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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지요하] 1987년의 KAL858기 폭파 조작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2
  • 지요하
  • 등록 2017-11-07 12: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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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국 신부가 KAL858기 폭파사건 진실 규명 작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때는 2003년이다. 그 후 국정원으로부터 직접적인 협박도 받았고, 교회 내부의 압력도 감내해야 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활동을 계속할 때 예상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 교회에서 돌연 그를 해외(미국)로 발령을 낸 것이다. 이 사실에서 나는 ‘빛과 소금’인 교회의 사명과 역할에 대해 깊은 의구심을 갖는다. 


그는 미국을 거쳐 캐나다에 3년째 체류하고 있었는데, 외국에 나가 있으면서도 KAL858기 폭파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한 활동을 계속했고, 외국에 나가 있는 덕분에 새로운 차원의 진상규명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인터넷 매체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올린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건 진상규명 활동에 결정적인 큰 소득과 반전의 계기를 꼽는다면, 2007년 10월에 법원의 정보공개 청구에서 승소하여 ‘KAL858기 사건’ 관련 수사기록 및 재판기록, 김현희 진술서 등을 확보한 ‘사건’을 들 수 있다. 사건 발생 20년간 수사기관이 공개하지 않은 수사 관련 자료들을 입수한 후 사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분석 작업을 거치면서 안기부와 검찰의 숱한 거짓들을 낱낱이 확인할 수 있었다.”


천주교 사제의 의로운 싸움


▲ 2010년경 김현희의 모습


신성국 신부는 내게 <김현희 신상 털기>라는 큰 글 꾸러미를 보내면서 그해가 KAL858기 폭파사건 25주년임을 말하고, 국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에 일조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래서 나는 신 신부님과 여러 가지 의견을 나누었다.


그러던 차에 문제의 가짜 인물 김현희가 그해 11월 18일 밤 ‘TV조선’의 토크쇼 ‘시사토크 판’에 출연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사실을 접한 신 신부는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서도 KAL858기의 ‘진실’을 찾아 사투를 벌이며 살아온 천주교 신부의 운명과 진실 뒤에 숨어버린 의혹의 여인 김현희와의 숨바꼭질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스스로 확인했다. 


그는 김현희 방송 출연이 한편으로는 씁쓸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하늘이 주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김현희의 ‘TV조선’ 출연 동기와 내용들이 대선 정국과 맞물려 공안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생겼지만 무엇보다도 ‘KAL858기 폭파사건’의 진실 규명을 위한 사회적 관심의 기회로 삼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그리하여 그는 그해 11월 21일부터 천주교의 대안 언론매체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1987년의 KAL858기 폭파사건의 진상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글을 연재 형식으로 올리기 시작했다. 우선은 자신의 심경을 밝히는 ‘서론’격의 글을 올리면서 김현희에 대해 유족과의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이번처럼 특정 방송사 ‘시사토크’ 프로에 김현희씨 혼자 출연하여 일방적으로 ‘KAL858기 사건’ 이야기를 하는 것은 국민들이 기대하는 진실의 목마름과 욕구를 채워줄 수 없다. 오히려 불신과 의혹만 증폭시키는 역효과만 가져올 뿐이다. 25주기의 특별한 의미를 살리고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 진정한 화해를 이루는 자리가 되기 위해서는 공개석상에서 먼저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만나서 진심으로 대화하고 진실의 실체를 찾아 궁극적으로 화해하는 자리가 마련되어야 김현희씨가 약속한대로 KAL858기 가족들을 돕는 사랑이 실현되는 것이다.”


‘두더지’ 김현희와의 숨바꼭질


▲ 2005년 10월 14일 북한 묘향산에서 신성국 신부와 함께


그러나 김현희가 유족들과 신성국 신부의 공개토론 제의를 수용하지 않을 것은 빤한 일이었다. 자신이 ‘가짜’임을 증명하는 자리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김현희가 끝내 유족들의 공개토론 제의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TV조선’만이라도 유족들과 신성국 신부를 출연시키는 용단을 내려야 했다. 김현희에게 할애한 시간만큼 유족들에게도 반론의 기회를 주어야 형평이 맞는 일이다. 하지만 '조선‘의 속성상 그것은 지금도 가능치가 않아 보인다. 


김현희의 느닷없는 ‘TV조선’ 출연에 대해 당시 많은 이들이 의구심의 눈길을 보냈다. 한창 수구 족벌언론과 수구세력이 불을 지피고 있는 ‘종북 논란’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2012년의 제18대 대선 정국을 앞두고 그들이 종북 논란에 불을 지피는 것은 나름대로의 계산이 깔린 일이었다. 종북 논란에다가 1987년의 KAL858기 사건을 얹으면 어떤 큰 효과가 있으리라는 계산일 터였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25년 전으로 되돌아가려는 퇴행적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었다. 오늘이 1980년대 후반인 걸로 착각하는 것 같았다. KAL858기 사건을 만들어 일시에 선거 판세를 역전시키고 200만 표 차이로 압승을 거둔 그 시절에 대한 향수에 젖어 있음이 분명했다. 


물론 그때로부터 25년(현재는 30년) 사반세기가 흐른 지금도 일정 부분 그 계산이 통할 수 있는 여지는 있다. 대중이 민중으로 온전히 승화되지 못한 구석이 엄존하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KAL858기 폭파 사건의 성격은 단순하지 않다. 진실과 거짓, 정의와 불의의 대결선이 분명해지는 것만큼 국민들에게 ‘자각의 길’은 더욱 크게 확대될 것이다. 


그것이 KAL858기 폭파사건의 유족들과 신성국 신부를 비롯하여 진실과 정의의 눈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진정한 바람일 것이다.   


신성국 신부는 현재 1987년의 KAL858기 폭파 조작사건의 전모를 낱낱이 적시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연재하고 있다. SNS를 상용하는 수많은 독자들이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필진정보]
지요하 : 1948년 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추상의 늪>이, <소설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정려문>이 당선되어 등단함. 지금까지 100여 편의 소설 작품을 발표했고, 15권의 저서를 출간했음. 충남문학상, 충남문화상, 대전일보문화대상 등 수상. 지역잡지 <갯마을>, 지역신문 <새너울>을 창간하여 편집주간과 논설주간으로 일한 바 있고, 향토문학지 <흙빛문학>과 <태안문학>, 소설전문지 <소설충청>을 창간함. 공주영상정보대학 문창과 외래교수, 한국문인협회 초대 태안지부장, 한국예총 초대 태안지회장, 태안성당 총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충남소설가협회 회장,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공동대표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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