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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나눔-김혜경] 게걸음으로 에둘러가기
  • 김혜경
  • 등록 2018-03-14 15:5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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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수장됐다는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빌헬름 구스틀로프호의 침몰. (사진출처=Oceanliners)


지난달 재개봉했던 타이타닉은 잭과 로즈의 신분을 넘어선 운명적 사랑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의 배경인 영국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는 빙하와 충돌해 가라앉았고, 이 사고로 천오백 명 넘는 사람들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나는 영화 때문이었는지 막연히 인명피해가 제일 큰 사고였던 걸로 지레짐작하고 있었다. 빌헬름 구스틀로프호의 침몰을 다룬 『게걸음으로』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노벨문학상(1999년)을 수상했고 독일문단에서 ‘행동하는 양심’으로 불리는 귄터 그라스는 이 소설을 발표하면서 이데올로기나 통계숫자로는 드러나지 않는 것들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역사라는 커다란 수레바퀴를 굴리면서, 또 함께 굴러가는 개개인의 삶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말이다. 또 구스틀로프호 침몰 사고는 정치적으로 이용될 소지가 다분하다면서 한 쪽 입장에서만 바라보는 역사는 왜곡될 수밖에 없음을 지적했다. 그라스는 균형 잡힌 시각으로 역사적 사실과 작가적 상상력 사이를 말 그대로 게걸음처럼 오가며 사건의 실체를 면밀하고도 깊이 있게 펼쳐낸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소련의 맹렬한 공격에 독일이 밀리면서 천만 명 넘는 독일인들이 피난길에 올랐다. 빌헬름 구스틀로프호에도 수많은 피난민과 부상병, 군인들이 타고 있었는데 소련 잠수함이 쏜 어뢰를 맞고 침몰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젖먹이를 비롯한 어린아이들 사천여 명을 비롯해 일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차가운 겨울바다 속으로 수장되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해상 재난사고였다는데, 그렇게 참혹했던 사고가 진상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채 유야무야 묻혀버리고 말았다. 


구스틀로프호는 카데에프 선단에 소속된 이만오천 톤급 크루즈선박이었다. 카데에프는 이 배를 독일인 노동자와 농민들을 위해 만든 ‘계급차별 없는 휴가선’이라 선전했다. 아주 싼 배 값에 수영장과 레스토랑 등도 갖춘 데다, 실제로 처음 얼마 동안은 선실 위치와 상관없이 비용이 똑같았다. 이렇게 평등하고 좋은 대우를 해주는 히틀러의 나치체제에 많은 노동자와 농민들은 환호했고 찬사를 보냈다. 그러다 점차 당과 재계의 거물급 인사들이 승선하는 일이 잦아졌고, 2차 세계대전을 벌이면서는 병력 수송선, 병원선, 훈련선 등으로 쓰였다. 


▲ 『게걸음으로』 귄터 그라스, 장희창 옮김, 민음사

빌헬름 구스틀로프라는 배 이름은 스위스에서 나치하부조직을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다 암살된 나치당의 간부 이름이다. 원래 아돌프 히틀러라 명명할 예정이었는데, 유대인 청년에게 살해당한 간부를 나치의 순교자로 만들어 정치적으로 이용코자 했던 거다. 그는 생전에 공공연히 자기 어머니와 아내를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지만 총통이 그들을 죽이라 명령하면 복종하겠노라던 극단적인 나치스트였다. 이런 그였지만 개인적인 삶을 보면, 은퇴 후 아내와 살 벽돌집을 마련하기도 했고 경비를 아껴 저축도 했다. 나치하부조직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실은 보험영업을 위해 스위스 전국을 돌아다닌 경험이 있어서였다. 겉보기로는 우리네 삶과 별다를 것 없는 성실한 사람이었던 거다. 

 

한편, 빌헬름 구스틀로프를 암살한 다비드 프랑크푸르터는 만성골수염에 시달리면서 성적도 별로고 아버지한테 용돈이나 타 쓰는 그저 그런 의대생이었다. 그런데 히틀러집권 후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이런저런 박해를 겪으면서 여러모로 상황이 여의치 않자 자살을 하려 했다. 그러다 특별한 신념이나 의도도 없이 돌연 나치당의 간부를 암살하는 정치적인 행동을 감행해 버렸다. 갑자기 삶이 막막해진 유대인 청년이 홧김에 저지른 돌발적인 행동이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화자인 나의 어머니 툴라 포크리프케는 임신한 채 피난선 구스틀로프호에 승선했다가 공교롭게도 배가 침몰하는 그 순간 나를 낳았고 가까스로 목숨도 건졌다. 그녀는 정치이념에는 별 관심이 없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아무렇지 않게 말과 행동을 바꾼다. 이런 그녀에게 구스틀로프호 사건은 자기 생명을 잃을 뻔한 너무나 무서운 일이었다. 배를 격침한 소련잠수함에 원한이 사무친 툴라는, 시도 때도 없이 아들인 나를 붙들고 감춰진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며 닦달하곤 했다. 


