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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연중 제31주일 독서・복음 묵상
  • 김수복
  • 등록 2017-11-03 12:2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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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말라 1,14ㄴ-2.2ㄴ.8-10) 해설

<너희는 바른 길을 떠나 법을 어겼다>


고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선택된 백성은 풀어지고 게을러졌다. 이에 말라키가 공격을 퍼붓는다. 율법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따르지도 않는다고 공박하고 단죄한다.


주님께서 야곱을 총애하셨음을 논한 다음(1,1-5), 그리고 눈멀고 병든 짐승을 잡아 바친다고 회되게 꾸짖고, 온 땅 위에서 순수한 봉헌이 바쳐질 때가 오리라 예고한 다음(1,6-12), 오늘 독서 대목에서는 레위의 계약을 깨뜨린 예루살렘의 고위 성직자들을 단죄한다.


그들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2,2), 그릇된 길에 들어서고, 다른 많은 사람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며(2,8ㄱ), 자기의 그릇된 개인 의견을 교리에 끼워 넣는다. 그러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계약을 깨겠다고 위협하고, 그들을 성전에서 내쫓고, 백성 보는 앞에서 수치를 당하게 하겠다고 위협하신다.


시편(130) 해설

저는 어미 품에 안긴 젖 뗀 아기 같습니다


이 시편은 서정에 넘친다. 마치 어미 품에 안겨 있는 어린 아기, 젖 떨어진 아기처럼 안심하고 평온하게 신뢰하는 자세를 노래한다. 그 어떠한 곤경과 난관에 부딪쳐도 그런 어린 아기처럼 하느님께 신뢰하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하느님의 자애로우신 섭리에 자신을 전적으로 내맡긴다. 그런 사람은 주님만을 바라고 살며, 큰일을 하여 남 앞에 자신을 뽐내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다.


제2독서(1테살 2,7ㄴ-9.13) 해설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동안 밤낮으로 노동을 했습니다>


바오로와 실라스가 갇혀 있는 동안(사도 16,39-40), 그들을 해치려는 사람들은 사도의 명예를 헐뜯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한 번 심어진 말씀은 결실을 맺어갔다.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의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 지방의 모든 신자들에게 모범이 될 정도임을 칭찬하고 주님께 감사드린다(1장).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는 마지막으로 자기의 입장과 처신을 적극 설명한다. 자기는 당시 히브리 스승들과는 대조적으로 설교하면서도 직접 노동으로 밥벌이를 했다고 털어 놓는다.


바오로는 자기의 심정을 드러내 보이면서, 마치 자기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처럼 테살로니카 신자들을 부드럽게 대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복음을 입으로만 설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참된 선익을 위해서라면 생명까지 바치고 싶다고 말한다.


이상과 같은 자기 변론을 마치면서 바오로는 그들이 자기가 전한 말씀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음을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복음(마태 23,1-12) 해설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충돌하고 논쟁을 벌이면서, 그들의 말에도 참된 것이 있음을 인정하신다. 그들이 위대한 입법자 모세의 이름으로 옳게 말하고 가르치는 것은 마땅히 따라야 하지만, 그들의 거짓되고 위선에 찬 행동은 본받지 말라고 하신다(1-3절).


사실 그들은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라고 하면서, 그 정신을 보지 못했다. 바리사이들은 신심 깊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율법을 세세하게 분석하여 준수하라고 힘겹고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었다(4절).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뻔뻔스러운 허영의 탈을 벗기신다. 그들은 남에게 보이기 위하여 행동하고, 율법을 착실히 지킨다고 뽐내면서 이마나 팔에 성구 넣는 갑을 크게 만들어 매달고 다니고 웃단에는 길다란 술을 달고 다니며 거드름을 피우고, 잔치 집에서 윗자리에 앉으려고 하고, 길거리에서 스승으로 인사받기를 바란다.



둘째 부분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모든 권위가 오직 하느님으로부터만 나온다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스스로 스승이라 내세워서는 안 된다. 유일하고 참된 지도자는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8-10절).


끝으로 가르치는 권위는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그들에게 몸 바치기 위한 권위이고, 길을 비추어 주기 위한 권위이다. 교회의 어떤 지도자도 자기의 개인 잘못과 오류를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라고 속여서는 안 된다. 과거 교회사의 잘못과 현재 교회 현실과 실천의 잘못된 점은 항상 솔직히 시인하고 바꿔야 한다.


묵상


너희 스승은 오직 한 분 그리스도이시다


말라기 예언자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레위의 계약은 레위 지파에게 하느님을 찬양하는 일과 백성을 가르치는 일을 맡겼다. “판결 가슴받이 안에는 우림과 툼밈을 넣어, 아론이 주님 앞으로 들어갈 때, 그것을 가슴에 달게 하여라. 이렇게 아론은 늘 주님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한 판결 도구를 가슴에 지녀야 한다.”(탈출 28,30)


그러나 흔히 사제들은 자기네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주님께서는 사제들에 대한 축복을 도리어 저주로 바꾸셔야 했다.


