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각 분야에서 ‘미투(MeToo) 운동’이 전개되는 가운데, 23일 천주교 사제의 성폭행 미수 사실이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 2011년, 김민경 씨는 아프리카 남수단으로 자원봉사를 떠났다. 그곳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천주교수원교구 소속 한 모 신부는 당시 식당에서 나오는 김 씨가 나가지 못하도록 문을 잠그고 성폭행을 시도했다.
김 씨는 필사의 몸부림으로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다. 온 몸이 욱신거렸고 눈과 손목에는 멍이 들었다. 하지만, 선교지에서 지내는 동안 자신의 방도 안전하지 않았다. 한 신부는 도구를 이용해 김 씨 방문을 열고 접근했다.
신부는 김 씨를 붙잡고 “내가 내 몸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네가 좀 이해를 해달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고 김 씨는 그 날 일을 회상했다. 하지만 김 씨는 혹시 자신 때문에 선교 활동이 중단 될까봐 한 신부의 성폭행 시도 사실을 혼자 끌어안고 7년을 지내야 했다.
그 시간을 혼자 버티던 김 씨는 최근 우연히 ‘미투 운동’을 접하고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한 신부의 가해 사실을 알리기로 결심한 것은, 남편과 딸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사랑하는 교회가 더 나아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강도를 당했다고 해서 죽을 때까지 ‘그때 내가 문단속을 더 잘했어야 했는데’ 이러면서 그걸 죽을 때까지 갖고 살지 않잖아요? 근데 유독 성폭력 사건만 피해자가 그렇게 자책을 하죠. 가해자는 너무 멀쩡히 하던 일 잘 하면서 살고 계신데. 그 잘못된 문화를 바꿔야 된다고 생각해요. - < KBS > 김민경 씨 인터뷰 중
지난 14일 김 씨는 수원교구에 한 모 신부의 처벌과 교구 내 성폭력 피해 전수 조사, 성폭력 예방교육을 요구했다. 수원교구는 23일자로 한 모 신부의 모든 직무를 중지시키고, 25일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는 특별사목서한을 발표했다.
이용훈 주교는 “피해 자매님과 가족들 그리고 교구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이번 일을 거울삼아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릇된 것들을 바로 잡아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수원교구는 이 같은 사목서한 내용과 전혀 다른 대처를 해 비판을 받고 있다. 특별사목서한 발표 하루 전, 한 신부가 부임했던 성당 신자들에게 3일간 성당 출입을 금한다는 단체 문자 메시지가 발송 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
“오늘부터 3일간 성당에 미사가 없고 일절 출입을 금지한다고 합니다. (…) 3일 정도만 보도거리가 없으면 자연스럽게 이슈가 사라져 잠잠해진다고 하니 따라주셨으면 한다고 합니다”
이 같은 문자메시지에 수원교구측은 본당 사목회에서 결정을 한 것 같다고 해명했지만, 본당 미사를 취소할 수 있는 권한은 교구장주교에 있다.
한 모 신부가 속해 있던 정의구현사제단도 25일, 피해 여성께 용서를 청한다는 사과문을 올렸다. “한 모 신부는 엄연히 사제단의 일원이며 형제이기에 그의 죄는 고스란히 우리의 죄임을 고백한다”면서 “소식을 접하던 당시, 정확한 사실과 피해자의 심정을 미처 다 헤아리지 못한 점도 반성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한편, 24일 수원교구 김상순 사무처장 신부는 < KBS >와의 인터뷰에서 한 신부의 징계 수위에 대해, “죄를 지었다고 해서 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하느님과 화해하고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거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판정이 됐을 때 가능한 거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징계 수위 판정에 교구장, 주교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함께 회의를 하지만 정작 피해자인 김 씨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나 빈축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