종’과 동일시된다. 당신의 희생을 통해서 빗나가고 흩어진 당신의 양떼인 인류를 올바른 길로 들어서게 하신다(참조. 이사 53,6-7. 11-12).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신비체로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 오늘 이 시대에 당신의 양떼인 인류로 하여금 하느님 아버지의 같은 자녀로서 서로 위해주고 합심하도록 하기 위해 수난과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생명을 바쳐야 한다. 그리하여 압제자들을 감동하게 하고 돌아서게 하여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인류 대부분과 더불어 화해하고 단합하게 만들어야 한다. 생명을 바치는 그리스도인들의 희생이야말로 그리스도로 하여금 착한 목자로서 인류 안에 살아가시도록 할 것이다.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천대받는 고달픈 사람들, 나병환자, 소경, 벙어리, 귀머거리, 병자, 세리, 창녀들에게 온 마음을 쏟으셨고 그들과 같은 식탁에 앉고 잠자리를 함께 하셨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가 갈 길도 그 길이다. 소유를 제한하고 포기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가난한 나라들의 삶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동정을 베푸는 데 그치지 말고 함께 살고 운명을 나누어야 한다. 그리하면 인류는 얼마 안 있어 똑같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서로 위해주며 마음이 하나로 뭉칠 것이다.




부활 제4주일 독서·복음


제1독서(사도 2,14ㄱ.36-41)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이 되게 하시고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그때에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 목소리를 높여 그들에게 말하였다. “유다인들과 모든 예루살렘 주민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 말을 귀담아들으십시오. 그러므로 이스라엘 온 집안은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하며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형제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손들과 또 멀리 있는 모든 이들, 곧 주 우리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이에게 해당됩니다” 베드로는 이 밖에도 많은 증거를 들어 간곡히 이야기하며, “여러분은 이 타락한 세대로부터 자신을 구원하십시오” 하고 타일렀다. 베드로의 말을 받아들인 이들은 세례를 받았다. 그리하여 그날에 신자가 삼천 명가량 늘었다.


시편(22)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제2독서(1베드 2,20ㄴ-25)

<너희는 너희 목자께로 돌아왔다>


형제 여러분, 잘못을 저질러 매를 맞을 때에는, 견디어 낸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명예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선을 행하는데도 겪게 되는 고난을 견디어 내면, 그것은 하느님에게서 받는 은총입니다. 바로 이렇게 하라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시면서,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여러분에게 본보기를 남겨 주셨습니다. “그는 죄를 저지르지도 않았고 그의 입에는 아무런 거짓도 없었다” 그분께서는 모욕을 당하시면서도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위협하지 않으시고,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께 당신 자신을 맡기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상처로 여러분은 병이 나았습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양처럼 길을 잃고 헤매었지만, 이제는 여러분 영혼의 목자이시며 보호자이신 그분께 돌아왔습니다. 


복음(요한 10,1-10)

<나는 양 우리로 들어가는 문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난다.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필진정보]
김수복 :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10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고, 그 동안 서울 가톨릭 신학대학 6년을 수료했다. 40년 동안 5개 언어에서 성서와 신학 관련 서적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노동자였다. 현재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둘, 손자 넷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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