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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생즉사, 필사즉생 (必生卽死 必死卽生)
  • 지성용
  • 등록 2018-03-19 13:48:07
  • 수정 2018-03-20 17:4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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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지성용 신부의 책 『복음의 기쁨, 지금 여기』 가운데 일부입니다.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저자의 허락을 받고 <가톨릭프레스> 시대의 징표 코너에 매주 월요일 연재 합니다. - 편집자 주


일전에 조계종 교육부장으로 일하신 법인 스님이 경향신문에 낸 오피니언에서 ‘부처와 예수는 시비꾼 이었다’는 제하의 글을 읽고 내심 반가웠다. 내용인즉, 조계사 농성천막에 항의집회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보수의 옷을 입음 직한 사람들이 격렬하게 항의하는 공통적인 논리가 ‘신성한 경내에서’, ‘수행의 본분’을 저버리고 수행자가 정치에 참여해서야 되겠냐는 것이다. 


이와 똑같은 논리를 펴는 이들이 천주교에도 등장했다. 이른바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으로 이들은 “거룩한 성당”에서 “출가한 사제”가 “정치에 대해 말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느냐”고 한다. 또, “예수님을 따라 살기로 약속했으면 예수님처럼 살아야지 정치는 무슨 정치”라고 한다.


▲ ⓒ 가톨릭프레스 DB


그러한 논리의 공통성을 가진 천주교 신자 한 사람에게 정중하게 물었다. 


“왜 사제가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요?” 


그 사람에게는 특별한 논리도 진정성도 없었다. 그저 말꼬리를 잡을 뿐이다. 이러한 말은 우리들에게 진정한 예수의 길은 무엇이고, 부처의 길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부처는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카스트의 최고에 있는 바라문이 자신의 혈통과 가계에 대해 자랑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대의 가계는 윗대로 수없이 올라가도 그때도 고귀한 집안이었는가?”, “그대가 고귀하다하여 살인과 도둑질을 해도 형벌을 받지 않는가?” 바라문은 둘 다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자 부처님이 대답하셨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고귀하거나 천박하지 않다. 나는 고귀한 행위를 하는 사람을 고귀하다 하고, 천박한 행동을 하는 자를 천박하다 한다. 나는 출생을 묻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당대의 신분제도인 카스트 제도를 공개적으로 부정하셨다. 권력으로 인간을 차별하고 착취하는 제도는 옳지 않다고 시비를 가리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는 어떠했던가. 예수는 그의 식탁공동체에 당시 부정을 탄다고 지탄받던 창녀와 세리들을 참여시킨다. 차별당하는 약자들에게 사랑의 손을 내밀고, 권력화 되어있는 신학자나 성직자들에게 “내 아버지의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 아버지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지 말라!”고 공격하며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시고 당시의 기득권층이었던 대사제와 원로들,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들을 공격하신다. 예수는 호불호가 명확한 분이셨다. 


세속을 떠나 청정하게 수도하고, 맑고 곱게 성직을 수행하는 것이 종교인의 본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떠나야 할 세속은 사람이나 공간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시비를 가리는 것이 트집잡기나 싸움걸기가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이해하는 바, 정의와 자비의 회당과 불당을 지으려 했던 예수나 부처는 정의를 위해, 자비를 위해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가른 것이다. 그것이 이후에 부처의 길이 되었고 예수의 길이 되었다. 


요한 23세 교황은 취임하자마자 3개월 만에 공의회 소집을 선포했는데, 그 이유에 대해 세계의 대다수 주교들은 문제의식을 가졌다. 당시 세계는 냉전과 빈부격차, 폭압적이고 권위적인 정부들이 있었는데, 교회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세계에 자신을 개방하지 않고, 구원만 추구하면 된다는 자기 보전의 영성으로 사회문제를 회피하고 있었다. 그래서 요한 23세 교황은 ‘교회의 창을 열고 새로운 바람을 교회 안에 들어오게 하자’고 생각했다. 정작 창문이 열리자, 교회 안에 들어온 바람은 새로운 바람이 아니라 현대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이었다. 


