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오면서 한 번 정도는 길에서 싸우는 어른들이 뱉어내는 ‘화냥년’, ‘호로자식’이라는 말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이 말이 너무나 슬픈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오래 되지 않았다. 우리 세대에서는 상용되지 않던 오래된 욕이기도 했지만 발음이 그다지 매끄럽지 않아 사용이 쉽지도 않았다.
이 말의 어원은 1627년 정묘호란 1636년 병자호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나라가 파죽지세로 조선에 밀어닥쳐 조선은 저항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무방비로 후퇴를 거듭하며 삼전도에서 인조가 청나라 군에게 머리를 세 번이나 조아리면서 항복함으로써 전쟁은 마무리된다. 이 때 30만이나 되는 조선의 여인들이 청나라로 끌려가 창기가 되거나 노예가 되었다. 그 가운데 일부는 높은 몸값을 지불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온 여인(환향녀: 還鄕女)’이라 불리며 무시와 천대를 받았고 사대부들은 겨우 돌아온 자신의 아내를 받아들이지 않고 왕에게 이혼을 허락해 달라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또한 그들이 낳은 자식을 ‘호(胡)로자식: 오랑캐의 자식(버릇없고 막 되먹은 자식)’이라 부르며 천대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전쟁에 끌려가 성의 노예가 되었던 조선의 꽃다운 젊음들은 이제 백발의 노인이 되어 일본 대사관 앞에서 2002년 3월부터 2017년(7월 12일: 1291차) 지금까지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를 지속하고 있다.
우리민족은 강자였던 외세들과 친일의 잔재, 적폐에 대해서는 관대했지만 약자들이었던 ‘환향녀’와 ‘호로자식’들에 대해서는 단죄와 심판의 칼날을 무섭게 휘둘렀다. 사정의 전후를 따져보지 않고 강자들의 논리에 다수의 대중(mass)과 매체(media)가 몹쓸 사람들을 많이도 만들어냈다.
최근 가톨릭교회는 각 교구의 복지시설과 병원 등지에서 벌어진 인권과 재정비리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얼마 전에는 청주에서 사제가 일반인에게 폭행을 가하는 동영상이 유투브에 공개되며 가톨릭교회의 치부들이 봇물처럼 터져 오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러한 문제들의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던 각 교구의 정평위 위원들이나 간사, 시민활동가들은 교회 안에서 노골적인 압력이나 쉰 소리를 듣고 위원회직이나 활동에서 물러나거나 근거 없는 구설에 휘말리거나 묘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오늘 해방을 기념한다고 말하지만 친일적폐 청산 없이 국정농단의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 없이 새로운 역사의 시작, 광복(光復)은 불가능하다. ‘그리스도 우리의 광명(光明)'을 노래하기 위해서 이제 교회는 ‘선교’보다 ‘쇄신’에 주력해야 한다. 지금 교회에 필요한 약은 자성(自省)과 겸손한 자기고백이다. 해방절, 예수의 사랑은 ‘강자에게는 더욱 강하게, 약자에게는 더욱 겸손하게’ 살라는 복음이었지 권력과 조직에 순응하고 비굴해지고 무력해지라는 ‘처세’를 말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자!
다음은 2017년 08월 10일,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에도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