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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눈으로 한국의 상처를 보는 일본청년들
  • 곽찬
  • 등록 2018-02-26 19:24:48
  • 수정 2018-02-26 19:2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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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찬


새로운 미래를 만들려면 일본이 과거에 다른 아시아 국가에 어떤 상처를 준 것인지 알고 그 상처를 예수와 함께 바라보는 것이 첫걸음이다. 


예수회 사회사도직 시모노세키 노동교육센터는 23일 서울에서, 일본 청년들의 ‘동아시아 평화와 화해를 위한 여정’ 그 첫걸음을 시작했다. 


일본 청년들의 평화여정은 시모노세키 노동교육센터 소장으로 일하고 있는 예수회 나카이 준 신부가 인솔했다. 그는 지난해 3월 1일, 서울 종로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미사에서 한국말로 편지를 준비해 따뜻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었다.(관련기사)


23일, 한국에 도착한 일본청년들은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에서 운영하는 카페에 들러 몽당연필과 조선학교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첫 여정을 시작했다. 


▲ 몽당연필과 조선학교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신을 소개하는 한 일본 청년. ⓒ 곽찬


몽당연필은 7년 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아픔을 통감한 배우 권해효 씨, 가수 안치환, 이지상 씨 등이 함께 결성한 단체로써,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조선학교 돕기를 해 오다 조선학교가 처한 차별적 상황을 해결하고 가치를 알리기 위한 일을 시작했다. 2012년에는 서울시에 비영리민간단체(NGO)로 정식 등록 됐다. 


다음 여정은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서 시작됐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이 겪었던 역사를 기억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는 공간이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전시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대하며 전쟁과 여성폭력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마련한 박물관이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2004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인권과 평화를 위해 박물관 건립위원회를 발족하고, 2012년 5월 5일 박물관 문을 열었다.


▲ 일본 청년들은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서 응원의 메시지를 쪽지에 담았다. ⓒ 곽찬


박물관에 들어선 일본청년들은 첫 번째 맞이방을 지나 ‘쇄석길’을 마주했다. 전쟁의 포화소리와 돌밭을 걷는 군화 소리를 생생하게 들으며 2차 세계전쟁 터 한가운데 놓인 듯 한 기분으로 다 함께 지하 전시관을 향했다. 


지하전시관은 어둡고 좁은 공간에 전쟁터와 위안소를 배경으로 피해자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녹여 놓았다. 지하를 지나면 보이는 ‘호소의 벽’에는 피해자들의 절규하는 목소리가 사진과 함께 담겨있었고 호소의 벽을 따라 계단을 올라 밝은 곳을 향할수록 희망의 목소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2층에는 역사관과 운동사관, 생애관, 기부자의 벽, 추모관이 마련되어 있었다. 일본군 문서와 관련 자료를 볼 수 있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한 운동의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에는 피해자들의 손때 묻은 물건과 유품, 그리고 고인이 된 피해자들의 얼굴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일본청년 한 명이 추모관에 들어서더니 헌화를 하고는 성호를 긋고 기도를 시작했다. 조용하게 기도하던 청년은 눈시울이 붉어졌고,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 한 청년은 추모관에 들어서 성호를 긋고 기도를 시작했다. ⓒ 곽찬


일본의 젊은이들이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 것이 위험하다. ‘나’부터 마음으로 깨달아야 문제에 대해 정확히 전할 수 있다. 


이번 여정에 함께한 일본 청년 유리코 이노우에 씨는 후쿠오카에서 음악을 가르치는데 “어렸을 때부터 세계에서 전쟁이 사라지는 것이 소망이었다”고 한다.


유리코 씨는 박물관에 머무는 내내 아픔이 느껴졌지만, 그동안 이런 역사에 실감조차 할 수 없었다면서 “이곳에 찾아와 아픔을 진정으로 느껴야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일본의 청년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자세히 알려하지는 않는다”며 “인터넷이나 TV를 통해 소식을 접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라고 설명했다.  


유리코 씨는 앞으로 또 어떤 역사를 마주하게 될지 두려움이 생긴다면서도 “그렇지만 동아시아와 한국의 평화를 위해 두려움을 이겨내고 여정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잘못한 역사를 알고 회심하지 않으면 좋은 미래를 맞이할 수 없다.


▲ 침묵과 함께 기도 중인 나카이 준 신부. ⓒ 곽찬


나카이 준 신부는 지난해 한국에 다년간 후 “직접 찾아와 한국 사람들을 만나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 여정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나카이 준 신부는 히로시마 교구에서 일 했을 때 알게 된 청년에게 이번 여정에 대해 설명했고, 이후 다른 청년들에게도 소식이 전해져 도쿄, 고베, 오카야마 등 전국 각지에 관심 있는 청년이 참여했다고 전했다. 


그는, 잘못한 역사를 알고 회심하지 않으면 좋은 미래를 맞이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이제 시작일 뿐이지만 이런 활동이 넓게 뻗어 사람들의 의식이 깨어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나카이 준 신부는 이번 한국 여정을 시작으로,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대만이나 중국, 일본의 오키나와 지역으로도 가보고 싶다는 바람을 조심스럽게 이야기 했다. 


일본 청년들은 이날 일정을 시작으로 24일에는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에 들러 한국의 독립 역사에 대해 알아보고, 25일에는 서대문형무소와 절두산 성지를 찾았다.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해, 우선 자신의 나라가 과거에 어떤 잘못을 했는지 알아야 한다며 한국을 찾은 일본청년들과 한 사제는 뼈아픈 역사의 현장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귀한 걸음을 시작했다. 이들의 귀한 걸음이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주춧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저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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