▲ 요한 23세 교황 (사진출처=Catholic World Report)


요한 23세 교황은 교회를 세상에 개방하고, 현실에 직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인 <사목헌장>이다.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 현대인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 받는 모든 사람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제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고뇌이다”라는 그 시작은 세상의 고통을 보았을 때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신앙인들의 ‘의무’임을 일러주는 것이다.*


독일교회의 공의회 신학자였던 한스 큉(Hans Kung)은 1979년 12월 18일 요한바오로 2세의 교황 즉위 1년 만에 바티칸으로부터 가르치는 교회법적 권리를 박탈당했다. 그가 교황의 무류성에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한스 큉은 자서전에서 “공의회가 아니라 공의회에 대한 배신이 교회를 위기로 몰아넣는 것”이라고 말 했다. 공의회 이전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현대사회의 세속주의 경향’에서 교회를 보호하려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바티칸이 자본과 권력투쟁의 아수라장으로 타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교회 권력을 최대한 분산시키고, 교회를 ‘하느님 백성’의 다양한 견해가 자유롭게 공론의 장으로 나올 수 있는 투명한 사회로 변화시키는 길뿐이다. ‘다중지성’을 호소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권위적인 교회’와 ‘교황 유일체제’는 시대정신에 역행한다. 교회에서도 ‘지방자치’가 허용되어야 하며 지역교회 사제와 신자들이 자신들의 리더십을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한국 천주교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가 사제의 정치, 사회 참여에 대해 “(가톨릭)교회나 성직자는 사회문제에 대해 침묵하면 안 된다”며 적극적으로 지지 하고 나섰다. 2014년 2월 19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강우일 주교는 “성직자의 정치참여는 1962년부터 1964년까지 이어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의에 따라 마땅히 이뤄져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우리 사회의 문제가 불거질 때 앞장서서 이를 지적하고 바로잡는 것, 이를 위해 어떠한 정치적, 사회적 활동도 망설이지 말라는 것이 역대 교황의 일관된 가르침이었다”고 전했다. 


또한, 2014년 6월호 경향잡지를 통해서는 “불의와 비리 관행을 묵인해온 우리 모두가 공모자”라며 진실과 정의가 외면당할 때 침묵하지 말 것을 호소했다. 사제들의 정치참여에 대한 규제는 정치인으로서의 직무를 맡는 것에 대한 제한일뿐이지 정치적 의사자체를 원천봉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부 수구 언론들과 관변단체들, 최근의 대수천(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은 사제가 정치나 경제에 대해 말하는 것을 매우 불경스럽게 여기니 이것은 그들의 빈곤한 심리적 메커니즘을 대변할 뿐인 것이다.


지난 촛불집회에 수녀님들의 참여가 눈에 띄었다. 교회가 약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억울함을 편들어주고 그들을 응원해 준다. 그래야 비로소 교회는 그 존재의 의미를 실현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지금 누구의 손을 잡아주고 있는가?



이렇게 복음화의 임무는 언어와 상황의 한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완전하지는 못하더라도 복음이 가져다줄 수 있는 진리와 선과 빛을 단념하지 말고, 구체적인 상황에서 복음의 진리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여야 합니다. 선교하는 마음은 이러한 한계들을 잘 알고 스스로 “약한 이에게 약한 사람이 (‧‧‧) 모든 이에게 모든 것”(1고린토 9,22)이 되라는 말씀 그 자체가 됩니다. 결코 자신 안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안위만을 찾지 않으며, 자기방어를 하려고 경직되지도 않습니다. 선교하는 마음은 복음을 이해하고 성령의 길을 식별하며 자라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좋은 일을 할 수 있을 때 언제나 좋은 이을 합니다. 그러면서 거리의 진흙탕에 신발이 더렵혀지더라도 좋은 일을 합니다. (『복음의 기쁨』 45항)



* 사목헌장에 대한 좋은 이해를 돕는 글 : 함세웅, 『세상을 품은 영성』, 빛두레, 2012.



[필진정보]
지성용 : 천주교 인천교구 용유성당 주임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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