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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연중 제32주일 독서・복음 묵상
  • 김수복
  • 등록 2017-11-10 18:5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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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지혜 6,12-16) 해설

<지혜를 따라서 사는 사람>


지혜를 추구한다는 명제는 비단 성경 문학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고대 동방의 모든 문화권에 공통된 명제였다.


그러나 성경의 맥락에서는, 지혜가 단순히 사람이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다. 성경의 지혜는 하느님의 선물로서, 그 지혜를 받은 사람은 온갖 사물과 사건과 현실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게 되며, 선악을 가려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지혜서의 저자는 지혜를 예찬하는 가운데, 지혜를 찾아 얻고 터득하기가 지극히 어려운 것이 결코 아니라, 지혜는 올바르게 사는 사람에게 가까이 있고, 그런 사람을 찾아다니고, 문간에 와서 앉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품게 되는 영원한 희망은 보잘 것 없는 사람 자신의 노력에서 비롯되지 않고, 죄스런 사람을 먼저 몸소 찾아나서는 자애로우신 하느님에게서 비롯된다. 사람은 그 하느님의 지혜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 영원한 구원을 받으리라는 희망을 품은 사람에게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한다.


시편(62) 해설

하느님, 당신은 저의 하느님, 

저는 당신을 찾습니다


지혜의 말씀을 들은 회중은 시편작가의 하느님께 대한 갈망을 자기의 것으로 삼는다. 하느님께서 지혜에 대한 갈증을 풀어 주시고 우리를 다시 살아나게 하실 것이다.


오늘 우리의 갈망은 사람들에게 전달된 새로운 생명의 원천이신 그리스도께로 향한다.


제2독서(1테살 4,13-18) 해설

<예수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은 생명의 나라로 들어갈 것이다>


바오로는 이미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말한 바 있다(1테살 1,9-10). 다시 오실 그리스도께 대한 기다림이 그리스도인들의 믿음과 희망에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할 행운을 받았다. 이 희망이야말로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참으면서 용기를 잃지 않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테살로니카 신자들의 머릿속에는, 자기네가 살아 있는 동안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그 기대가 허사로 돌아가자, 주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확신이 흔들렸다.


이에 바오로는 죽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못 보았다 해서 슬퍼하지 말라고 격려한다. 이미 죽은 사람들이 오히려 먼저 살아나서 주님을 뵈리라고 말한다.


인류의 역사는 순환하는 역사가 아니라, 정확한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역사이다. 그 정점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 인류가 지상의 역사를 마무리하고 하느님과 결정적으로 만나 아주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는 시점을 가리킨다.


복음(마태 25,1-13) 해설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갔다>


이 비유에서는 세 가지 요소를 들 수 있다. 

- 신랑이 지체한다. 

- 신랑이 도착한 시각에 준비하고 기다리던 일부 처녀들만 마중을 나가고, 나머지는 허둥댄다.

- 마중나간 처녀들만 혼인 자치에 들어가고 문이 닫힌다. 그 처녀들은 신부의 친구들이다.


이 비유는 그리스도의 결정적인 재림이 흔히 생각하듯 그렇게 당장 오지는 않을 것임을 강조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늘 준비하고 있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위험한 것은 조급한 마음으로 재림을 기다리다가 실망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재림을 기다리면서도, 현세생활을 소홀히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현세생활에서 도망치는 구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현세생활과 인류사회를 하느님사랑에 기초를 둔 사람사랑이 다스리게 되는 그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어 인류역사를 새로운 차원으로 건너가게 하실 것이다.


묵상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재림을 기다리는 일


전례주년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 주일전례는 최종실재에 주의를 집중하고 있다. 오늘 독서들에서도 장차 그리스도를 다시 만날 사실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마지막으로 절정에 도달하는 현실이 될 것이다. 두 가지 면이 특히 도드라지고 있다. 재림 때에 그리스도와 만나는 현실과 각 사람이 죽는 순간에 그리스도를 만나는 현실이다.


