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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가톨릭에서도 개신교에서도 하느님은 구원하신다!
  • 전순란
  • 등록 2018-01-15 10:10:29
  • 수정 2018-01-15 10:5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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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4일 일요일, 맑음


아침에 밝은 곳에서 보니 마루 전체에 먼지같은 종이 부스러기로 가득하다. 어젯밤에 식탁보를 빨며 식탁 위에 놓인 수첩까지 함께 세탁기에 넣어 돌려 버렸다. ‘오호 통재라!’ 그 안에 수년간 적어 놓은 전화번호며 주소며 생활메모를 날렸으니 어쩐담? 물에 녹아버린 기록은 어쩔 수 없다 치고 세탁기 안에 아직 남은 종이를 한 장씩 달래면서 뜯어내 말렸다. 빨래마다 먼지처럼 엉겨 붙은 종이부스러기들을 털어내는 일도 예사가 아니어서 울고 싶었지만 휴대폰을 돌려댄 것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스스로 위로했다.


기록이 사라진 사람은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리거나. 핸폰에 남은 기록으로 대체하기로 하지만, 이탈리아나 유럽에 있는 친구는 내가 연락을 해야 하니 어쩐담? 구시렁거리며 청소를 하는데 보스코가 왜 그러느냐고 묻는다. “내가 사고를 좀 쳤지요. 서방님은 염려 놓으소서” 사연을 듣고 불쌍하고 한심하다며 날 쳐다보는 그의 얼굴이 완전 홍어다. 머리 부기가 얼굴로 옮겨 내려와 혼자 보기 아까운 ‘붉은 태양’, “누가 보면 어머니가 당신을 낳고 깔고 앉으셨다 하겠어요"


페친이 보내온 광주교구청 마당의 설경


혹시나 해서 김원장님께 ‘어쩌면 좋겠냐?’고 전화를 드리니 어차피 부기가 차즘 빠져나갈 테니까 일체 약을 먹지 말고, 병원에도 가지 말고, 물이나 넉넉히 마시란다. 커다란 병원을 운영하던 의사선생님이 저런 말씀을 하는 걸로 보아, 저분은 지금처럼 임실에 내려가 산길 내고 나무 심는 일로 전업하신 게 아주 탁월한 선택처럼 보인다.


보스코는 어제 포럼 강연후 토요특전미사를 했고, 얼굴도 볼만하여 나 혼자만 미사를 가려니까 좀 어색하여 모처럼 ‘영양가 있는 설교’도 들을 겸 이웃교회를 찾아보기로 작정했다. 이태 전 아랫동네 보은약국 자리에 ‘성은교회’가 이사를 왔는데, 한신 후배가 담임목사고 목사님 부친이 예전에 한신 총동문회 회장을 하실 적에 내가 부회장을 한 인연이 있어 찾아가 뵈올 겸해서…




4층에 있는 교회에 올라가려고 1층 입구에 들어서자 안내하는 분이 친절하게 따라와 4층까지 안내하고, 옆에 앉아서 성경과 찬송가를 가져다 펴보여 주며 어찌나 친절한지 감격했다. 가톨릭에서 온 사람이라면 정신없겠다. 예배시작까지 세 청년이 성가로 예배분위기를 만들고 목사님과 함께 성가대원들이 입장했다. 전체적으로 참 따뜻한 분위기다. 내게 낯익은 동네아줌마도 서너 분 계셨는데 내 정체를 알고(‘성당패가 왜 왔나, 더구나 신부 엄마가?’)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반겼다.


성가나 성경은 모두 파워포인트로 쏘아 앞에서 자막을 보고 읽고 노래하는 서비스가 생소하면서도 친절하다. 개신교에서는 말씀의 선포가 중심이기에 설교 요점을 주보에 실어 집에 가서도 다시 읽어보게 한 친절도 배려가 깊었다.



신부님들 강론이 거의 탐탁지 않지만 약장수 같은 목사님의 설교도 만족스럽지는 않다. 그런데 오늘 우리 후배목사님의 설교는 청중을 빨려들게 만든다. 기도부터 ‘남북화해와 평화’ 등 주님의 백성이라면 세상사에도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무대가 되게 하는데 책임을 다해야 한단다.


우선, ‘선한 일에 지혜로워 하느님 뜻을 살피고 그분을 자주 보고 사랑할 때에 그분임을 알아보게 되는데 그분을 우리는 어디서 만나는가? 병들고 버림받고 가난하고 갇힌 자에게서 그분을 만나보게 된다. 또 그런 사람들을 자주 봐야만 그들이 다름 아닌 그분임을 쉽게 알아 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을 하든 하느님이 안 계시다는 상실감은 양심의 두려움과 통증까지 상실케 만든다. 이런 일은 존재 자체가 저주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다’ 얼마 전, 여교우들이 ‘영양가 든든한’ 설교를 찾아들으러 미사 후 예배당으로 몰려가더라는 얘기를 들은 적 있는데 까닭이 없지 않다.



가톨릭의 ‘말씀의 전례’에 해당하는 예배가 끝나고 ‘성찬의 전례’가 없으니 많이 허전했지만 예배 후 2층 식당에서 교우 모두가 사랑의 애찬을 가져 그 안에 주님의 사랑이 넘치고 있었으니 ‘가톨릭에서도 개신교에서도 하느님이 구원하시는구나!’ 하는 확신이 선다. ‘불교에서도 물론!’


선배 목사님과 아들인 후배 목사님을 모두 만나 인사를 하고 돌아오며 1년에 한번은 찾아와야겠다는 마음이 일었다. 나의 한신 뿌리를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페친이 보내온 산사의 설경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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