그러나 애초에 그 배는 나치를 선전하기 위해 만든 거였고, 자국민들이 입은 참사를 공론화할 경우 극우파가 성장할 빌미를 줄까봐 당국에서도 침묵하고 있는 터였다. 이를 알고 있는 나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어머니의 청을 거절해왔다. 그러자 어머니는 이혼한 아들내외 대신 키웠던 손자 콘라드에게 자기 생각을 되뇌었고, 그 얘기를 들으며 자란 콘라드는 자연스레 네오나치즘의 이념을 따르게 되었다. 종내는 구스틀로프를 존경해 웹사이트를 만들어서는 나치의 편향된 이념을 전파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사이트대화방에 구스틀로프를 암살했던 다비드 프랑크푸르터를 지지하는 볼프강이라는 유대인 청년이 들어와 콘라드와 여러 차례 논쟁을 벌이는 일이 생겼다. 그러다 오프라인에서 둘이 만났고, 이번에는 네오나치스트 콘라드가 유대인 볼프강을 총살해버렸다. 이후 구스틀로프를 추앙하던 웹사이트 대신에, 소년원에 투옥된 콘라드 포크리프케를 신봉하는 웹사이트가 새로 생겨난다. “우리는 그대를 믿노라, 그대를 기다리노라, 그대를 따르노라…” 따위의 찬양을 하면서 말이다. 


▲ ⓒ 가톨릭프레스 DB


서늘해지는 마음으로 마지막 장을 덮었다. 역사나 이념 같은 거대담론은 보잘 것 없는 내 개인사와는 별개처럼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귄터 그라스는 그런 게 아니란다. 알게 모르게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거다. 구스틀로프 같은 이도 나치의 순교자가 되려던 건 아니었다. 그저 나치시스템이 자신의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었기 때문에, 나치즘이라는 국가체제에 맞춰 열심히 살았던 사람이다. 


툴라는 툴라대로 이념이고 뭐고 급변하는 환경에 따라 제 목숨 부지하기에 급급한 인물이었다. 이런 그녀가 소련잠수함에 대해 느끼는 분노와 증오는 어쩌면 당연한 거였는지 모른다. 네오나치스트들의 주장이 달콤하게 들리고 희망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결국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어린 손자를 네오나치스트로 키운 셈이 되었다. 그런 콘라드는 별 죄의식도 없이 유대인 청년을 죽이기까지 했고 말이다. 


그러니까 특정 이념에 대한 뚜렷한 인식이나 신념 없이도 개인적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할머니에서 손자로 대를 이어가며, 그 이념이 재생산되는데 일조할 수 있다는 거다. 태극기에 성조기도 모자라 이스라엘 국기까지 흔들며 집회를 하는 사람들이 어른거린다. 그네들의 어떤 경험과 신념이 그런 방식으로 행동하게 하는 걸까. 그러면서, 혹시 내게도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 들어 있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른 새 그게 아집인줄도 편향된 함의가 담긴 줄도 모르면서 막무가내 생떼 부리듯 드러나려는지 누가 알겠는가. 더구나 그런 생각을 나도 모르게 내 아이들에게 심어주게 된다면… 좀 오싹해진다. 


어쩐다지? 귄터 그라스는 마치 게걸음처럼 나 개인과 가족의 이야기들, 그러니까 우리의 일상을 되새김질하듯 계속 돌아봐야 한단다. 따지고 보면 개별적인 생각이나 일상생활 하나하나가 역사가 되는 거고, 그렇게 만들어진 역사가 다시 구체적인 경험과 삶에 영향을 미치면서 내 존재 전체를 좌지우지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게걸음, 그거 그러다 옆으로 완전히 새버리는 거 아닌가, 너무 에둘러 가는 거 아닌가 염려할 건 없겠다. 정면을 향해 직진만 하는 게 더 위험할 수 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게는 옆으로 걸으면서 나아가니까. 자고로 역사란, 오히려 그런 식이어야 하는 걸 테니까. 


 카데에프 : 독일 노동자와 농민들에게 선박여행을 시켜줌으로써 나치체제를 선전하려는 계획의 하나로 조직된 나치의 하부 조직.



[필진정보]
김혜경 : 서강대학교를 졸업했다. 광주문화원 편집기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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