열 명의 처녀 비유는 깨어 기다려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항상 오고 계시고, 마지막 날에 결정적으로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알게 해 주는 깨어 있는 지혜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기다림이 초대 공동체의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유념하는 일도 유익할 것이다. 그 기다림이 초대 공동체에 생기와 열정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기다림이 당장 채워지지 않아서 초대 교회가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물론 재림이 지연되고 있는 사실 때문에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기운이 빠지고 일시 허탈감에 사로잡혔음이 사실이다. 열 처녀 비유는 바로 그런 허탈감을 치유하고, 주님의 재림을 더욱 열심히 준비하도록 격려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허탈감과 실망에 빠지고 자포자기하는 위험성의 극적인 성격이 그 비유의 결론에서 위협적인 어조를 띠고 있다. “문은 닫혔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와 똑같은 생각이 마태오 복음서의 다른 대목에도 나온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7,22-23)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함은, 세상 창조와 더불어 오기 시작한 하느님의 말씀인 그분이 이천년 전 역사의 한 시점을 택하여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어 이미 오셨음을 뜻한다. 또한 가장 완전한 사람으로서 일생을 살고(하느님의 가장 사랑하시는 외아들로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인류의 화해와 일치의 구원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고), 하느님 아버지께서 그분을 부활하게 하여 모든 사람의 주님이 되게 하심으로써 새롭게 획기적으로 오셨음을 뜻한다. 그 다음에는 성령을 통하여 세상 마칠 때까지 인류에게 오고 계시고, 인류와 함께 계시며, 인류가 화해와 친교와 일치의 구원을 당신이 의도한 대로 완전히 받게 되는 날 결정적으로 다시 와서 친교로 뭉친 인류가족을 영원한 당신의 나라(혼인잔치)에로 건너가게 하심을 뜻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주여 어서 오소서.”라는 간절한 염원으로 지금 이 자리(현실)에서 주님의 나라가 오도록, 다시 말하면 사람관계와 인류사회가 그리스도께서 제시하신 사람존중과 사람사랑의 원리에 따르기 위하여 생명을 바치기까지 최선을 다하도록 재촉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이야말로 우리의 섬김과 바침을 의미 있게 해주고, 더욱 열정에 불탈 수 있도록 해주는 촉진제가 된다.


죽음은 그리스도와 얼굴을 마주보는 사건이다


마지막 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 인류가족이 하느님의 영원한 나라로 건너감이 사실임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개인적으로 우선 죽을 때 그리스도와 만나게 됨이 사실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새로운 아담(사람)으로서, 새로운 인류의 머리로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당신의 죽음 속에 모든 사람을 포함시키셨다. 따라서 어떤 의미로 모든 사람은 그의 죽음 안에서 죽는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아난다 함은 이기심과 불의에 죽고 정의와 사랑으로 사는 것을 뜻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죽는 순간에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고 하느님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리스도처럼 인류 안에 정의와 사랑을 실현하려는 염원으로 살았는지, 얼마만큼 사람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지니고 살았는지를 셈 바치게 된다.


죽음을 이렇게 받아들일 때, 우리는 늘 긴박감과 긴장감에 사로 잡혀 살 수 밖에 없다. 매사와 매 순간, 생애 전체가 그 만남과 셈 바침의 준비임을 명심할 때, 더욱 활기차고 보람찬 생애가 펼쳐질 것이다.



연중 제32주일 독서·복음


제1독서(지혜 6,12-16)

<지혜를 따라서 사는 사람>


지혜는 바라지 않고 늘 빛이 나서 그를 사랑하는 이들은 쉽게 알아보고 그를 찾는 이들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지혜는 자기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미리 다가가 자기를 알아보게 해 준다. 지혜를 찾으러 일찍 일어나는 이는 수고할 필요도 없이 자기 집 문간에 앉아 있는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 지혜를 깊이 생각하는 것 자체가 완전한 예지다. 지혜를 얻으려고 깨어 있는 이는 곧바로 근심이 없어진다. 지혜는 자기에게 맞갖은 이들을 스스로 찾아 돌아다니고 그들이 다니는 길에서 상냥하게 모습을 드러내며 그들의 모든 생각 속에서 그들을 만나 준다. 


시편(62)

하느님 저의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목말라 하나이다


제2독서(1테살 4,13-18)

<예수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은 생명의 나라로 들어갈 것이다>


형제 여러분, 죽은 이들의 문제를 여러분도 알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이들을 그분과 함께 데려가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이 말을 합니다. 주님의 재림 때까지 남아 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죽은 이들보다 앞서지는 않을 것입니다. 명령의 외침과 대천사의 목소리와 하느님의 나팔 소리가 울리면, 주님께서 친히 하늘에서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고, 그다음으로, 그때까지 남아 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들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말로 서로 격려하십시오. 


복음(마태 25,1-13)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때에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그러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나누어 다오.’ 하고 청하였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 하고 대답하였다.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지만, 그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필진정보]
김수복 :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10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고, 그 동안 서울 가톨릭 신학대학 6년을 수료했다. 40년 동안 5개 언어에서 성서와 신학 관련 서적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노동자였다. 현재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둘, 손자 넷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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