하느님의 말씀은 늘 현실을 파헤치는 말씀으로서 우리의 개인생활과 공동생활을 문제 삼고 또 위기에 놓이게 하고 기로에 놓이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사로 그리스도인들을 ‘사제들의 백성’으로 창조하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을 찬양하고 세상에 말씀을 선포할 책임을 지게 된 것이다.


교회는 구원하는 공동체이다. 그러나 주님의 구원을 가져다 줘야지, 엉뚱한 거짓 구원을 가져다주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죽음을 향하여 나아가는 공동체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생명이 나왔듯이, 교회의 죽음에서 생명이 나오기 때문이다. 교회는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구원을 선포하기 위해서라면, 자기의 안전까지 포기해야 한다. 교회는 자기가 저지른 죄악과 자기의 비참함을 스스로 인정하는 데 두려움을 갖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의 희망 역시 주님의 자비와 용서하시는 사랑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바오로의 편지에서도 교회가 자기 불완전함과 한계와 잘못을 항상 뉘우치고 바른 길로 돌아서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러는 가운데 교회는 어머니가 자기 아기를 위해서라면 생명까지도 바치듯이, 세상과 인류를 위해서 생명까지 바쳐야 한다.


사도직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생활은 무슨 별난 생활이 아니다. 매순간, 어떠한 상황에서나 복음을 실천으로 선포하면서도, 뒤를 돌아보거나 타협함이 없이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생활을 기대하신다.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전파하는 데 시간을 조금 내는 정도의 사도가 아니라, 몸과 마음, 말과 행동, 자기 생활 전체로 주님께서 맡기신 복음을 깊이 생활화하여 선포해야 하는 사도이다. 사도직 활동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주 예수님을 본받아 자기의 생명을 바쳐서라도 복음을 전파하는 열렬한 사도가 되어야 한다. 세상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발견할 줄 아는 사도가 되어야 한다.


세상 안에 하느님께서 활동하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금까지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사랑의 실현을 위해 한 일이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질책하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혹시 우리 자신이 아닌가? 세상에 하느님의 생명을 전달할 책임을 과연 다 하고 있는가?


우리는 마치 우리 자신이 마치 하느님을 대신하고 있는 양 처신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자신이 나약하고 약점 투성이임을 인정하고, 오로지 하느님의 능력만 드러나도록 할 일이다. 모든 사람이 우리 신자들의 겸허함을 보면, 안심하고 친근감을 느끼고 공동의식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는 잘 아는 체, 선생인 체 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과 주님의 성령만이 하느님을 알고, 당신이 원하는 사람에게 하느님을 알게 하실 뿐이다. 복음 선포는 지식의 전달이 아니다. 복음을 따라 사는 생활실천을 보고 감동스런 체험으로 하느님의 진리와 성령께서 전달되는 것이다.




연중 제31주일 독서・복음


제1독서(말라 1,14ㄴ-2.2ㄴ.8-10)

<너희는 바른 길을 떠나 법을 어겼다>


자기 짐승 가운데 수컷이 있어서, 그것을 바치기로 맹세하고서는, 주님에게 흠 있는 것을 바치며 속이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정녕 나는 위대한 임금이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민족들은 나의 이름을 경외한다. 너희가 말을 듣지 않고, 명심하여 내 이름에 영광을 돌리지 않으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리고 너희의 축복을 저주로 바꾸어 버리겠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사실 나는 이미 너희의 축복을 저주로 바꾸어 버렸다. 너희가 명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는 길에서 벗어나 너희의 법으로 많은 이를 넘어지게 하였다. 너희는 레위의 계약을 깨뜨렸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러므로 나도 너희가 온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게 하리라. 너희는 나의 길을 지키지 않고 법을 공평하게 적용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의 아버지는 한 분이 아니시냐?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지 않으셨느냐?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는 서로 배신하며 우리 조상들의 계약을 더럽히는가? 


시편(130)

주님, 저의 영혼을 평화로 지켜 주소서


제2독서(1테살 2,7ㄴ-9.13)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동안 밤낮으로 노동을 했습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위엄 있게 처신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에서, 자녀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처럼 온화하게 처신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여러분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과 함께 나눌 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위하여 우리 자신까지 바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그토록 우리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의 수고와 고생을 잘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선포하였습니다.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복음(마태 23,1-12)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필진정보]
김수복 :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10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고, 그 동안 서울 가톨릭 신학대학 6년을 수료했다. 40년 동안 5개 언어에서 성서와 신학 관련 서적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노동자였다. 현재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둘, 손자 넷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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