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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성당은 관광객에게 내주고 미사는 지하경당에서 숨어서 한다면…
  • 전순란
  • 등록 2017-08-09 10: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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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6일 일요일, 맑음


매달 첫주 일요일은 거의 모든 박물관과 관광지가 공짜란다. 바르셀로나 대부분 명소가 입장료가 족히 10유로가 되니 다리품만 열심히 팔면 구경도 하고 돈도 10만원쯤 벌겠다는 욕심에 부지런히 움직였는데도 집에서 나서는데 10시가 넘었다. 아침 2시에 자고 8시 반에 일어나니 벌써 스페인사람 다 됐다.


‘카탈루냐 국립미술관’을 찾아 서울집 뒷산쯤 되는 몽주이(Montjuic)산으로 궤도열차를 타고 올랐다. 산중턱에 내려 왕복 12유로 하는 비싼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올라보니 우리가 찾아간 박물관은 없고 세기에 걸쳐 아라공 왕국의 카탈류냐를 지켜온 거대한 산성(Castell de Montjuic)이 있었다. 입장료가 무료여서 둘러보았다. 우리가 여태까지 본 가장 견고한 전쟁요새였다. 늘 처절한 유혈전쟁을 치러온 성채 마당에서는 ‘전쟁과 폭력으로 뭘 얻겠느냐?’는 구호를 만국기처럼 펼치는 평화운동을 하고 있지만 네 귀퉁이에 설치된 대형 방사포들을 보면 오늘도 전세계에서 미국의 주도하에 펼쳐지는 전쟁의 소용돌이만 보인다.





그 성곽 위에서는 바르셀로나가 한눈에 들어왔고 저 멀리 성가정성당이 우뚝 서있고 가까이로는 왕궁(Palau Nacional)이던 국립박물관이 위용도 거창하게 버티고 있었다. 한쪽으로는 바다가 펼쳐지고 공단지역이 펼쳐지며 스페인 최대항구와 머얼리 모래펄이 길게 펼쳐진 해수욕장이 보인다. 저녁이면 불어오던 시원한 바람이 알고보니 저 바다에서 포세이돈이 옷자락을 펄럭인 위력이었다.


성곽에서 내려와 150번 버스를 타고 국립박물관을 가는 길, 신혼여행을 온 젊은 한국인 커플을 만났는데 성곽에서 소매치기를 당해 카드랑 현금이랑 다 잃어버리고 버스표만 달랑 남아 호텔로 돌아가는 길이란다. ‘카드를 막고’ ‘경찰서에 가서 도난신고를 먼저 하라’고 선배답게 일러주고서, “여행자 보험을 들었다니 보상을 받을 것이니 너무 염려는 말라” “둘이서 갓 시작한 인생, 그보다 더 기막힌 일이 무수히 일어날 테지만 그게 다 끝이 아니고 또 다른 삶이 펼쳐지니 절망하지 말라”는 훈계도 하고, “우선 신혼을 축하하는 뜻으로 주는 돈이니 당장 필요를 감당하라”면서 100유로를 건네주고 헤어졌다. 연락처라도 알아뒀으면 전화라도 해서 구체적으로 돕는 건데… 저녁이 되니 그들이 더 걱정스럽고 어제 잡아 넘긴 루마니아인 소매치기에게 품었던 동정심이 싹 가신다.


에스파냐 광장에서 올려다본 박물관



옛 궁전에 설치된 국립박물관(Museu Nacional d'Art de Catalunya)의 중세와 근세 그리고 현대 카탈류냐 미술의 진수를 감상하다 가우디가 만든 크고 작은 가구들도 보았다. 주교황청 한국대사관저에 살 때였다. 피카소와 쌍벽을 이룬다는 이탈리아화가 데키리코의 저택이어서 그 화가가 손수 제작하고 간단한 그림까지 그린 가구들이 집안을 가득 채웠는데 미술적 안목 하나는 기막힌 대한민국 외교관들이 한 트럭 분량의 가구를 마당에 끌어내 도끼로 패서 불태워버리고 한국에서 리바트가구를 새로 들여놓았다던 기막힌 사연이 떠오른다. 로마 스페인광장에 있는 데키리코 박물관에 가보니 우리집에서 태우다 남은 몇 개의 가구와 똑같은 가구들이 신주단지처럼 기막히게 잘 모셔져 있었다!




오후에는 어렵사리 ‘피카소박물관’(Museu de Picasso)엘 찾아갔더니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입장불가란다. 바로 그 옆에 ‘민속박물관’(Museu de Cultures del Mon)에서 몸을 식히며 위대한 스페인 제국이 남아메리카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탈취해 온 문화재들을 구경하였다. 한국 민속작품이라며 도자기 몇 개가 전부인 것도 우리 문화가 미약하다는 것인지 그래도 스페인에 탈취당한 문화재가 없어서 다행이란 말인지 잘 모르겠다.


민속박물관 '생각하는 사람들'



‘바르셀로나 대성당’(Catedral) 을 방문을 하고 주일미사에 다시 참석했다. 조명을 밝히고 성당본유의 기능을 하는 자리에서 성당 내부를 감상하기 위함이었다. 어제 ‘사그라다 파밀리아’처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성당을 지어놓고 하루 종일 관광객에게 개방하여 돈을 벌고 성당을 지은 본업인 미사는 지하경당에 숨어서 하듯 거행하던 광경은 ‘교회가 박물관 미이라로 변한지 오래다!’고 한탄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우려를 실감케 했다.




9시쯤 숙소로 돌아와 문밖에 가득한 보행자거리의 식당가에서 핀쵸(pincho 또는pintxo)라는 ‘점심(點心)’에 가까운 지역 특유의 식사를 했다. 한 점에 1유로나 1.5유로 하는 것을 서너 조각 먹고 나니 배가 불렀다. 누구나 눈치 보지 않고 행복해지는 스페인다운 저녁이다.


우리 큰아들은 장인장모 모시고 ‘공장 콘베이어 벨트에 물건실어 나르는 듯’ 두 아들과 다섯 조카를 인솔하는 여행을 마치고 오늘 제네바 집으로 돌아오니까 시아 시아 두 놈이 ‘아! 우리집이다. 이제 살 만하다!’는 탄성을 지르더라나? 작은아들도 한국에서 도착한 회원들을 모시고 열흘째 ‘살레시오 영성관광’을 오늘 마쳤나보다. 유럽의 여름은 분주한 관광의 계절이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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