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가 19일 오후 7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평화콘서트에서 “평화를 이루기 위해 ‘원초적 적대감’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평화콘서트는 ‘똑똑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가볍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인 ‘똑똑’을 통해 평화의 문을 열자는 취지다. 직접적으로는 베트남의 문을 두드리는 의미고 포괄적으로는 평화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똑똑’해지는 의미를 담았다.
‘똑똑콘서트’는 강 주교가 대표이사로 있는 한베평화재단이 주최했다. 한베평화재단은 베트남 전쟁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해 한국과 베트남이 겪은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태동했다. 이들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인권 증진과 상생을 통해 평화의 미래를 만들어가자는 뜻을 세우고 지난해부터 활동하고 있다.
먼저, 강우일 주교는 평화콘서트를 시작하면서 강정마을 주민들에 대한 마음을 밝혔다. 가족처럼 지내던 마을 주민들이 해군기지 건설로 서로를 불신하게 되는 깊은 상처를 입었다며, 해군기지를 막아내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다.
가난한 교회, 작은이들의 고통에 함께 하는 것
본격적인 평화콘서트에 들어가기에 앞서 강 주교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는 물질적으로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늘 빼앗기고 살아가는 가장 작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교회”라며 “이들의 아픔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그 아픔에서 해방될 방법을 함께 추구하는 것이 가난한 이들의 교회다”고 짚었다.
가톨릭교회가 시대의 아픔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해 관찰자로만 머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강 주교는 제주 4·3사건의 비극을 공감하게 되면서 베트남 비극이 더 민감하게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군과 경찰이 자국민을 도륙한 사건을 도민들에게 직접 들으며 ‘어떻게 국가가 국민을 요절할 수 있는가’하며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베트남전도 상황이 같았다. 아무리 전쟁터라지만 저항할 수조차 없는 젖먹이까지 총칼로 도륙을 하는 것은 정말 몹쓸 짓 아닌가.
무력이 없으면 평화를 이룰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강 주교는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한반도에서도 미사일이 하늘로 오르고 있다. 하지만 인류의 집단지성은 전쟁이 인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더욱 깨닫고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1·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는 생명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히 깨달았고, 산업혁명 이후 인권선언이 나온 것처럼 미국과 중국도 (인류의 집단지성이 평화를 향하는 속에서) 쉽사리 전쟁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화를 이루는 방법으로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원초적 적의를 없애는 것’을 제안했다. 서로에 대한 적대감이 남아있다면 남북통일이 이뤄진다 해도 다시 분열하고 선을 그으며 분쟁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원초적 적대감 깨트려야 평화 찾아와
북한과 공산주의만 나오면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상대를 제거할 수 있다는 논리는 원초적인 적의가 밑바탕에 있다. 상대가 공산정권 안에서 수십 년을 살았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누군가의 부모고 자식이다. 적대감을 깨지 못하면 분쟁은 사라지지 않는다.
끝으로 강 주교는 자신의 삶을 희생해 국가가 저지른 범죄를 갚음 하려고 노력하는 한베평화재단의 노력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자신은 대표이사라는 자격에는 부족하지만, 평화를 위한 노력에 조금이나마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자리했다고도 했다.
특히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평화를 위한 의지와 행동력이 있는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한베평화재단이 출범한 지 1년이 됐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라, 인원과 재정이 부족하다. 주변 친구들에게 한베평화재단의 일을 전해주고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한베평화재단은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이 저지른 비극의 역사를 사과하면서 출발해, 한국-베트남 간의 평화 교류의 물꼬를 텄다. 베트남 파병을 ‘경제발전’과 ‘애국’의 논리로 덮으려는 세력에 맞서 눈물과 아픔에 공감하고 서로 힘을 모아 상처의 기억을 딛고 일어서는 길로 나아가고자 한다.
한편, 평화콘서트가 열린 교육회관 산다미아노 카페에는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에 대한 사진전 ‘한 마을 이야기-퐁니·퐁넛’도 열리고 있다. 고경태 작가는 1968년 2월 12일 베트남 꽝남성과 퐁니, 퐁넛에서 일어난 참혹의 역사를 18년간의 기록전으로 담아내고 있다. 기록전은 24일까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